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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늙은 개-오첩반상을 먹는 개

나나수키 2018. 4. 1. 14:09
아기와 늙은 개


오첩 반상을 먹는 개

행주 엄마

by 목요일 다섯시 Mar 08. 2018


                                                                                       


금요일 밤,
엄마는 마지막으로 식탁 위를 쓱 닦는다.
열 다섯번의 식사, 잘도 차려냈다.

다섯개의 간식, 잘도 만들어냈다.


잘했다 애썼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으니
참 잘했어요 하고 빨간색 동그라미 치듯
행주로 식탁을 둥글게 닦아본다.

박박 빨아놓은 행주를 깜박하고
그대로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는,
방으로 들어가 아이 곁에 눕는다.


딸애 얼굴 들여다보다가
부엌에 둔 행주처럼,

그대로 새우잠 든다.


일어나 아침밥 차리러 부엌에 가보니,
어제 놓은 그대로

행주가 버석하게 말라있다.


애써 펴보려 탁탁 털어보지만,
주름진 행주는 밉게도 말라붙었다.

괜찮아,
오늘은 토요일이야.
하고서 미지근한 물에 퐁당 던져 논다.
이내 행주가 노곤히 풀어진다.


행주가 한 끼 쉬는 날이다.
엄마도 한숨 돌리는 날이다.




 

첫 직장에 다니면서부터였다. 늦은 저녁, 퇴근을 하면 개가 현관문 앞에서 코를 박고 있었다. 개는 문이 열리자마자 뛰쳐나와 내게 안겼다. 우리는 반가움에 서로 얼싸안고 한바탕 인사를 나눴다. 그러면 외할머니께서 흐뭇하게 웃으시며 꼭 한 말씀을 얹으셨다.

 

"걔가 하루 종일 기다렸어.
네가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오는 소리를
또 어떻게 알고 문 앞으로 뛰어가네."

우리 집은 13층이었다. 개는 온종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엘리베이터에 귀를 쫑긋거렸다. 오후 7시쯤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소리를 알아채고 벼락같이 마중 나왔다. 개는 그리운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다. 나는 누군가를 하루 종일 기다려본 적이 었었던가. 개는 매일같이 그 일을 하고 있었다.


개는 도통 사료를 먹지 않았다. 퇴근해서 개 밥그릇을 살펴보면, 아침에 준 사료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내가 집에 돌아 올 때 까지 개는 한 끼도 먹지 않았다. 나는 외할머니께 개가 사료를 먹을 수 있게끔 도와달라고 했다. 할머니는 그 흐뭇한 얼굴로 알겠노라 하셨다. 할머니는 종일 자식들 먹일 걱정만 하는 분이셨다. "배 고프지?"라는 말을 하루에 열두 번도 더 하시곤 했다. 할머니에게 한 끼를 거른다는 건 곧 세상이 무너지는 일이었다. 기댈 데는 할머니뿐이었다. 그날부로 할머니의 레이다에 개도 걸려들었다. 나는 안심하고 출근을 했다.


개는 점점 피둥피둥 살이 올랐다. 할머니께서는 개가 "아아주", "너어어무" 잘 먹고 있다고 하셨다. 이상하게도 사료는 많이 줄어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털에서 반지르르 윤이 났기 때문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바깥일에 집중했다.





그 날은 회사에 행사가 있어서 평소보다 일찍 퇴근을 했다. 깜짝 놀래켜 주려고 일부러 기별도 없이 현관문을 불쑥 열었다. 할머니와 개는 반갑기보다는 당황한 얼굴이었다. 할머니께서 허둥지둥 밥상을 치우고 계셨다. 그러나 나는 보고야 말았다. 할머니는 개에게 오첩 반상을 차려주고 계셨다. 이가 빠지고 실금이 간 작은 그릇 5개가 옹기종기 방바닥에 모여 있었다. 접시마다 소꿉놀이하듯 음식이 담겨있었다. 쌀밥, 생선 꼬리, 사료 몇 알갱이, 복숭아, 믿을 수 없지만 커피까지. 개는 프랑스 개라도 된냥 다섯 가지 코스요리를 즐기고 있었다.  


늘 그런 점심을 즐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해가 짠짠히 드는 거실 한 켠에는 개다리소반 위에 차려진 할머니의 점심밥이, 상 밑에는 다섯 개의 밥그릇이 있었다. 할머니와 개는 완벽한 <밥친구>였다. "더 먹어라"하면 남김없이 꾸역꾸역 먹어치우는 개가 할머니는 얼마나 예뻤을까. 할머니는 늘 손주들의 뱃고래가 작다고 푸념하셨다. 잘 먹어주는 개는 열 손주 부럽지 않았다. 게다가 이 착한 친구는 그릇을 싹싹 비우고도, 설탕을 담뿍 털어놓은 진한 믹스커피까지 남김없이 핥았다. 그들은 완벽한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께 신신당부를 했다. 개에게 사람 음식을 줘서는 안 된다고 백 번 정도 말했다. 그러고도 출근할 때마다 또 강조를 했다. 할머니는 알았다고 손사래를 치셨다. 내 말을 뒤로하고, 할머니는 등을 두들기시며 "점심밥 잘 챙겨 먹어라."하셨다. 하여간 그놈의 밥. 할머니의 시계에는 오직 8시, 12시, 6시만 있는 듯했다.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실 때마다 문득 티타임을 즐기고 있을 게 분명한 그들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고집스러웠다. 늘 집에서 빈둥대던 손녀의, 털을 쓰다듬어주던 반려인의 빈자리는 이미 '설탕 담뿍 믹스커피'가 달달하게 채워주고 있었다. 나는 점심밥이나 잘 챙겨 먹으면 될 일이었다.  

      



                                                                                                           


나를 위한 밥상을 차려본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다. 아이 반찬을 만들다 보면 음식 냄새에 질려 막상 식탁에 앉으면 입맛이 싹 달아난다. 아이가 남긴 반찬으로 혹시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식욕을 채운다. 그러면서 딸에게는 "조금만 더 먹어라."하루에 열두 번도 더 말한다. (굴욕적이지만 '제발'이라고도 덧붙인다.) 할머니께 신물 나게 듣던 그 말을 내 입으로 하게 될 줄이야. 할머니의 삼시세끼 시계는 우리 집에도 달려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이는 먹는 데 관심이 없었다. 할머니는 아이 뱃고래를 늘려야 한다며 이것저것 챙겨주라 하셨지만, 아이의 간식 배만 늘어갈 뿐 뱃고래는 여전히 참새의 위장 정도 돼 보였다. 아이는 다섯 살이 되어서야 밥을 조금씩 먹었다. 힘 빠지게도 "제발 한 입만 더 먹자."하는 나의 집요한 말 덕분은 아니었다.  


아이가 소꿉놀이를 좋아하면서부터였다. 아이는 늙은 개에게 밥상을 차려주었다. 예전에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딸도 그랬다. 음식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늙은 개가 먹을 수 있는 거라고는 삶은 고구마, 두부, 감자 정도였는데, 아이는 매일같이 내게 그런 음식을 얻어내서 개에게 건네주었다. 개가 맛있게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며 손뼉을 쳤다. 아이 얼굴에 걸린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면서 나는 외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래, 할머니도 이런 얼굴이셨겠지.


딸은 그때부터 자신의 밥상에 조금씩 관심을 보였다. 내가 우엉볶음을 만들 때에는 코를 벌름거리며 쫓아와 "와, 맛있는 냄새!"하고 말했다. 계란을 풀려고 톡 하고 깨트리면 어디선가 나타나서 거들었다. 쌀을 씻을 때에도 달려와 손을 걷어붙였다. 그때부터 아이는 밥그릇을 싹싹 비웠다. 누군가에게 밥상을 차려줘 본 사람은 그 밥상이 얼마나 맛있고 소중한 지를 안다. 다섯 살 아이도 다르진 않았다.




아이는 심심할 틈이 없다. 태어났을 때부터 아이 곁에는 늙은 개가 있었다. 나는 인생의 삼분의 일 정도를 개와 함께 했지만, 딸은 제 인생 전부를 개와 나눈다. 아이는 아침에 눈뜨면 거실로 달려나가 개에게 "잘 잤허?" 하고 인사한다. 개는 제 집에 밤새 푹 자다가, 아이의 아침 인사에 몸을 부르르 떨고서 겨우 일어난다. 아침밥을 지을 동안에는 각자의 일을 한다. 늙은 개는 소파 위에 누워 못다 잔 잠을 꼬약꼬약 자고, 아이는 제 방과 부엌을 오가며 분주히 움직인다. 마침내 아침밥을 차리면, 식탁에 모여들어 그 날의 밥 냄새를 맡는다. 개는 식탁 밑에서 아이가 차려준 <소꿉 2첩 반상>을 즐긴다.  


내가 잠시 한눈을 팔면, 아이는 몰래 식탁 밑으로 밥풀을 떨어뜨린다. 식탁 아래에서 호시탐탐 대기하던 늙은 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움직인다. 도통 몸을 움직이지 않는 늙은 개가 유일하게 발을 구르는 순간이다. 개는 자박자박 소리를 내며 경쾌하게 걸어와 밥을 물고 쓱 사라진다. 우리 개가 귓병이 낫지 않는 이유다. 모른 체 할 수밖에 없는 우리만의 비밀이다.

                                      



아기와 개에게 밥을 주며 하루를 다 보낸다. 손에 물 마를 날이 없다. 입 언저리에 묻는 밥풀을 떼어주고, 얼룩을 닦아내는 행주같은 나날이다. 종종 낡고 헤진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한동안 이렇게 살아도 좋을 것 같다. 행주 없는 집에서는 밥 짓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오늘도 반짝반짝 윤이 나게 식탁을 닦아본다.  


문득 할머니를 생각한다. 창고에서 먼지 쌓인 다섯 개의 접시를 찾아들고 할머니는 어떤 표정을 지으셨을까. 아마도 그 얼굴은 오늘 찬장에서 접시를 꺼내는 내 얼굴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가지런히 오늘 먹일 반찬을 접시에 담는다. 개에게 줄 삶은 고구마도 예쁘게 담아본다. 오늘도 건강한 마음을 차린다.  





아기와 늙은 개 [키우고, 기르다] thursday5p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