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인터뷰

설정스님,내 삶의 멘토로 설정

나나수키 2016. 8. 3. 10:29

“중생 구제 지향하지만 이기적인 승려도 많아”

이길우 2016. 08. 03                     

선수행 종가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

하안거 중 일주일에 한번 쉬는 날
큰스님이 붓을 들었다
 
누에고치서 비단줄 뽑아져 나오듯
거침없이 줄줄줄 휘갈긴다
 
“승려는 음식·옷·잠 부족해야 하고
신심·원력·공심은 꼭 가지고 있어야”
 
3포, 5포 세대의 청년에 용기 강조
“포기조차 포기해야 길 열려”
 
“한국 정치인들은 선거기술자에 불과
해가 비추고 싶은 곳만 비추지 않듯
덕성 있는 정치인 아쉬워”
 
덕지덕지 기운 15년 된 삼베옷 입고
젊은 후학들과 함께 
하루 8시간 정진하고 농사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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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법당 한쪽에 신문지를 까는 스님, 빨래집게가 달려 있는 긴 줄을 양쪽 벽에 연결하는 스님, 큰 한지 뭉치를 가져오는 스님, 정성 들여 간 먹물을 큰 그릇에 옮기는 스님, 여러 크기의 붓을 정리하는 스님….
 “오늘은 큰스님이 글씨를 쓰신다고 한 날입니다.” 설정 스님(74)의 시자인 석진 스님의 표정이 다소 들떠 있다. 점심 공양을 마친 설정 스님이 예고한 대로 붓을 잡으신다. 수덕사 능인선원의 향적당에는 큰스님의 글씨를 받으려는 불자들과 이를 지켜보는 스님들이 숨을 죽인다. 긴장감이 돈다.
 큰 붓을 잡은 스님이 거침없이 붓을 휘갈긴다. 靑山福滿(청산복만)이란 글씨가 순식간에 한지를 꽉 채운다. 隨處作主(수처작주·어디에 있든 주인이 돼라), 一日不作一日不食(일일부작일일불식·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도 마라) 등 정신과 생활 태도에 대한 경구도 초서와 행서 등 각종 서체로 한지를 장식한다. “이건 좀 사납게 쓰였다. 균형이 안 맞지. 다시 쓰자.” 거침없이 폐기처분이다.
 다소곳이 서 있던 한 스님이 글씨를 부탁한다. “앞으로 수행 정진에 도움이 되는 글을 부탁드립니다.” “그래, 알았네.” 큰스님은 큰 글씨로 無心(무심)이라고 쓴다. 긴 중국 한시도 마치 누에고치에서 비단줄이 뽑아져 나오듯 줄줄 한지에 쓰인다. 한 시간 정도 글씨를 쓰자, 큰 그릇의 검정 먹물도 바닥을 드러낸다.
 “감사합니다. 큰스님.” 스님에게 글씨를 받은 불자들은 삼배의 예를 한다.
 한동안 신문지 위에 놓였다가, 바람에 말리기 위해 빨랫줄에 걸어놓은 한지가 부드럽게 춤을 춘다. 흰 한지에 검은 글씨가 쓰여 있을 뿐인데, 어느 네온사인보다 화려하게 느껴진다. 눈이 부시다.
 “서예 스승이 계신가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없어, 그냥 혼자 쓴 거야. 그러니 제대로 못 써.” 스님의 글씨는 불교계에서 선필(禪筆)로 소문나 있다. “글이란 마음을 적는 거야. 마음공부를 하면 글은 저절로 따라와.” 유난히 길고 흰 눈썹이 인자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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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때 아버지가 절에 맡겨
 수덕사는 한국 불교 선수행의 종갓집으로 불린다. 수덕사 주지를 거쳐 2008년부터 덕숭총림의 4대 방장으로,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을 겸비한 대표적인 스님으로 꼽히는 설정 스님은 고입, 대입 검정고시 과정을 불과 16개월 만에 마쳤다. 그리고 뒤늦게 서울대 농대에 입학했다. 천재 소리를 들을 만하다. 다섯 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배운 스님은 열네 살에 출가했다. 학교도 다니지 않았다. 주역에 밝았던 아버지는 자신의 생일에 3남4녀 중 막내아들을 수덕사에 맡겼다. “당시 스님들이 나를 보고 ‘속가에 살면 마흔 전에 죽는다’ ‘상(相)이 중 상이니 절에 가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곤 했어요. 나빴던 건강이 출가하니 좋아졌어요.”
 설정 스님은 최근 <어떻게 살 것인가>(나무를심는사람들 펴냄)라는 인생 법문집을 냈다. 지난달 19일, 스님이 쓴 글씨가 펄럭이는 법당에서 마주 앉았다. 마침 검찰 고위 간부의 비위로 연일 사회가 시끄러웠다. “배운 사람이 양심을 저버리면 흉측한 짓을 하기 마련이지. 자신의 가정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에 큰 피해를 끼치기 마련이야. 가장 개혁이 필요한 곳이 검찰 조직이야. 검사들이 소신을 갖고 일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내친김에 정치인에 대해 물었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기본이야. 나와 다른 소리를 들어서 수용하는 아량이 정치인에겐 필요해. 비판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해. 그런데 지금 한국 정치인들은 선거기술자에 불과해. 정치인들은 사명적 존재라야 해. 선의지와 덕성이 자신의 지성과 합쳐져서 인생관과 가치관이 만들어져. 사명을 갖고 통치를 해야 해. 뼈저리게 수행을 해야 올바른 통치철학이 생기지. 태양은 자신이 비추고 싶은 곳만 비추지 않아. 그늘지고, 굴곡이 많은 곳에도 골고루 햇빛을 비추지. 그런 덕성 있는 정치인이 아쉽기만 해.”
 스님은 젊은이들은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3포, 5포 세대라고 하잖아. 포기하면 안 돼. 용기가 없으면 포기할 수밖에 없어. 가능성을 찾고, 미래에 대비해야 해. 포기하려는 마음조차 포기해야 길이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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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가 뒤 군대 갔다 와 검정고시
 스님은 힘든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출가한 뒤 군대까지 갔다 와서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어. 검정고시 학원 다닐 때 아침에 식빵 반 조각을 찬물과 함께 먹고, 점심은 굶고, 저녁에 다시 식빵 반 조각을 먹는 게 전부였어. 결핵도 앓았지. 혼자 주사기를 사다가 약을 주사했어. 대학에 입학해 누더기 승복을 입고 다니는 것을 보고 졸업 때까지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대준다고 제안한 분도 있었지. 받아들일 수 없었어. 수행자로 승가에 살아야 한다는 신념이 굳었기 때문이야.”
 스님의 방은 언제나 열려 있다. 도둑맞을 물건이 없기 때문이다. 여름에 입는 삼베옷은 15년 된 것이다. 이런저런 천으로 해진 곳을 직접 덧대서 입는다. 언뜻 디자이너가 일부러 정교하게 만든 옷처럼 보인다. 젊은 시절 봉암사에서 정진할 때 20년 입은 내복을 빨려고 내놓았더니 한 스님이 태워버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한국 불교가 제대로 가고 있나요?” 스님은 10여년 동안 수덕사 주지를 지냈고,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을 4년간 지냈다.
 “한국 불교는 대승불교(중생 구제)를 지향하면서도 소승불교(개인 해탈)의 성문(수행자), 독각(홀로 수행해 깨달음을 얻는 자), 아라한(높은 수행의 경지에 오른 스님)들에게 못 미치는 승려가 많아. 겉으론 대승불교지만, 실제 행동은 소승의 경지에도 못 이른 이기적인 승려가 많아. 승려들이 자질을 갖추고 제자리에 가 있어야 해.”
 그러면서 승려는 세 가지가 부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먹을 것이 부족해야 해. 수행할 만큼만 먹어야 해. 옷이 부족해야 해. 몸을 가릴 정도만 입으면 돼. 부처님 시대엔 매장한 뒤 시간이 흘러 백골이 다 떨어져나가고, 흙이 묻어 있는 옷(분소의)을 수행자들이 입었어. 또 잠이 부족해야 해. 도를 수행하는 데 가장 큰 방해꾼이 잠이야.”
 “그럼, 이 세 가지만 부족하면 올바른 승려가 됩니까?” “아니야. 승려가 꼭 갖고 있어야 하는 세 가지가 있어. 그것은 신심(信心), 원력(願力), 그리고 공심(公心)이야. 이 중 하나만 잘못돼도 다른 것이 제 역할을 못해.”
 
“기자는 모든 것에 거리낌이 없어야”
 경허·만공·벽초·원담 스님으로 이어진 수덕사의 선맥을 잇고 있는 설정 스님은 산중의 최고 어른임에도 지금도 젊은 후학들과 함께 하루 여덟 시간을 정진하고 일하고 농사짓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문득 스님의 구멍 난 양말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 신은 탓이다. 엄지발가락 바닥에 큼직한 구멍이 나 있다. 글씨를 쓰던 날은 하안거 가운데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이다. 스님들은 이날 자란 무명초(머리칼)를 면도하고 목욕도 한다. 
 준비한 먹물이 바닥을 보일 즈음, 기자를 보고 “무슨 글자를 써줄까?” 하고 묻는다. “괜찮습니다”라고 답변했다가, 바로 “아닙니다. 하나 써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무슨 글을 써줄까?”라고 재차 물으신다. 머뭇거리며 답변을 못하자, 큰 붓을 잡고 無碍(무애)라고 써주신다. “기자는 모든 것에 거리낌이 없어야 해.” 얼굴이 화끈거린다.
예산/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