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이 2일 오후 제주 한림읍 협재해변에서 한겨레와 만나 최순실 국정농단 등 현 세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제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한 첫 해인 2013년 말, <한겨레> 토요일판에 인터뷰를 연재하는 이진순씨가 당시 필자 관리를 맡고 있던 기자에게 고민을 토로했다. “아침에 신문 펼쳐보기가 싫을 정도로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너무 답답하다. 나이만 많은 어른 말고, 진짜 어른다운 어른을 만나고 싶다.”
마침 그 시기에 박근혜 정부는 해직교사가 조합원으로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에 법외노조임을 통보했고,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청구했으며, 파업을 하는 철도노조 지도부를 체포하겠다며 경찰을 동원해 민주노총 사무실을 급습했다. 국정원 댓글로 선거부정 논란을 한 해 내내 겪은 박근혜 정부가 정치적 비판세력들을 각개격파하던 시점이었다. 이보다 조금 앞서 정부 요직엔 김기춘처럼 유신 시절에 활약하던 노회한 정치인들이 중용됐고, ‘가스통 할배’로 대변되는 어버이연합은 무조건적으로 대통령을 엄호했다. ‘어르신들은 왜 저런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할까’라는 의문을 품던 시기에 이진순씨가 세상에 알려진 원로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시대의 어른’을 찾아냈다. 바로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 까딱하면 모두 저 꼴 되니 봐주면 안 된다”던 채현국(82) 효암학원 이사장이었다.
그가 현 촛불정국과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어떻게 보는지, 대선을 앞두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어린 촛불세대와 ‘여의도의 노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다. 2013년 인터뷰 자리에 동석했던 인연으로 오랜만에 채 이사장에게 연락을 했더니, 암에 걸려 요양차 제주도에 있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지난 3년간 수많은 섭외 요청에도 간간이 강연에만 나설 뿐 인터뷰에 거의 응하지 않았던 채 이사장은 하고 싶은 말도 있다며 흔쾌히 인터뷰를 수락했다. 지난 2일 제주시 한림읍 동명리의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채 이사장은 제법 따뜻한 제주도의 날씨답게 비교적 단출한 차림이었다. 회색 상의에는 가슴에 단 작은 노란 리본이 눈에 띄었다.
“촛불은 날조·조작의 현대사 끝내는 시작”-건강은 어떠십니까.
“일주일 전부터 제주에 와서 많이 걷고 좋은 공기 마시며 잘 지내고 있어요. 암 걸린 놈 치고 이 정도면 괜찮지. 늙으면 많이 걸리는 전립선암인데, 이거 걸린 늙은이들이 (전이가 느려서) 이 병이 아니라 감기 등 다른 병으로 죽는다더라구요. 나는 그동안 운이 좋아서 그리 비관이 안 됩니다. 이미 살아서 제삿밥 먹은 지가 10년 넘었어요. 이미 떠나야 할 놈이 지금까지 산 거지요. 그냥 이대로 살면 돼요. 계획한 게 있어도 그거 그냥 하다가 가는 것이지요.”
-몸이 편찮으신데, 촛불집회에 다녀오셨는지요.
“자주 갔어요. 치료 받으려고 서울에 병원 다니기도 했으니, 그때마다 데모하러 갔습니다. 거동이 편치 않으니까, 아주 중심부로는 진입하지 못했어도 주변에 앉아있기도 하고, 같이 걸어다니기도 하며 여러 번 참여했지요.”
-촛불집회에서 눈여겨 본 것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일까요.
“이번 집회에 젊은 학생들도 많이 보였고, 어린 아이들 데려온 가족들도 많았습니다. 학생들이 촛불집회에서 보고 듣고 스스로 생각하고 배울 것이고, 어린 아이들 데려온 부모도 교육이라 생각했을 거에요. 그런데 한편으로 저들이 혹시 다치는 돌발사태가 발생할까봐 마음이 쓰였어요. 돌발사태가 벌어지면, 또 날조하는 자들이 판을 칠 테니까요. 맞불 집회하는 극우 노인네들이 돌발사태를 일부러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촛불집회가 무엇을 의미한다고 보십니까.
“촛불은 날조와 조작·은폐의 시대를 끝내고, 새 시대를 여는 시작입니다. 우리 현대사는 세월호처럼 계속 날조의 시대였어요. 이 제주에서 민간인들에게 총·대포를 쏘라고 했던 이승만은 죗값 안 치르고 해외로 도망갔고, 박정희 독재의 냉혹한 범죄들도 아직 다 안 드러났습니다. 전두환의 나쁜 짓도 6월 항쟁 이후 노태우가 집권하면서 묻혔고요. 김영삼은 군사독재를 굴복시키려 야합했다지만, 결국엔 그저 야합에 그쳤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치하에서 친일파 하던 놈들이 고스란히 잘 산 거지요. 정치가들은 약삭빠르고 악랄해야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역사의 교훈이에요. 그래서 선거의 해인 2017년이 중요해요. 어쩌면 촛불보다도 투표가 더 중요합니다. 특히 미련하고 극우적인 저 박근혜 도당(새누리당)보다 정치적 생명을 잇기 위해 탄핵에 가담한 저 약아빠진 보수(개혁보수신당)가 우리 정치의 물을 흐릴까 더 걱정스러워요.”
“반기문, 대체 뭘 했나”-어떤 점이 우려스러우신가요.
“우리 사회가 아직은 껍데기만 민주주의입니다. 남북 분단체제라서 본질은 무엇이든 비밀로 하려는 군사체제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면서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해먹던 놈들이 계속 합니다. 북은 3대 세습에 원자탄까지 만들어 자랑하는데, 그런 저들을 봐주자는 것이 아니라, 이 조작과 날조의 시대를 끝내기 위해서라도 저들과 평화체제를 만들자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하면 3대 세습 인정하는 종북주의자로 몰아 버리잖아요. 조작의 시대를 이어가려고 그런 날조를 하며 올가미를 씌우는 겁니다.”
-유엔에서 임기가 끝난 반기문(73) 전 사무총장이 보수 쪽의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는데, 외교에 능한 국제 지도자라서 남북관계를 개선시킬 것으로 기대하기도 합니다.
“남북 분단국가 출신으로 유엔 사무총장이 된 사람이 도대체 무엇을 했습니까. 한반도·중동·아프리카는 물론 국제인권과 무기 문제 등 어느 하나 옳게 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유엔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아요? 영세중립국들의 비동맹 연맹을 만들어 볼 수도 있고, 갈등하는 곳에 평화회담을 추진할 수도 있습니다. 이건 이 늙은이의 생각이고,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거나 받아들여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강대국들이 갈등 조장하며 무기 팔아먹는 것에 눈치나 보며 아무 것도 안 한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을 이용해서 나쁘게 살아남으려는 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보수가) 살아남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나쁘게 살아남는 게 문제예요.”
-이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비롯됐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이를 바꾸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완전 헛소리입니다. 개헌할 건 해야 하지만,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문제를 그 탓으로 돌리는 그 주장만은 완전히 헛소리에요. 언론도 최순실 게이트라고 하는데, 잘못된 표현입니다. 이건 최가의 문제가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문제예요.”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이 2일 오후 제주 한림읍 협재해변에서 한겨레와 만나 최순실 국정농단 등 현 세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제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비정규직 양산, 학교 이사장인 나도 책임”-이번 촛불집회에서 국정농단에 대한 비판뿐 아니라 공정하지 않은 사회를 바꾸기 원하는 여러 세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습니다.
“우리 사회 1900만명의 근로자 가운데 900만명이 비정규직입니다. 특히 학교에 비정규직이 많은데, 학교 이사장인 나도 그 범죄에 가담한 사람이에요. 하청업체 노동자 중의 소득 하위층은 지난 20년간 명목 소득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는 얘기도 우연히 들었어요. 나는 이 얘기를 듣고서 20년 동안 이걸 모르고 지낸 것이 정말 부끄러웠어요. 이러고도 잘 사는 나라 만들었다고 생 거짓말을 하는 그런 속임수를 쓰는 것이 이 나라의 정치입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폭동이 안 난 것이 기적입니다. 이번 촛불집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나왔지만, 정말 행색이 남루하고 절망적인 인상이 박혀있는 사람은 안 보이더라고요. 정말 가난하면 절망해서 촛불집회도 안 나온다고 느꼈습니다. 온갖 조작하고 날조하는 자들이 굶주린 나라에서 소득 3만달러를 달성했다고 하는데, 그게 민중이 한 거지 저들이 한 것인가요? 저들은 민중에게 빨대 꽂아 피 빨아먹은 박쥐에 지나지 않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정말 놀란 것 중의 하나가 엘리트 관료들이나 학계·재계 지도층이 서로 봐주고 권력에 맹종한 민낯이 드러난 점입니다.
“우선 탄핵 재판 담당하는 저 헌법재판관들 중에도 믿을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이 사회에서 온갖 짓 다 해서 헌법재판관까지 출세한 사람들이에요. 하지만 그런 저들도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악한 짓을 못하도록 우리가 정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지켜봐야 해요. 특히 특검이 제대로 수사해 박근혜의 범죄를 입증하도록 각계에서 나름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탄핵심판부터 이기고 나서, 선거에서 점점 야바위치는 놈들이 설자리를 잃도록 하나하나 바꿔야 해요. 특히 이 사회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패거리들이 변화를 원치 않을 겁니다. 그들이 연극에서 제 역할이 끝났는데도 무대에서 안 내려올 텐데, 그런 그들을 향해 우리가 나가라고 야유하고, 직접 무대에서 끌어내리기도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권이 선거에서 서로 분열할 것이 아니라, 혁명적 개혁을 위해 누가 (대통령을) 하든간에 서로 연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권 노추한 인간들 말 듣지 말아야”-이번 촛불집회를 계기로 선거 연령을 만18살로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당연히 (연령 기준을) 내려야 해요. 18살에 병역 의무 지우며 목숨도 내놓으라고 하는 나이에 선거권을 안 주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노인들을 봐주지 마라’는 말이 젊은 세대들 사이에 크게 회자됐습니다. 다시 젊은 세대에게 한 말씀 해주시겠습니까.
“우리네 희망이 당신네 젊은 사람들에게 달려있습니다. 특히 정치권의 노추한 인간들의 말을 듣지 말아요. 이미 지나간 시대의 인간들이 어디다 대고 미래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합니까. 아인슈타인도 자신이 시작한 양자역학을 나이 들어서는 이해하지 못했어요. 지금은 그때보다 세상이 빨리 변해요. 컴퓨터랑 휴대폰이 이리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70살 넘은 양반들은 이제 입은 그만 열고 주머니나 열어야 합니다. 주머니가 없거든 귀라도 열어야 해요. 입은 그만 열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게 나의 모순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정치권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경륜과 지혜를 가진 세대의 인물을 호출합니다. 최근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인명진(71) 목사는 친박 핵심인사들을 청산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1년 전 더불어민주당에 영입된 김종인(77) 의원은 경제민주화를 줄곧 주창하고 있고, 오는 15일 국민의당 전당대회에는 박지원(75) 의원이 출마합니다.
“인 위원장은 그 안에서 더 친박인 사람들 솎아낸다고 하는데, 국민들이 보기엔 거기 전체가 친박입니다. 누가 누굴 내쫓는단 얘기인가요. 처음부터 박근혜 대통령을 만든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공동 책임을 져야 합니다. 누굴 내쫓는 건 인기나 끌려는 행동이에요. 김종인 의원은 ‘가인’(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손자라고 해서 일찍이 만났는데 (경제민주화 얘기하지만) 공부가 깊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박지원 의원은 이 시국에 반기문 끌어들이고 개헌 얘기로 초점을 흐리고 있습니다.”
-촛불 정국에서 이재명(53) 성남시장의 인기가 치솟았습니다. 민심을 잘 읽었다는 얘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민심 잘 읽은 게 아니라 자기 할 말을 한 것이겠지요. 만일 민심 잘 읽어 인기 얻은 그런 약아빠진 인물이라면 도리어 위험합니다.”
-가슴에 노란 리본은 세월호를 위해 단 것인가요.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달기도 했습니다. 세월호는 조작과 날조로 희생자를 범죄자로 만드는 우리 사회의 병폐를 그대로 보여줬습니다. 그 유가족들이 전혀 주장하지도 않은 특혜나 보상을 바란다고 날조한 거예요. 지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비판적으로 보도하는 일부 언론들도 그 날조와 조작에 앞장섰어요. 그런 이 사회의 병폐를 묵인하지 않고 저항해야 합니다. 좌절과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게끔 살아야 합니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가슴에 리본을 달았습니다.”
채현국 이사장은 누구?‘우리 시대의 진짜 어른’으로 존경받고 있는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한 이듬해인 1961년 <중앙방송>(현 한국방송) 피디로 입사했지만 방송이 군사정권의 선전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한 뒤 3개월 만에 그만둔다. 이후 아버지가 운영하고 있던 강원도 삼척군 도계의 흥국탄광을 맡아 부도 직전의 회사를 살려내고 굴지의 광산업자가 된다. 이후 24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한때 납세 순위 2위를 기록하기도 했지만 10월 유신 이후 박정희 정권의 앞잡이가 돼야 하는 상황이 올까 우려해 1973년 모든 사업을 접고 재산을 처분해 동업하던 친구들, 광부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무일푼이 됐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도피 생활을 하는 이들을 숨겨주거나 자금을 지원하며 독재에 저항하는 이들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기도 했다. 1988년 효암고등학교와 개운중학교를 거느린 재단법인 효암학원의 이사장으로 취임해 줄곧 ‘무급’으로 일해왔다. 돈과 명예,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꼿꼿이 살아온 그의 삶은 2014년 <한겨레> 인터뷰를 통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노인들이 저 모양이라는 걸 잘 봐두어라”는 그의 말은 ‘수구 꼰대’들을 향한 촌철살인으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