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용근 영화감독 |
민용근의 디렉터스컷
이미 부재자 투표를 했기에, 그날은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의미심장한 취지로 이 영화를 선택한 건 아니었다. 부끄럽게도 난 어린이 명작동화의 ‘장 발장’만 읽었을 뿐,
아직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을 읽어 보지도 못했고, 영화의 직접적인 토대라 할 수 있는 뮤지컬도 보지 못했다.
그 때문인지 영화의 대사를 노래로 표현하는 ‘송 스루’ 형식이 낯설게 느껴져 처음엔 몰입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각 인물들에 점점 이입이 되어갔고, 나중엔 왠지 모를 벅차오름까지 느꼈다.
영화가 끝난 뒤 그 기분을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건, 아마도 몇 시간 뒤 맞이하게 될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를 본 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출구조사를 기다렸고, 박빙의 조사 결과에 마음 졸이며 어느 중년 부부와 저녁 식사를 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중인 아들을 둔 부부였다. 눈물을 흘리며 자식의 이야기를 하시던 어머니의 말씀 너머로, 어느 한 후보의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다는
개표방송 결과가 흘러나왔다. 그 후보의 인권공약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 도입은 들어 있지 않았다.
어머니의 바람이 또 긴 세월 동안 미뤄질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귀가했다. 집에 와 텔레비전을 켜니 이미 방송국 카메라는 당선이 확실시되는 후보의
자택을 비추고 있었고, 그날 밤 내가 지지했던 후보는 결국 선거에서 패배했다.
다음날 아침. 마치 실연당한 이튿날처럼, 휑한 마음에 모든 게 꿈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는 와중에 문득 떠올랐던 건,
전날 보았던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두 유 히어 더 피플 싱’(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부르며 거대한 바리케이드 위에 서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들.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있던 자유와 평등의 시대를 향한 간절한 소망과 의지가 느껴지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날 아침 떠올린 마지막 장면의 느낌은 전날과는 사뭇 달랐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함께 싸웠으나, 당장은 그 꿈을 이루지 못했던 이들의 안타까움이
유독 도드라지게 느껴졌다.
대통령 당선인의 캐치프레이즈인 ‘100% 대한민국’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섬뜩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언뜻 듣기에는 긍정적 에너지를 내포한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그 말 속엔 은밀한 폭력성이 느껴진다. 결코 100%로 통합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모두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 각자가 모두 다를진대, 각자의 그 다름을 하나로 ‘통합’한다는 것은 결국 무수한 가지치기가 선행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통합의 대의를 내세울 때 등장하는 단어들은 ‘세계 경제의 위기’ ‘발전’ ‘성장’ 등이다. 적당히 듣기 좋은 말로 본질을 흐리거나 쟁점을 피해가며,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목소리를 쳐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가장 먼저 희생되는 사람들은 언제나 힘없고 목소리 작은 사람들이었다. 이는 지난 5년 동안,
아니 우리의 역사를 통해 수없이 반복되어온 일이다. 그러기에 새로 맞이하게 될 그 뻔한 미래에 더 절망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그런 일들이 다시 반복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48%의 국민들. 앞에 놓인 5년. 선거에서는 졌지만, 그 시간 동안 각자의 삶 속에서 지지 않기를 기원해본다.
그 시간이 죽은 시간이 될지, 견디는 시간이 될지, 새롭게 태어나 자라는 시간이 될지는 우리의 삶에 달려 있다.
<레미제라블>의 마지막 장면과 노래가 자꾸만 아른거린다.
그것은 아직 우리의 시간과 노력이 부족했던 것임을, 아직은 그 과정에 있는 것뿐이라는 말을 건네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노래다.
민용근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