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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늙은 개-밤을 꿀꺽 먹어버린 개

나나수키 2018. 4. 1. 14:13
아기와 늙은 개


밤을 꿀꺽 먹어버린 개

눈물은 눈물의 마음

by 목요일 다섯시 Mar 29. 2018



철컥 철컥


현관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였다. 새벽 3시, 오밤중을 넘어 구밤중이 되려는 이 시각에 도대체 누구일까. 아니, 누구인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지금 저 문 밖의 불청객이 기어코 문을 따고 들어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그 목적에 있다.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나는 어서 몽둥이라도 들고 나서야 했는데, 우리 집엔 회초리 비슷한 것조차 없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꼼짝을 못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문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는 편집증적 겁쟁이었기 때문에 문은 안전하게 삼중으로  걸려있었다.


다시 누군가가 현관문을 열려고 애쓰는 소리가 들렸다. '옆 집 사람이 문을 여는 거겠지, 내가 잘못 들은 거겠지.' 생각했던, 불과 30초 전의 나는 틀려도 단단히 틀렸다. 저 불청객은 이 집에 여자가 혼자 산다는 걸 아는 게 틀림없었다. 심장이 쑥 꺼지다 못해 발바닥에 껌처럼 들러붙었다. 손을 바들바들 떨며 112를 누를 전화기를 찾고있는데 순간, 개가 쏜살같이 문 앞으로 뛰쳐나갔다. 개는 날 선 목소리로 컹컹 짖었다. 나는 이날, 우리 개 짖는 소리를 처음 들었다. 작고 작은 강아지였다. 10평짜리 작은 집에서 어디에 있는 지 굳이 애써 찾아야 할만큼 존재감이 없는, 조용한 개였다. 개는 문 밖의 낯선 침입자도, 내 두려움도 쫓아버리려는 듯 그렇게 짖어댔다. 나는 손에 들었던 전화기를 내려놨다.


대체 누구였을까. 나는 신발장 옆에 쭈그려 앉아 이불을 싸매고 보초를 섰다. 개도 내 옆에 궁둥이를 받치고서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밖에서 바람이 스치는 소리만 들려도 개는 현관문 틈에 코를 박았다. 나는 이 성실한 부하에게 보초 서는 일을 맡기고서 꼬약꼬약 잠이 들었다.


누군가 옆에서 숨만 쉬어주어도 외롭지 않은 밤이 있다. 그 밤이 그랬다.




매일같이 악몽을 꿨다. 혼자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낮에도, 밤에도 정수리에 정신을 똑바로 달고 다녀야 했다. 밤은 두려웠다. 가족의 반대를 뒤로하고 호기롭게 혼자 살 집을 구했던 내 결정이 명백히 틀렸음을 이사 첫 날 곧바로 깨달았다. 진즉에 알았어야 했다. 나는 엄청난 겁쟁이었다. 그동안 나는, 낮이건 밤이건 가족이 곁에 있다는 안도감을 자양분으로 삼아, 자유로이 잎을 쭉쭉 뻣어대는 열대식물처럼 살아왔던 터였다. 밤마다 어둠과 고요가 집을 덮었다. 나는 빼죽빼죽 말라갔다. 열대우림의 푸른 초목이 어느새, 손가락 만한 선인장으로 쪼그라들어있었다.

 

개는 내가 잠들 때까지 옆에 누워 자는 척을 했다. 그러다가 내가 조용해지면, 슬그머니 일어나 내 발 끝에 가서 잠을 잤다. 나는 그 배려가 좋았다. 어렸을 때 엄마는 내 곁에 누워 등을 토닥토닥 두들기며 재워주셨는데, 나는 그 느낌이 좋아서 잠을 꾹 참곤 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등 어딘가에 엄마가 도닥거리던 손길이 남아있는 것 같다. 아무튼 엄마는 내가 잠든 줄 알고 조용히 일어나서 못다한 집안일을 하셨는데, 나는 그때서야 안심하고 진짜 잠을 잤다. 집에 누군가 아직 깨어있다는 사실. 그것은 자다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자도 괜찮을 어린이의 특권이었다.


이불 끝자락에서 자고 있는 개를 발로 살살 만져보며, 그때 그 특권을 작게나마 다시 느꼈다. 혹여 자는 동안 누가 나를 업어가려 한다면, 개는 벼락같이 뛰쳐나가 정강이를 앙 하고 물어줄 게 분명했다. 두 뼘도 안 되는 작은 강아지가 밤이면 커다란 어미개가 되어 나를 품어주었다. 무섭지 않은 밤이었다.







다시 밤이 두려웠다. 아기는 야경증을 앓았다. 태어나서 30개월까지, 아기는 밤마다 너댓 번씩 깼다. 그냥 잠시 깨는 거면 좋으련만, 아기는 정신을 못차리고 울부짖었다. 경기하듯 무아지경으로 울었다. 밤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아기가 새근새근 잘 때조차 다시 언제 깨어날지 몰라 조바심이 났다. 아기는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서야 다시 잠을 잤다. 사랑스러워도 모자랄 나의 아기가, 밤이 되면 너무나 무서운 존재로 변했다. 아기가 울 때마다 아랫집에서 시끄럽다는 항의의 표시로 벽을 쳐댔다. 아기의 울음과 밤마다 아랫집에서 보내오는 경고음에 나는 점점 피가 말라갔다. 나는 조각잠을 잤다. 정신도 조각조각 뜯어졌다. 낮 동안에 아기의 예쁜 짓을 보며 겨우겨우 조각난 마음을 이어 붙였다. 하지만 한 번 뜯어진 마음은 밤마다 다시 쉬이 풀어헤쳐졌다.


다음 날 아침이면 아기는 밤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신나게 놀았다. 표정이 그렇게 밝을 수가 없었다. 야속했다. 아기를 붙잡고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밤잠을 잘 자는 아기를 둔 엄마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아기에게 죄 진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왜 그렇게 잘 먹고 잘 자는 애들이 많은 건지.


그 날 새벽에도 아기는 어김없이 깼다. 도무지 울음을 멈추지 않기에, 차라리 우리 날밤을 새어보자 하는 못된 심보로 아기를 번쩍 안아 거실로 나갔다. 아기는 눈도 뜨지 않고 울어댔다. 거실 구석에서 자고 있던 개가 놀라서 다가왔다. 늙은 개는 아기 옆에 등을 대고 앉았다. 아기는 울면서도 제 옆구리에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지 손으로 개를 더듬었다. 한참을 그러더니 아기 눈물이 쏙 들어갔다. 내가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멈추지 않던 울음을 개가 용케 그쳐주었다. 아기는 한동안 개집에서 같이 누워있다가, 웃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아기는 푹 잤다. 오랜만의 꿀잠이었다.

이제 우리에게 그런 벼락같은 밤들은 지나가고 없다. 아기가 커서 제법 말을 할 줄 알게 되자, 나는 아기에게 그때 왜 그렇게 밤마다 울었냐고 물었다. 아기는 이렇게 말했다.


그건 눈물 마음이지, 나도 어쩔 수가 없어.



그 능청스러움에 어이가 없어, 그러면 왜 이제는 울지 않는 거냐고 물었다. 아기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개가 밤을 꿀꺽 먹어서 그래.



개가 밤을 꿀꺽 먹어 준 덕분에,

아기는 더이상 밤이 무섭지 않다.  


개는 여전히 밤을 지킨다.

늙은 개의 숙명이다.





아기는 금요일을 기다린다. 금요일은 아기와 개가 같이 잘 수 있는 유일한 <공식 동침 데이>이다. 아기는 매일 늙은 개와 함께 자고 싶어 한다. 하지만 밤만 되면 자박자박 걸어다니는 개 발자국 소리에 가족들이 잠을 설치기 일쑤라 나는 단 하루, 공식적인 동침을 허락했다.


금요일이 되면 늙은 개는 말끔히 목욕을 한다. 안방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나 단 하루 빗장이 풀어지는 금요일이다. 늙은 개는 이날만큼은 당당하게 안방 문을 열고 들어온다. 코로 방문을 비집고 들어와 망설임 없이 침대로 올라온다. 아기는 개의 따뜻한 배를 쓰다듬으며 꿈뻑꿈뻑 잠이 든다. 개는 끝까지 아기 옆에서 있어주다가, 늘 그랬듯 아기가 잠들면 내 발 끝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제 나마저 잠이들면, 개는 밤을 꿀꺽 먹어버릴 것이다. 악몽도 눈물도 없는 밤이다.    






아기와 늙은 개 [키우고, 기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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