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인터뷰

전라도 닷컴 황풍년 발행인

나나수키 2016. 9. 13. 08:45

“항꾼에·싸목싸목·암시랑토…촌스런 말이 아름답죠”

등록 :2016-09-11 18:19

 

‘평범한 지역사람들 이야기’ 14년째
일상에서 쓰는 ‘입말’ 그대로 살려
전국 애독자 3천여명 향토지 ‘명성’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펴내
전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 회장에
“서로 도와가며 지역정서 지키려”

‘월간 전라도닷컴’ 황풍년 발행인

황풍년 <월간 전라도닷컴> 발행인.
황풍년 <월간 전라도닷컴> 발행인.

<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황풍년(52) <월간 전라도닷컴> 발행인이 최근 펴낸 세번째 책이다. 잡지에 쓴 기사를 고친 글과 새로 쓴 글이 절반씩 들어갔다.

그가 올해로 14년째 펴내고 있는 잡지는 전라도란 공간과 평범한 그 지역 사람들의 얘기를 다룬다. 향토지이지만 전국적 명성을 얻은 지 오래다. 비호남 출신인 박원순 서울시장, 이철수 판화가,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등도 애독자다.

그는 최근 지역 출판·잡지사 20여곳이 참여한 전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 회장으로도 뽑혔다. 황 발행인을 지난 9일 전화로 만났다.

인터넷이 공짜로 뉴스를 쏟아붓는 시대에 ‘14년째 순항하는 지역 기반의 오프라인 잡지’라니? 게다가 평판도 좋다. “독자가 3천명을 조금 넘죠. 가장 많을 때가 5천명이었고, 최근엔 조금씩 줄고 있어요.” 정기독자의 절반은 비호남 거주자이고, 이 가운데 전라도가 고향이 아닌 독자도 꽤 된다고 했다.

그동안 잡지를 딱 두번 쉬었다. “기업 후원이 끊기면서 돈이 없어 2007년 12월호를 못 냈죠. 재작년 5월호도 못 냈어요. 세월호 참사 직후여서 이미 만들어 놓은 잡지가 멀쩡한 세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내지 않고, 대신 5~6월 합본호를 냈죠.”

그는 잡지가 이처럼 자리를 잡게 된 배경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대부분 인쇄 매체가 유명하거나 성공한 사람을 다룹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전라도에서 일하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삶의 방식, 문화를 기록하죠.” 잡지는 창간 때부터 인용 부호 안의 말을 입말 그대로 옮기고 있다. 고 한창기 선생이 <뿌리깊은 나무-민중자서전>을 통해 입말 구술로 책을 낸 적이 있지만 저널에서 이런 원칙을 적용하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저널의 표준말 표기 원칙을 깬 것이다. “지역말을 표준말로 바꾸면 기록의 왜곡이 생깁니다. 최소한 따옴표 안에서라도 그 사람이 말한 정확한 언어를 기록하자고 했어요.” 이런 원칙은 점차 확장돼 지금은 따옴표 바깥의 기사에서도 자주 쓴다. “솔찬하다, 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대단하다, 훌륭하다로 쓸 필요가 없지요.”

비호남 출신 독자의 반응이 궁금했다. “잡지를 보면서 자신이 살던 동네 입말을 떠올린다고 해요. 잡지에 가득한 전라도 토속 정서를 보면서 어머니 생각이 난다고도 하지요.”

지역말을 표준말로 바꾸는 게 왜 ‘기록의 왜곡’일까. “말을 글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뉘앙스가 달라져요. 더구나 하지 않은 말(표준말)로 바꾸면 뜻이 더 훼손됩니다.” 지역말 둘을 예로 든다. “미안하면서도 고마울 때 쓰는 말로 ‘아심찬하요’가 있죠. 고맙다고만 하면 뜻이 살지 않아요. ‘귄있다’는 말은 내면의 아름다움까지 담고 있는데 예쁘다고 하면 말이 안 통하죠.”

잡지는 올해로 6년째 ‘아름다운 전라도 말 자랑대회’를 열고 있다. “저는 지역말을 쓰는 게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그가 사투리 경연대회란 이름 대신 ‘아름다운’, ‘자랑’을 대회 명칭에 붙인 이유다. “말이 없어지면 말에 담긴 문화가 사라집니다. 지역말을 좀더 치열하게 보존할 필요가 있어요.”

책엔 ‘전라도의 촌스러움’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이야기들이 풍성하다. “아이고 물짜(형편없어). 이날 팽상(평생) 흙만 몬치고(만지고) 산께 짜잔해(못났어).” 음식 취재를 위해 수소문해 찾은 할머니들은 한결같이 자신을 낮춘다. 절대 빈손으로 손님을 돌려보내는 법도 없다. “누구라도 걱정해주고, 밥 먹여주고 손에 뭔가를 쥐여주는 어르신의 마음씨”에서 그는 아름다움을 본다.

“서울 같은 대도시에서 아주 번듯한 커피숍에 앉아 창밖으로 어슬렁거리는 노숙자를 보는 것은 너무 일상적이고 정물화된 풍경입니다. 촌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웃이 한데서 밥 먹고 자는 걸 놔두고 두 다리 뻗고 잘 수가 없어요.” ‘사람과 생명에 대해 한없이 짠해하고, 몸을 놀리며 사는 게 떳떳하다고 생각하고,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진득하게 오래된 것을 지켜볼 수 있는 마음.’ 그가 풀어낸 촌스러움의 미덕이다. “우리 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미덕이죠.”

그가 가장 좋아하는 지역 말은 항꾼에(함께), 싸목싸목(천천히), 암시랑토(아무렇지도)이다. “전라도의 정신이 담긴 말이죠.”

황 발행인이 3년 전부터 준비해온 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엔 <월간 전라도닷컴>과 비슷한 지향점을 가진 출판, 잡지사들이 모였다. “서로 도와가며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자는 뜻으로 만들었죠. 내년에 제주에서 첫 지역출판 도서전을 열기로 했어요. 지역출판대상도 운영할 생각입니다.”

그의 고향은 순천이다. 전라도 바깥에 머문 시기는 대학(고려대 불문과) 시절 포함해 딱 7년이다. 1991년 <전남일보> 공채에 붙으면서 고향 땅으로 돌아왔다. “그해 마침 중앙 언론사 시험이 없었어요. 당시 전남일보는 문순태 작가가 편집국장이었고 최하림·김준태 시인이 근무하고 있었죠. 이분들이 일하는 신문에 대한 로망이 있었어요.”

앞으로 계획을 물었다. “박물관을 세워 (잡지에 나온) 어머니들의 이야기나, 일하는 장면 사진을 전시하고 싶어요. 악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 존재했다는 걸 알리고 싶어요.” 이런 말도 했다. “우리 시대에 전라도란 이름으로 뭔가를 하는 건 늘 위태위태합니다. 창간 초기엔 정치적 결사로 보기도 했어요. 한결같이 똑같은 콘텐츠를 보여주면서 지금은 이런 우려가 불식됐죠. 하지만 지금도 ‘전라도’에 대한 왜곡, 이지메는 계속되고 있어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박갑철 작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