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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수키 2016. 10. 28. 13:29

뒤바뀐 살인자…“제가 범인입니다” 17년만의 참회

등록 :2016-02-03 11:52수정 :2016-02-03  

무덤에서 절하는 진범 이아무개씨. 사진 박임근 기자
무덤에서 절하는 진범 이아무개씨. 사진 박임근 기자

옥살이를 하고 나온 3인조 강도가 “우리는 범인이 아니다”라며 재심 청구를 한 1999년 전북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의 진범이 17년 만에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진범임을 자백하고 사죄했다. 진범 3인조는 검찰 조사에서도 자백을 했으나, 무혐의로 풀려났었다. <한겨레>는 진범과의 인터뷰, 진범과 피해자들의 만남 등을 취재해 이 사건의 ‘진실’을 들여다봤다._편집자 (관련기사: ‘나라슈퍼 할머니 강도사건’ 그들이 진짜 범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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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제가 진짜 범인입니다.”

17년 전이었다. 설을 앞둔 1999년 2월6일 새벽 4시께 전북 완주군 삼례읍 나라슈퍼에 3인조 강도가 침입했다. 범인들은 잠자던 유아무개(당시 77) 할머니의 입을 청색테이프로 막아 숨지게 하고, 현금과 패물 등 254만어치를 털어 달아났다. 피의자로 19∼20살의 청년 3명이 구속됐다. 이른바 ‘삼례3인조’ 다.

지난달 29일 경남에 사는 이아무개(48)씨가 ‘삼례3인조’를 찾아 자신을 포함한 ‘부산3인조’가 진범임을 자백하고 용서를 구했다. 다음날엔 이 사건으로 숨진 유 할머니의 묘소를 찾아 무릎을 꿇고 참회했다.

1999년 완주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진범
누명 쓴 사람과 피해자 가족 만나 범행 자백해
“2000년 검찰서 조사받을때 자백했지만 안 믿어”

이 사건은 1, 2, 3심 재판이 8개월 만에 끝이 났다. 1999년 10월22일 대법원이 최종 유죄 판결을 내렸다. 억울함을 호소했던 ‘삼례3인조’의 재심 청구는 2002년 기각됐지만 지난해 3월 2차 재심 청구가 이뤄져 현재 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다.

17년 만에 ‘진범’의 등장으로 2차 재심 청구는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진실은 밝혀질 수 있을까? 경찰 폭력과 강압 수사로 스무살 안팎이었던 ‘삼례3인조’의 삶은 엉망이 됐다. 17년전 이미 검찰에 진범임을 자백했다는 진범 역시 자책감 속에 세월을 보냈다.

누명을 쓴 사람들과 피해자 가족들은 용서를 청하는 ‘진범’의 손을 잡고 화해했다. 하지만 이들은 “진실 아닌 진실을 만들어내고도 반성하지 않는 공권력은 용서할 수 없다”며 ‘정의’를 세워줄 것을 요구했다.

숨진 유 할머니의 사위 박성우(57)씨는 “어머니는 지하에서 모든 것을 용서하실 것이다. 나는 살인자는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공권력은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진범이라 고백한 이씨는 “2000년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죄를 인정하고 자백했지만 검찰은 우리가 범인이 아니라고 했다. 당시 제대로 처벌 받았다면 이런 마음의 짐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삼례3인조 중 4년을 복역한 강아무개씨는 “진범들 대신에 우리가 들어간 것을 검사님은 알고 있는데 왜 우리만…”이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수원 전주/홍용덕 박임근 기자 ydhong@hani.co.kr


누명 쓴 청년들 “검사도 우리가 진범 아닌 것 알고 있었다”

무덤에서 무릎꿇은 진범 이아무개씨. 사진 박임근 기자
무덤에서 무릎꿇은 진범 이아무개씨. 사진 박임근 기자
이아무개(48)씨는 이곳을 방문하기 전 소주 2병을 마셨다. 긴장한 탓인지 취하지 않는다고 했다. 수염이 텁수룩하고 초췌한 얼굴에 그간의 번민이 묻어났다. 이씨와 그를 맞이한 강아무개(36)씨, 임아무개(37)씨는 서로 어색해하며 좀처럼 입을 떼지 못했다.

강씨와 임씨는 중학교 친구 사이인 최아무개(37)씨와 1999년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발생한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4~6년씩 옥살이를 한 이른바 ‘삼례3인조’다. 이씨는 이들에게 “내가 진짜 범인”이라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했다.

“자백을 해줘서 고맙습니다.”

“고백을 하니 오히려 속이 편합니다.”

이들은 지난 1월29일 저녁 7시께 전북 전주시 송천동 박영희(66·전 전주교도소 교화위원)씨의 집에서 만났다. 지난 17년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다독였다.

대화는 당시 수사 상황에 대한 얘기로 시작됐다. 4년을 복역한 강씨는 “우리가 진범들 대신 들어간 것을 검사님은 알고 있는데 왜 우리만…”이라며 말을 맺지 못했다. 임씨는 “오히려 검사가 안 믿어줘 더 나쁜 사람”이라고 거들었다. 두 사람은 당시 조사를 받던 완주경찰서에서 가슴과 머리 등을 얻어맞은 자세까지 보여줬다. 각자 따로 조사를 받았는데 무섭다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고 회고했다.

임아무개씨(왼쪽)가 경찰에게 맞는 자세를 재연하고 있다. 사진 박임근 기자
임아무개씨(왼쪽)가 경찰에게 맞는 자세를 재연하고 있다. 사진 박임근 기자

이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가 (범행)한 것이라고 (자백을) 했는데도 이렇게 됐다. 저들(수사 주체)이 아니라는데 내가 맞다고만 할 수 없더라. 서로 연락이 안 닿고 몰랐다면 내가 굳이 나설 이유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죄책감을 계속 안고 살게 됐을 거다. 고백하니 오히려 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에 대한 보도를 접하고 이들(삼례3인조)이 왜 이렇게 억울하게 됐는지 나도 알고 싶었다. 진실을 밝히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조카가 거기 가면 두들겨 맞지 않겠느냐고 했다. 막상 만나니 강씨가 웃어서 마음이 안정이 된다”고 말했다. 강씨는 “우리는 잘 쉴 수 있지만, (이씨는) 잘 쉴 수 없었을 것이다. 기쁘기도 해서 웃었다. 지금이라도 고백을 해줘서 고맙다. 이씨가 끝까지 부인했다면 이 사건은 우리가 한 일이 됐을 거다. 용서한다”고 말했다. 임씨도 “감사하고 용서한다”고 했다.

범행한 3인조 지목돼 4~6년씩 억울한 옥살이
진범이 죄 고백하자 “자백 해줘 고맙습니다”
“경찰 조사 무서웠다…검사가 더 나쁜 사람”

당시 19~20살이었던 이들은 30대 중반이 됐다. 강씨와 임씨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최씨는 결혼을 해 자녀가 둘 있다. 모두 노동과 아르바이트로 힘겹게 산다. 요식업 아르바이트를 하는 임씨는 수감 당시 어머니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고,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는 그가 수감 중 운명했다. 임씨는 “아빠가 없어서 힘들었다. (감옥) 안에 있다가 나오니 적응이 안 됐다”고 말했다.  

경남에서 노동을 하며 살고 있는 이씨는 그동안 조용히 숨어 살았다. 친구들도 안 만나고 결혼도 안 했다. 그는 “어찌보면 이 사건의 영향이 컸다. (만약 결혼해 낳은 자식이) 나 같은 놈 되어봐야 내가 부모로서 떳떳하게 키우겠느냐”고 자책했다.

최아무개(왼쪽) 임아무개·강아무개씨와 진범 이아무개씨(오른쪽). 사진 박임근 기자
최아무개(왼쪽) 임아무개·강아무개씨와 진범 이아무개씨(오른쪽). 사진 박임근 기자

삼례3인조 가운데 최씨는 전주의 한 음식점에서 이뤄진 저녁식사 자리에 뒤늦게 참석했다. 최씨 역시 이씨에게 “이렇게 온 것이 고맙다”고 말을 건넸다. “기분이 확 풀렸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동안 억울한 마음이 있었다. 전과 한 번 있었다고 경찰이 우리가 한 것으로 몰았다. 감옥에서 나와서 억울했기 때문에 혼자 완주경찰서를 찾아가 컴퓨터 등을 박살 내며 난리를 쳤다.” 최씨는 아내와 딸도 데리고 왔다. 최씨의 아내(30)는 “남편이 진범이 아니라고 말했을 때 처음에는 믿지 않았고 거짓말인 줄 알았다. 그저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이들의 건배사는 “진실을 위하여”였다. 주차장에선 어깨동무를 하며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울부짖으며) 아이고~ 어머니, 인제서야 왔어요. 반드시 데려오겠다고 약속했잖아요. 이제 편안히 눈 감으시고 행복한 곳으로 가세요.”

“(작은 목소리로) 할머니! 이제 와서 죄송합니다. 부디 하늘나라 가십시오.”
 

다음날인 1월30일 오전, 이씨는 충남 부여군 양화면 한 마을 뒷산 유아무개씨의 묘소를 찾았다. 17년 전 이 사건으로 숨진 유(당시 77)씨 묘소다. 무덤에 다다르자 유 할머니의 사위 박성우(57)씨가 울먹였고, 이씨는 숨죽이며 절을 했다. 직접 준비해 온 사과 3개, 배 2개, 북어포 1개, 술 한 병을 올리고, 용서를 구했다. 이씨는 “함께 범행했던 친구가 지난해 죽었다. 10여년 동안 그런 일이 없었는데 죽기 1주일쯤 전에 친구가 꿈에 나타났다. 이 사건의 진실을 바로 잡아달라는 뜻으로 꿈에서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진범 밝힌 이씨, 숨진 할머니 묘소 찾아 참회
“할머니 이제 와 죄송합니다…부디 하늘나라로”
당시 수사에 “왜 그들이 억울한지 진실 밝혀야”

사위 박씨는 “어쩌다 어머니 묘지를 범인과 함께 방문하는 이런 기막힌 일이 있나. 이틀 전이 장모님 기일(음력)이었다. 여기 와서 진범을 혼내주고 싶다고 집안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지하에서 모든 것을 용서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옛 나라슈퍼 자리. 사진 박임근 기자
옛 나라슈퍼 자리. 사진 박임근 기자

박씨는 진범을 제때 잡지 못한 공권력에 분노를 나타냈다. 그는 “나도 살인자는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 공권력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건 당시 경찰의 현장검증을 영상촬영했는데, 그것이 삼례3인조의 재심을 청구하는 데 결정적 근거가 됐다. 박씨는 “자기들이(경찰들이) 분명히 조작을 했는데도 영상을 찍도록 그냥 둔 것은 유족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영상을 나중에 보니 의문투성이였다. 재심이 이뤄져 여기에 가담한 공권력에 대한 엄중한 처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삼례3인조의 재심 청구를 맡고 있는 박준영 변호사는 “이씨가 혼자 조용히 사죄하려 했지만 제가 설득했다. (자신을) 언론에 공개하는 것은 큰 용기다. 사죄하고 반성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이 사건의 수많은 책임자들이 이 상황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주/ 글·사진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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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29131.html#csidx2c7035aacfe473c9ca45b05252cd0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