아이와 개를 데리고 나가면 꼭 듣는 말
"같이 키우시는 거예요?"
아이가 갓 태어났을 때 듣던 말
"(설마) 같이 키우시는 거예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들은 말
"개는 어디 보내야 하지 않아요?"
"이제 개는 어디 갖다 주지 그래."
아이가 생겼다는 말을 전하자 누군가 말했다. 사람들은 축하한다는 말 뒤에 "개는 어디 보내야겠네."라는 말을 꼬리표처럼 달았다. 약속이라도 한 듯 그랬다. 그 말은 우리를 위하는 말이었다. 태어날 아이에게 청결한 환경을 만들어주라는 조언이었다. 하지만 이 꼬리말이 나와 남편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됐는지 사람들은 모른다. 새 식구가 태어난다고 헌 식구를 내보내라는 건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일까.
나는 바닷가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 기억 속의 서랍에는 늘 개나 고양이, 소, 염소 따위가 들어앉아 있다. 서랍을 열어보면, 바다가 보이는 마루 위에 고양이가 어영부영 시간을 때우고 있다. 섬돌 위에는 작은 개가 앉아 꼬리 치고, 밖으로 이어지는 대문 옆으로는 소를 키우는 외양간이 있다. 집짐승들은 아무렇게나 마당에 누워있거나 이웃마을에 갔다가 며칠씩이나 안 들어오기도 했다. 사람도 짐승도 마음이 여유로운 시절이었다.
지금은 집짐승이 자유롭게 드나들 앞마당도, 마루도 없다. 앞마당에 살던 개는 아파트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하여 개가 털을 떨구고, 아기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곰팡이처럼 피어났다. 우리는 그런 시절을 살고 있다. 나는 개를 포기해야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바다 마을에서 살던 기억의 서랍을 닫을 수 없다. 그래.
나는 개를 보낼 수 없다.
배는 점점 불러왔다. 이따금씩 개는 부풀어 오른 나의 배에 코를 갖다 대며 킁킁 냄새 맡을 뿐이었다. 그리고 딸이 태어났다. 조리원에서 2주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개는 슬쩍 아기를 보더니 '올 것이 왔군.' 하는 얼굴로 아기 냄새를 한 번 맡고는 몇 발자국 떨어져 한동안 아기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딸은 건강하게 컸다. 요리조리 움직이는 개를 더 잘 보려고 애쓰다가, 뒤집기를 했다. 개에게 가까이 가보려고 바둥거리다가, 기기 시작했다. 이윽고 <엄마>와 <아빠>라는 말을 했고, 다음으로 <윽구>라는 말을 했다. <윽구>는 우리 집 개를 가리키는, 딸이 만들어낸 애칭이었다. 아기에게 <윽구>는 더 이상 사람들이 단순히 말하는 그냥 '개'가 아니었다. 딸은 <윽구>의 따뜻한 배와 포실포실한 털을 만져가며 잘도 컸다. 감기는 일 년에 한 번쯤 걸릴 뿐, 별 탈 없이 자랐다.
아기는 점점 활동량이 늘어갔다. 시야가 밝아지자 행동은 거침없어졌다. 개에 대한 사랑도 커졌다. 아기는 단숨에 개를 사랑하게 됐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나이배기 개는 조금 시큰둥했다. 늙은 개가 아기에게 모든 걸 내어주고, 지긋이 바라봐주고, 쫓아다니며 챙겨주리라 지레짐작했던 나는 잠시 머쓱해졌다. 그건 동화 속 이야기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개에게는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멀찍이서 아기를 바라보는 것, 그리고 아기가 귀찮게 하면 자리를 피해 주는 일이 개가 할 줄 아는 가장 커다란 배려였다.
시간이 흘러 아기는 5살이 됐고, 개는 13살이 됐다. 이들은 서로를 알아가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 동안 아기는 개를 대하는 예의를 배웠고, 늙은 개는 아기가 어리고 서툰 인간임을 알게 됐다.
그리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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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사람의 언어를 모른다. 아기도 얼마간은 어른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둘은 온종일 등이나 엉덩이를 붙여가며 말 없는 말을 나눴다. 몸을 뒤집지 못해 누워서 세상을 보던 아기에게 개는 늘 곁을 내주었다.
아기에게 개는 날적부터 옆에 있어준 친구이고, 자매이며, 가족이다. 개에게 아기는 어쩌면, 가끔씩 간식을 나눠주는 고마운 작은 인간일 뿐일지도 모른다. 다만, 어른들이 듣지 못했을 뿐, 이들이 나누었을 조용한 유대는 아기가 앞으로 무엇으로 하여금 흔들릴 때마다 단단히 잡아줄 끈과 띠가 되어주어 주리라.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생각한다.
딸이 작은 벌레 하나 짓이기지 않고, 타인에게 먼저 손 내밀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은 다 그 더럽고 위험하다고 여겼던 우리 집 개 덕분이라는 걸 말이다. 앞으로도 누군가가 "같이 키우시는 거예요?"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네, 1녀 1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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