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신영복 유고
손잡고 더불어-신영복과의 대화
신영복 지음/돌베개·각 1만5000원“한 사람의 일생이 정직한가 정직하지 않은가를 준별하는 기준은 그 사람의 일생에 담겨 있는 시대의 양”이라고 스스로 한 말과 같이, 고 신영복(1941~2016·
사진)의 삶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삶 속에서 시대의 아픔을 벼리고 또 벼려낸 그는 인간과 사회를 이을 수 있는 희망을 찾아냈고, 이에 공감한 사람들은 그를 ‘우리 시대의 스승’이라 일컬었다. 이념보다 양심을, 존재보다 관계를, ‘차가운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을 말한 가르침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그의 1주기를 기리는 책 두 권이 함께 나왔다. <냇물아 흘러흘러>는 각종 매체에 기고했던 글과 강연록 가운데 생전에 책으로 엮이지 않은 글들을 묶은 유고집이다.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돼 무려 20년 20일 동안 옥고를 치르기 전에 썼던 글 7편이 ‘미발표 유고’로 담겼다. 청량리 천변에 땟국이 흐르는 얼굴을 한 빈촌의 어린 아이들을 보며 “인간의 자유, 그것의 충족은 양의 증대에 달린 게 아니다”라고 한 글 등에서 20대 청년 시절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손잡고 더불어>는 그가 수형 생활을 마친 뒤인 1989년부터 2015년까지 나눴던 대담들 가운데 사상적 편력을 잘 보여주는 대담 10편을 골라서 실은 대담집이다. 이미 그의 생각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강의> <담론> 등 다양한 저작과 강연으로 세상에 잘 알려졌지만, 이번에 나온 책들은 그 사상적 편린들을 더욱 뚜렷이 확인할 수 있게 돕는다.
그는 한평생 ‘학교’에 몸을 담았고, 줄곧 ‘성찰’하는 삶을 살았다.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생 시절 4·19 혁명과 5·16 군사쿠데타를 겪었고, 교사로 일하던 중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간첩으로 몰려 옥고를 치렀다. 막심 고리키가 노동자 합숙소를 ‘나의 대학’이라 불렀듯, 인간의 본질을 ‘존재’가 아닌 ‘관계’로, 사상의 본질을 ‘차가운 머리’가 아닌 ‘뜨거운 가슴’으로 바로 보게 해준 감옥은 그에게 거대한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준 학교였다. 형기를 끝낸 뒤에도 늘 학교에서 살았다. 성공회대에서 놓았던 교편을 다시 잡았을 뿐 아니라, 글과 강연으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 생각을 나눴다. “이 세상 모든 곳이 다 학교”였고 “함께 공부하고 더불어 학습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벗이며 스승”이라 했다.
성찰은 근본적으로 되묻는 것이며, 그 깊이는 현실에 대한 인식에 비례한다. 부드럽고 따뜻한 분위기의 말과 글로 많이 알려졌지만 그 뒤에는 언제나 서늘한 현실 인식이 있었다. 외환위기 당시 신 교수는 강연에서 “경제 성장에 대한 무제한적인 환상을 반성해야 한다”, “욕망 그 자체를 생산하는 경제 성장과 자본 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늘날 혁명이 무엇인지 묻는 강연에서는 “혁명의 대의나 선언에 투항하거나 극적인 드라마에 몰입하는 것은 (혁명에 대한) 참된 독법을 왜곡한다”, “혁명의 해방적 언어에 탐닉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런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선생은 “머리에서 가슴을 거쳐 발(실천)까지 가는 길”, “나무에서 숲으로”, “존재론적 패러다임에서 관계론적 패러다임” 등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실천의 방향을 제시했다.
관념이 아닌 자신의 삶 전체로 이를 빚어냈다는 점에서, 대담집을 엮은 김명인 인하대 교수는 그의 존재를 ‘사상가’의 반열에 세운다. “그의 사상의 핵심 아포리즘들이 마르크시즘과 동양 사상을 머릿속에서 적당히 합성한 결과가 아니라, 20여년의 성장기, 20년의 영어 생활, 그리고 다시 20여년의 현실 생활 속에서, 그 오랜 분노와 부끄러움의 세월 속에서 자신의 생명을 소진시켜 가면서 고통스럽게 일구어 낸 삶의 결과물”이라는 평가다.
그 결과물이 결국 ‘희망’으로 향하기에, 선생의 삶과 생각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되새겨질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동서고금의 수많은 언어 가운데 선생이 가장 아꼈던 말은 ‘석과불식’이었다. 가지 끝에 남아 있는 최후의 과실, 앞으로 새로운 싹을 틔우게 할 ‘씨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절망을 희망으로 일구어내는 보석 같은 금언”이고 “우리가 지키고 키워야 할 희망에 관한 철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