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역사상 뛰어난 등반가는 단명했다. 어쩌면 산속에 일찍 스며드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런 등반가들은 자신의 체험을 글로 남기는 것에 인색했다. 자연은 굳이 글이 아닌 경험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라인홀트 메스너(72)는 특별하다.
그는 살아 있는 산악계의 전설로 꼽힌다. 인류 최초로 지구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정상을 1978년에 무산소로 올랐다. 지상보다 산소량이 30% 정도밖에 안 되는 8848m를 산소통의 도움 없이 맨몸으로, 그것도 셰르파의 도움 없이 혼자 올랐다. 이후 8000m급 14봉우리를 차례로 무산소로 오른 최초의 산악인이 됐다. 남의 도움 없이, 장비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고산에 오르는 ‘알피니즘’을 몸으로 실천했다. 또 70권에 가까운 책도 썼다. 이탈리아와 독일에서 세차례 산악문학상을 받을 정도로 문학성 높은 글을 생산해 낸다. 남북극과 고비사막을 단독 횡단하는 등 극한의 ‘수직 모험’에서 ‘수평 모험’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혔다.
그런 메스너가 처음 한국에 왔다. 지난 30일 개막된 제1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초청받아 아내와 함께 왔다. 궁금했다. 무엇이 그를 죽음을 내걸고, 상상하기 어려운 모험의 세계로 몰고 갔는지? 과연 하늘과 맞닿은 정상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그런 ‘미친 행위’는 자신에게, 인류에게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
1978년 에베레스트 첫 무산소 등정
8000m 14개봉 성공한 첫 산악인
70여권 책 펴내 ‘산악문학상’ 받기도1일 울주산악영화제 초청 첫 방한
“할리우드식 산악영화 개소리같다”
‘엄혹한 현실’ 직접 영화 만들 계획1일 개막한 ‘제1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참석한 라인홀트 메스너(가운데)가 박재동(왼쪽) 축제추진위원장, 신장열(오른쪽) 울주군수와 함께 핸드프린팅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박 위원장과 신 군수는 지난해 5월 이탈리아의 트렌토산악영화제에서 메스너를 만나 이번 영화제에 초청했다.
지난 1일 영화제가 열리는 울산시 울주군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의 산악문화센터 2층에서 만난 메스너에게 우선 고산의 정상에 올랐을 때의 느낌을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그의 대답은 솔직했다. “정상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곳에서 느끼는 기쁨과 환희는 적었어요. 산소도 부족하고, 좁은 공간이라 위험했어요. 빨리 내려가고 싶었어요. 정상 등정의 기쁨은 베이스캠프에 내려와서 비로소 느낄 수 있었어요. 베이스캠프에서 안도감을 느낄 때마다 새로 태어나는 기분이죠. 사실 정상은 너무 고요해요. 고독의 바다에서 나와 우주의 안식처로 가는 느낌도 들긴 했어요.”
그는 ‘흰 고독’이라는 용어로 정상에서 느끼는 외로움을 표현했다. 또 ‘검은 고독’이라는 용어를 쓰기도 했다. 혼자 극한의 등반을 해온 그이기에 ‘고독’이라는 단어는 각별했을 것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혼자입니다.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하고, 배워야 합니다. 혼자 등반하면 완전한 자유를 느낍니다. 무정부주의자가 됩니다. 무엇으로부터도 속박을 받지 않아요. 하지만 그런 고독을 감당하려면 많은 연습을 해야 합니다. 산에 혼자 오르면 고독이 엄습해 질식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밀어닥치기도 합니다. 그런 두려움을 통해 죽음까지 이해하게 됩니다. 고독이 더 이상 파멸을 의미하지 않게 됩니다. 고독과 고요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얻어요. 놀라운 느낌이죠. 두려움이 아닌 힘이 되는 그것이 바로 ‘흰 고독’입니다.”
오스트리아계 이탈리아인으로 알프스 자락 농촌에서 태어난 그는 첫번째 아내와 이혼하고 ‘검은 고독’을 느꼈다고 했다. 그 고독은 고통스러운 좌절로 자신을 이끌었다. 그는 매우 현실주이자이다. 할리우드의 산악영화에 대해 “개소리 같은 영화”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현실은 환상이나 영화보다 훨씬 ‘강렬’합니다. 등반이라는 현실을 낭만적으로 포장하지 않고 실제 상황을 전달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는 동생을 산에서 잃었다. 1970년 9남매 중 손아래 동생이자 자일파트너였던 귄터와 함께 낭가파르바트(8125m)를 올랐다가 하산길에 동생은 산사태에 쓸려 실종됐고, 자신은 동상으로 7개의 발가락을 절단하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런 동생을 찾으러 세번이나 그 산을 오르기도 했다.
그는 신(神)에게 의지할까? 고산 등정하는 이들은 대부분 산의 신에게 경배하고 오른다. 자신의 안전과 목숨을 지켜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갈구한다. 하지만 메스너는 “믿는 종교가 없다”고 말했다. “인간이기에 종교나 신의 영역을 보거나 느낄 수 없어요. 산이라는 현실 뒤에 무엇이 있는지는 몰라요. 그 산에는 ‘불확실’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신은 인간이 만든 창조물이며 환상입니다. 불변의 진리는 자연에 있고, 행복은 산의 정상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 ‘특별’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오늘날 당신을 살아 있는 전설로 만든 것이 남다른 호기심·용기·체력·행운인가요?”
“나는 분명 평범합니다. 하지만 남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실패를 했을 때 무릎 꿇지 않고 일어나 다시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계속 시도하면서 시행착오를 통해 배웠습니다. 저보다 실력이 좋은 알피니스트 가운데 90%는 산에서 죽었습니다. 전 철저한 준비를 해 살아남았습니다. 운이 좋으면 살고, 운이 나쁘면 죽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산에 오를 때는 항상 살아서 내려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8000m급 14좌 무산소 등정을 이룬 공로로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 주는 메달을 거부한 일화도 이야기했다. “산을 누가 어떻게 잘 오르느냐에 대한 기준도 없고, 받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알피니즘엔 규칙이 없으니까요.”
그는 “불가능한 세계가 사라지면 등반의 역사도 사라진다”며 “불가능의 세계를 남겨두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 10년간 자신이 경험한 산행을 영화로 남기는 작업에 몰두할 계획이라고 했다. 할리우드 액션이 아닌 실제의 엄혹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좌절하고 절망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을 들려줬다. “두려움은 감정입니다. 그런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마지막 순간에 오는 의심을 극복할 수 있는 지식과 경험입니다. 그리고 철저한 준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