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
하재영 지음/창비·1만5000원‘피피’가 곁에 온 순간부터 작가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기 전까지, 그렇게 될 것이라곤 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 한 동안 “머릿속에는 온통 피피 생각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가의 눈길은 또다른 수많은 ‘피피’들, 그리고 그들의 운명을 좌우하는 사람과 세상으로까지 향했다. 피피는 소설가 하재영씨가 2006년 12월 엉겁결에 입양하게 된 반려견의 이름이다. 견종은 치와와, 현재 나이는 12살.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훨씬 넘겼지만 몸무게는 겨우 2㎏ 남짓한, 작디 작은 생명체다.
<고통은 겸손을 가르친다>. 책에는 지난해 유기견 그림 연작 <잃어버린 산책>을 낸 조민영 화가가 아크릴 유화로 섬세하게 그린 개들의 모습(2015년작) 이 실려 있다. 창비 제공
피피가 새 주인을 만난 그 겨울은 하재영 작가가 단편소설 ‘달팽이들’로 등단한 지 1년이 채 안된 때였다. 당시 그는 “작가라곤 하지만 백수나 다름 없는 20대 여성,(…) 일거리도 통장 잔고도 없이 월세 주택에서 혼자 살고 있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피피는 태어난 지 몇 달도 안돼 하루종일 돌봄이 필요한 젖먹이였다. 개를 키울 형편이 아니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은 지은이가 피피와 한집살이를 하게 된 것을 계기로 2013년부터 동물단체 팅커벨 프로젝트에서 유기견 구조, 임시보호, 입양 활동을 하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다. 더 정확히는 최근 몇년새 전국의 개 번식장, 경매장, 보호소, 도살장을 취재하고, 그 과정에서 만난 번식업자, 유기동물 보호소 운영자, 육견업자 등 다양한 사람과의 인터뷰와 관련 통계자료 등을 통해 한국 개 산업의 실태를 담아낸 논픽션 문학이다. 누군가 거두지 않았다면 식용견으로 도살되거나 안락사를 당하거나 길거리 죽음을 피하지 못했을 수많은 ‘피피’들에서 시작해 자신에 대한 성찰, 인간과 동물의 관계,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까지 시야와 생각이 확장되어 온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피피를 들이기 전까지 작가는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었다. 애초 피피는 작가의 지인 커플이 기르던 애완견이었다. 불화 끝에 헤어지기로 한 두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서로의 상처가 소환되는 걸 꺼렸다. 그렇게 갑자기 갈 곳을 잃은 피피를 결국은 하재영 작가가 떠안게 된 것. 지은이는 피피를 처음 맞이한 순간이 지금도 또렷하다.
<지나간 겨울바람은 차갑지 않다>. 책에는 지난해 유기견 그림 연작 <잃어버린 산책>을 낸 조민영 화가가 아크릴 유화로 섬세하게 그린 개들의 모습(2015년작) 이 실려 있다. 창비 제공
<무제>. 책에는 지난해 유기견 그림 연작 <잃어버린 산책>을 낸 조민영 화가가 아크릴 유화로 섬세하게 그린 개들의 모습(2015년작) 이 실려 있다. 창비 제공
“내 손가락 마디보다 더 작은 발로 아장아장 걸어오더니 내 손을 핥기 시작했다. 혀가 닿는 곳마다 간질간질하고 찌르르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까지 나는 동물을 만져본 적이 거의 없었다. 동물이 내 손을 핥는 일도 처음이었다. 뿌리치고 싶기도 했지만 피피가 처음 만난 내게 호의를 표시하는 것이란 생각에 참았다. 그날 밤 나는 불 꺼진 방을 자꾸 돌아다니는 피피가 신경 쓰여서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잘한 일일까?”
개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던 지은이가 피피를 키우는 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피피도 소유 개념이 있었고, 고통을 피하려 했고, 두려움을 느꼈고, 쾌락을 추구했다. 반려동물은 “영원히 자라지 않는 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이가 들어도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고, 보호자와 평생 종속 관계를 맺는다는 점이 그랬다. 반려견이 ‘동물’이라는 종의 집합이 아니라 일상을 함께하는 개별적 존재로 다가오자 피피의 ‘실종’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생각이 미쳤다. 처음으로 ‘유기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다. 그런 관심은 인터넷 정보 검색, 커뮤니티 가입, 유기견 후원과 임시보호, 개 식용 반대처럼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참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6월 작가가 개 산업에 대한 르포를 쓰려 잠입 취재를 갔던 경기 남양주의 한 개농장 분위기는 기묘했다. 빼곡히 우거진 산길을 헤매다가 희미한 음악 소리에 이끌렸다. 가까이 갈수록 음악 소리가 커졌다. 뻥개장(철제 사육장)에 갇힌 100여마리 개들의 울부짖음은 그 소리를 묻으려 확성기로 틀어놓은 올드 팝송 ‘에버 그린’과 뒤죽박죽 섞였다. 사방은 썩은 음식물과 개 배설물이 뿜어내는 악취가 진동했다. 죽음의 냄새와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이라니. 국내 개 농장의 일반적 풍경이다. 일부 개 농장은 번식장과 도매상, 도살장 등을 겸하기도 한다.
<잃어버린 산책>. 책에는 지난해 유기견 그림 연작 <잃어버린 산책>을 낸 조민영 화가가 아크릴 유화로 섬세하게 그린 개들의 모습(2015년작) 이 실려 있다. 창비 제공
<삶은 흐른다>. 책에는 지난해 유기견 그림 연작 <잃어버린 산책>을 낸 조민영 화가가 아크릴 유화로 섬세하게 그린 개들의 모습(2015년작) 이 실려 있다. 창비 제공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인 개 유통 경로는 번식장-경매장-판매처(애견숍, 동물병원)이다. ‘강아지 공장’으로 불리는 번식장은 농림축산식품부 통계로만 1000여곳, 동물보호단체의 추산으론 3000여곳에 이른다. 하지만 공식 신고된 번식장은 188곳(2016년 기준)에 불과하다. 정부 통계로 약 80%, 동물보호단체 추산으론 약 94%가 불법 번식장인 셈이다. 그러나 불법번식장은 적발돼도 1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받을 뿐이다. 약간의 벌금을 물더라도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빨리 강아지를 “밀어내는” 것이 번식업자에겐 더 남는 장사다.
반려동물 문화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예쁘고 충실한 견종만 선호하는 추세는 개 축산업의 구조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 “품종견은 반려견, 혼종견은 가축”이라는 도식이 굳어진데다, 일부 무책임한 견주들 때문에 길거리에 버려지는 유기견이 정부 공식 통계로만 한해 6만 마리가 넘는다. 그 대부분은 안락사(살처분)되거나 식용으로 유통된다. 그러나 현행 법규상 개는 가축이지만 ‘식품’은 아니다. 식용견의 모든 도축과 유통이 위생 관리와 통제의 사각지대에서 불법으로 이뤄지는 이유다. “인간 순혈주의의 차별의식이 동물 순종주의에도 그대로 적용된” 반려동물 문화, 그리고 혼종견이 다산인 경우가 많은 것도 유기견 양산에 한 몫 한다. 한 유기견보호소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믹스견은 끝도 없이 태어난다.”
개가 가축화한 시기는 대략 3만~1만5000년 전 구석기시대다. 일군의 늑대 무리가 사람들이 먹고 남긴 음식 찌꺼기를 노리고 제 발로 찾아들었다. 야생에서 가축으로 길들여진 첫 동물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종이 다변화하면서 개는 단순한 가축을 넘어 사람과 가장 친근한 반려동물이 됐다. 그러나 한국에서 개의 지위는 독특하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반려견이라는 지위와 인간에게서 가장 멀고 비참한 식용동물이라는 이중적 지위가 함께 있다. 가축이나 반려동물 중에서도 유독 한국의 개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하재영 작가의 삶을 바꿔놓은 반려견 ‘피피’. 하재영 제공
이 책의 제목은 비슷한 제목의 또다른 책을 떠올리게 한다. 1943년 독일, 나치즘에 맞선 국민적 저항을 호소하던 지하운동그룹 ‘백장미단’을 주도한 뮌헨대 대학생 남매의 삶을 그린 소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다. 스무살 젊은 남매는 나치즘의 인종학살과 전쟁의 죄악상을 비판하는 전단을 뿌리다가 게슈타포에 체포돼 처형됐다. 하지만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그들의 믿음은 불멸한다. 유기견 르포에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이란 제목을 붙인 것도 인간과 가까운 반려동물을 통해 생명의 가치와 존엄성을 되새겨보자는 뜻일 터이다. 작가는 “동물 존중과 인간 존중이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둘은 약자에 대한 보살핌, 생명에 대한 존중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징하다.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한편 작가와 출판사는 지난달 하순부터 이달 25일까지 진행하는 스토리펀딩으로 모은 기금을 동물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 12일 오후 현재 후원금은 목표액(500만원)보다 40%나 많은 700만원을 넘어섰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갇혀 있던 개들 눈빛·표정이 힘들었어요”[인터뷰] 하재영 작가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지은이 하재영 작가가 11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쓴 하재영 작가가 11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소설가 하재영은 르포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쓰기 전까지 험한 현장 취재는커녕 반려동물을 만져본 적도 거의 없다고 했다. 11일 서울 한겨레신문에서 지은이와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피피는 잘 지내는지?
=벌써 12살, 노년이 됐다. 순종견들은 유전병이 많은데, 치와와 견종인 피피는 간질·발작이 있어 약을 상복한다. 내가 2013년부터 유기견 임시보호에 참여하면서, 집에 데려오는 다른 강아지들과 함께 지내기도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모든 사람이 유기견 구호활동을 하거나 동물권에까지 관심을 갖는 건 아닌데?
=피피를 처음 입양하자마자 ‘피피를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어로만 알던 ‘유기견’이 내 문제가 되면서 동물단체 후원을 시작했다.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뭘까, 생각하다가 팅커벨 프로젝트에서 임시보호 활동을 시작했고, 유기견 문제가 번식견, 식용견 등 다른 여러 문제들과 연관된 악순환 구조라는 걸 알게 됐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에 무관심하던 내가 타자, 약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라고 말할 수 있다.
-개 농장 잠입 취재가 힘들거나 위험하진 않았나?
=이전까진 작품을 쓰면서도 이런 식의 취재를 해본 적은 없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메신저 쪽지를 보내보고, 유기견 농장으로 추정되는 곳을 무작정 혼자 찾아가보기도 했는데 그런 시도는 다 실패했다. 이번 취재는 동물단체 전문가들의 도움을 얻어 함께 했는데, 주인이 없는 틈에 농장에 몰래 들어가거나 개 관련업종 종사자로 가장하기도 했다. 취재를 다녀오면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힘들더라. 농장이나 보호소 케이지에 갇혀있던 개들의 눈빛과 표정들…, 그걸 잊기 힘들었고 문장으로 묘사할 수도 없었다. 책은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쓰려 노력했고, 일부러 시차를 두기도 했다.
-반려동물 종류가 많은데 왜 개에 주목하나?
=한국에서 개는 인간과 가장 가까운 반려동물이면서 가장 먼 식용동물이기도 하다. 개가 그 거리를 이어주는 가교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본다. 한없이 작고 약한 동물인 피피를 볼 때마다 내가 인간이란 사실을 인식한다.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건 다른 존재들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점이다.
-전통이나 문화적 상대성 주장에 대해선?
=서구에선 ‘개를 사랑하면서 소·돼지는 왜 먹느냐’는 논리가 있는데 이는 동물권의 ‘상향평준화’ 논리다. 반면 우리는 소·돼지는 먹는데 왜 개는 안되느냐’는 하향평준화 논리가 통한다. 하지만 개를 축산업 동물로 규정하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전례가 없다. 생명윤리 관점에서, 축산업 대상 동물에 굳이 ‘개’라는 한 종을 추가하고 식용견 문화를 지속할 이유를 모르겠다.
-문재인 정부의 개헌안에 동물보호 조항이 담겼다.
=동물단체에선 적극 반기는 분위기다. 독일·스위스 같은 나라는 헌법으로 동물권과 동물보호 의무를 명시했다. 책에선 내 인식식의 한계에도 ‘동물보호’나 ‘동물복지’보다 ‘동물권’이란 단어를 더 많이 썼다. ‘동물보호’가 인간이 우월적 주체로서 동물을 보살핀다는 시혜적 성격인 반면, ‘동물권’은 우리 인식이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생명권을 존중하는 개념이다. 인간은 동물의 고기를 먹고 가죽을 활용한다. 그러다보니 ‘동물권을 말할 자격이 있느냐’는 딜레마가 있다. 하지만 발언 자격보다 더 중요한 건 동물보호를 위해 어디에선가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먹을 권리’를 말하지만, 현행법상 음식이 아닌 까닭에 국가 통제를 받지 않는 위험한 음식의 생산과 유통을 방치하는 것에 분노하는 것이 더 절실한 권리 아닐까.
-피피 이전 삶과 이후 삶이 달라진 게 있다면?
=피피 때문에 나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정말 작고 약한 존재와 같이 산다는 건, 강자가 약자를 학대하고 착취하는 문제들에 대해, 그리고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은 유기견 이야기이자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람 이야기를 통해 사람 아닌 존재에 대해 더 생각해보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