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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와 늙은 개-세상에 착한 개는 없다

나나수키 2018. 4. 1. 14:18
아기와 늙은 개


세상에 착한 개는 없다.

말 잘 들어서 착하다는 말.

by 목요일 다섯시 Feb 22. 2018


옳지, 착하다.


당신이 그런 말 할 때

나는 기분이 좋아져요.

어쩐지 조금 우쭐해지기도 해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럴 기분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그걸로 당신 마음이 좋아진다면,

앞으로도 착하게 지낼게요.


당신의 기분이 좋다면,

난 그럴 거예요.


당신을 무척 좋아하니까요.





개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다.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날이었다. 나와 개는 초록이 수북한 공원을 찾아 걸었다. 볕이 뜨거워서인지 나무 그늘 아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있을 뿐, 인적이 드물어 개와 산책하기 좋은 길이었다. 우리는 조용조용 걸었다. 그러다가 운동화 끈이 풀어지는 바람에, 나는 잠시 앉아 신발 매무새를 고쳤다. 개는 목줄을 두르고 나에게서 서너 걸음 떨어져 있었는데, 갑자기 깨갱깨갱 울었다. 뒤돌아보니 지나가던 남자가 개를 발로 걷어 차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마치 축구공을 차듯 개에게 발길질을 해댔다. 순식간이었다.


나는 달려가서 그 남자를 붙잡고 삿대질을 했어야 했다. 왜 남의 개를 발로 차느냐고. 똑같이 그 남자를 발로 차 줘야 했다. 하지만 스쳐가는 남자의 눈은 어렴풋이나마 무척 흐렸고, 어두웠다. 손에는 기다란 막대를 들고 있었고, 다른 손에 들린 검은 봉지에서는 소주가 분명할 병들이 서로 부딪치며 짤랑짤랑 소리를 냈다. 나는 돌처럼 굳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개가 바르르 떨었다.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 그 남자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다였다. 남자가 공원을 벗어나 마침내 작은 점으로 보일 때까지 우리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귓가에 짤랑짤랑 병 부딪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는 듯했다.  





얼마 전, 아기를 데리고 나섰다가 식당 문 앞에 <노 키즈존>이라고 쓰여있어서 발길을 돌린 적이 있다. 잠시 내가 식당 주인이 됐다고 생각해 보니 그래, 시끄럽게 구는 아이들이 싫을 만도 하겠다 싶다. 그러다가 며칠 뒤,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카페를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당했다. 여기저기 노 키즈존이 유행처럼 늘어난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엄마들은 언젠가 그 카페에서 소란을 피워 <노 키즈존>이라는 팻말을 달게끔 했을 누군가를 떠올리며, 힘없이 수긍한다. 나는 요즘 밥을 많이 먹지 않아도 자주 마음이 먹먹하다.  


집에 돌아와 발을 쭉 편다. 까짓 거 집에서 밥 먹고 커피를 마시지, 해버린다. 틀어놓은 뉴스에서 개에 관한 소식이 흘러나온다. 농식품부에서 <반려견 안전관리 대책>이라는 걸 발표했단다. 솔깃한 마음에 유심히 보았다. 기대했던 '반려견(을 위한) 안전관리 대책'은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인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반려견 안전관리 대책'이다. 


몸집이 큰 개들, 그러니까 발바닥에서 어깨뼈까지가 40센티 이상인 반려견을 '관리대상'으로 지정해서 관리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법이 정착되면 관리대상견들은 공격성이 있는 개로 간주되어 밖에 나갈 때 꼭 입마개를 착용해야 한단다. 순하고 공격성이 없는 큰 개일지라도, 여름 땡볕 아래에서 입마개를 해야 한다. 참고로 개들은 땀샘이 따로 없기 때문에 입을 통해 열기를 내보내야 한다. 개가 헥헥거리는 건 체온조절을 위해 개가 찾아낸, 하나의 살 길이다. 입에 재갈을 물리면 사람은 조금 더 안전해진다. 그리고 개는 살길이 막힌다. 


문득 개를 걷어찼던 사람을 생각해본다. 키가 컸나, 작았나 떠올려봐도 어렴풋하다. 잊고 싶은 기억은 금세 휘발한다. 다행이다 싶다가도 억울해진다. 개를 향한 사회의 잣대를 그대로 가져와 어른에게 대어 본다. 키가 크고 공격적이고, 막대기를 든 사람에게도 재갈을 물려야 하려나. 식당에서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고, 새치기를 하고, 소란을 피우는 어른은 식당에 들어오지 말라고 <노 어덜트 존>을 써붙여야 하려나. 할 말은 많지만 말할 줄 모르는 아기와 개들은 그저 침묵한다. 그리고 어른들은 그 침묵 위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규제를 꼬약꼬약 만들어낸다.


버릇없는 아이와 폭력적인 개들이 이슈를 만드는 세상이다. 하지만 더 들여다보면 거기엔 보호자의 무관심과 책임의 부재가 있다. 약한 이들에게는 그들을 곁에서 돌봐야 할 어른이 필요하다. 아이가 난리법석을 떨 때 단호하게 "안 돼."라고 말할 어른, 공격성이 강한 개를 산책시킬 때 짧게 목줄을 잡고, 개를 안아 올릴 어른다운 어른 말이다. 아기는 부모의 뒤통수를 보고 자란다. 개도 자신의 보호자를 보고 배운다. 제재와 관리가 필요한 이는 아이와 개가 아니라, 그 곁을 지키는 어른이다. 




세상에 착한 아기는 없다. 
나쁜 아기도 없다.
세상에 착한 개는 없다. 
나쁜 개도 없다.
그저 착하고 나쁨을 모르는, 
아기와 개가 있을 뿐이다.




밤이 내린다. 집 근처 으슥한 곳으로 개를 데리고 나간다. 따뜻한 볕을 쬐어주고 싶지만, 개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는 차라리 밤 시간을 선호한다. 이 추위에도 나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각자의 개를 데리고 나와 아스팔트 길 옆에 난 작은 풀밭에서 시간을 보낸다. 가만가만 밤 산책을 즐긴다. 뭐라 말하는 사람이 없으니 개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보인다.


숨죽이며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도 보인다. 그들은 고양이보다도 더 살금살금 다닌다. 우리는 조용히 서로를 모른 척하며, 하지만 반갑게 스쳐 지나간다. 밤의 거리에서 개를, 고양이를, 그리고 어둠 속에서 종종걸음을 하는 미물을 마주치면 조용히 모른 척 해주자. 한낮의 시간은 이미 사람들이 차지해버렸으니 이 밤, 잠시나마 그들에게 숨 돌릴 시간을 주자. 때로는 먹을 것을 나누어줘도 좋다. 그들이 조용히 기지개 켜는 시간을 방해하지 말자. 아무도 그들에게 착하다 나쁘다 말하지 않는 시간이다. 





"말 잘 들어서 참 착하네."


우리가 쉽게 내뱉는 한 마디.


그러나 이 말 뒤편에는,

내내 소리 없이 참아준 

너희의 배려가 숨어있다.


약하디 약한 너희를 상대로

우리는 스리슬쩍 권력을 맛보며

순종하는 하루를 강요한 건 아닐까.














이 글을

포도알 같은 두 눈을 달고 다니던,

그리고 이제는

가는 다리로 타박타박 걸어

무지개다리 건너편에 도착했을,

내가 아는 개, 마로에게 바칩니다.


아기와 늙은 개 [키우고, 기르다]
thursday5pm@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