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 정기회의에서 유투브 동영상 갈무리.
“석유 회사가 우리의 신성한 땅을 고의적으로 파괴하고 있습니다.”
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의 정기회의. 깃털이 달린 원주민 전통 모자를 쓴 데이브 아셤보(45) 족장은 2분 남짓한 연설에서 준비한 원고를 담담하게 읽어내려갔다. 아셤보 족장은 “송유관 건설 사업이 원주민 공동체와 강, 지구를 위협하고 있다”며 “인권이사회 회원국들이 송유관 건설을 비판하고, 미국 원주민들의 주권을 위해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미국 노스다코타주 캐논볼에 위치한 원주민 보호지역에 거주하는 수족의 아셤보 족장이 유엔 인권이사회 정기회의에 참석해 송유관 건설 중단을 위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고 미국 <엔비시>(NBC) 방송 등이 21일 전했다. 송유관 건설을 반대하는 미국 원주민들의 영토 보호와 주권 투쟁이 국제 사회로 옮겨간 모양새다.
수족을 포함해 미 전역의 100여 원주민 부족이 반대하는 대형 송유관 건설 사업은 텍사스 댈러스에 기반을 둔 ‘에너지 트랜스퍼 파트너스’의 자회사 ‘다코타 액세스’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아이오와, 일리노이 등 4개 주 50개 카운티를 잇는 송유관의 길이는 약 1800㎞, 총 공사비는 38억달러(4조2000억원)에 이른다. 송유관이 완공된다면 하루 47만배럴의 원유를 수송할 수 있는 규모다.
원주민들은 송유관으로 인해 원주민 보호구역 내에 있는 식수원이 오염될 뿐만 아니라, 대대로 내려온 조상들의 성지가 파괴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송유관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다코타 액세스’ 의 송유관이 강을 비롯한 수자원과 교차하는 지점은 총 200여곳에 이른다. 원주민 부족들과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지난 4월부터 미주리강과 캐논볼강의 합류지점에 자리한 송유관 시작 지점에서 수개월째 텐트를 치고 항의 시위를 벌였으며, 현재 시위대는 4000여명으로 늘었다. 지금까지 아셤보 족장을 비롯해 40여명의 원주민과 활동가가 경찰에 강제 연행됐다.
원주민들은 지난달 송유관 건설을 허가한 정부와 육군을 대상으로 ‘공사 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연방법원은 “원주민들이 실질적인 피해를 입을 것으로 생각되진 않는다”며 기각한 바 있다.
그러나 이달 9일 미 법무부와 내무부, 육군은 공동성명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송유관 사업에 대해 더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며 원주민들의 식수원인 오하헤호 인근에서 진행중인 공사를 일시 중지하라고 명령했다. 현재까지 다코타 액세스의 대형 송유관은 절반 정도 완공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