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16.10.29. 06:10               

강압수사 논란 재조명…"사회적 약자 방어권 보장해야" 목소리도]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3~6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나온 이들이 17년 만에 누명을 벗었습니다. 법원은 지난 28일 최대열씨(37), 임명선씨(37), 강인구씨(36)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변호인의 최후변론을 통해 지적장애를 가진 이들이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옥살이를 해야 했던 기구한 삶이 전해지자 방청석은 눈물바다가 됐습니다. 지난 17년 동안 이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70대 할머니 숨지게 한 3인조 강도' 진범 논란

검경의 부실 수사와 진범 논란을 빚었던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 피의자로 지목된 최대열씨 등 3명이 28일 오전 전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며 만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스1
검경의 부실 수사와 진범 논란을 빚었던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 피의자로 지목된 최대열씨 등 3명이 28일 오전 전주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기자회견을 하며 만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스1

사건의 시작은 1999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최모씨 부부가 운영하던 나라슈퍼에 강도가 침입해 유모 할머니(당시 76)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들은 유 할머니의 입과 코를 청테이프로 막은 뒤 양 손과 발을 묶어 질식시키고 2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챙겨 달아났습니다.

얼마 뒤 경찰은 최대열씨 등 3명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검거했습니다. 당시 19살이던 최씨는 사고로 장애를 입은 부모님 밑에서 건설현장 노동으로 돈을 벌고 어린 동생을 돌보며 가장 역할을 했습니다. 18살의 강인구씨는 지적장애인 아버지와 월 10만원짜리 월세 방에 살고 있었고 19살이던 임명선씨는 여동생과 도망을 다니며 불우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들은 모두 지적장애를 앓거나 한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등 각별한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청년들이었습니다.

'진범은 따로 있다'는 제보가 이어졌고 부실수사, 강압수사 등 논란이 일었습니다. 부산에서 진범으로 추정되는 3명이 체포돼 자백했는데도 사건을 넘겨받은 전주지검은 진술번복 등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습니다. 결국 최씨 등은 강도치사 혐의로 1999년 10월 대법원에서 실형을 확정 받고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난해 3월 삼례 3인조는 전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경찰의 폭행과 강압수사에 의해 허위자백을 한 것이었다는 겁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여 열린 재심 공판에서 '부산 3인조'로 체포됐다가 풀려난 이모씨(48)가 증인으로 나와 범행 사실을 자백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법정에서 "전주지검에서 수사를 받을 때 범행 사실을 자백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당시 검사는 저를 왜 풀어주고 처벌하지 않았는지 저도 진실이 궁금합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17년 만의 무죄 선고…법원 "사회적 약자 방어권 살피지 못해 유감"

재심을 맡은 전주지법 형사합의1부(부장판사 장찬)는 세 차례 공판 절차를 거친 끝에 지난 28일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과거 수사과정에서 최씨 등이 범행을 시인한 취지의 진술은 일관되지 않고 합리적이지 않아 신빙성이 없다"며 "진범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 "최씨 등이 설령 자백을 했더라도 법원으로서는 이들이 정신지체를 앓고 있어 자기방어력이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해 더 큰 관심을 가지고 면밀히 살펴야 했다"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지난 17여년간 큰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은 피고인들과 그 가족들께 깊은 위로를 전한다"며 "이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정신지체인 등 사회적 약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공권력 잘못 감추기 위한 왜곡' 비난 여전…보상 가능할까

뒤늦게나마 무죄를 인정받았지만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17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최씨 등은 가슴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야 했습니다. 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을 기다리다 세상을 떠난 부모님, 살인범의 자녀라는 꼬리표에 상처받았을 아이들에 대한 보상은 어떻게 누가 해 줄 수 있을까요. 보상 자체가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요.

변호를 맡은 박준영 변호사는 "진범이 나타난 뒤에도 수사 과정에서 왜 조작이 있었는지에 대한 명확한 해명과 반성이 있어야 한다"며 국가배상과 형사배상 절차를 철저히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자의 유족들도 최씨 등과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의 시간에 대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판결은 국가기관의 수사·판결로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쓴 피고인들에 대해 법원이 직접 유감을 표명하고 문제를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다만 무죄 선고만으로 사건이 모두 마무리 된 것은 아닙니다. 최씨 등이 장애가 있고 돈이 없어 죄를 뒤집어 쓴 것이라는 의혹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진범이 잡혀 자백까지 했는데도 공권력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사실을 왜곡한 것이었다는 비난도 있습니다.

이에 대해 검찰과 경찰은 함구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인정하지 않았고,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판결이 확정된다면 이러한 의혹과 비난에 대한 규명도 필요할 것입니다. 재판부가 판결을 통해 밝혔듯 최씨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방어권 보장 문제도 더 신중하게 다뤄져야 합니다. 다시는 사회적 약자들의 억울함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