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장이 된 이정렬 전 판사가 지난달 25일 서울 구로동 법무법인 동안 사무실에서 <한겨레> 취재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변호사 등록이 거부된 그는 인터뷰 전날, 서울지방변호사회로부터 법률 사무직원 신분증을 발급받았다. 신분증 사진에는 갸름한 얼굴과 최신 헤어스타일의 웬 남성이 있었다. 그는 “신분증 사진이 최신 뽀샵(포토샵) 결과”라고 웃으며 말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판사 이정렬의 변신
▶ 변호사 등록을 거부당한 이정렬 전 판사는 지난달 법무법인 사무장으로 변신했습니다. 거침없이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고 재판부 합의 내용을 누설해 정직 처분을 받았던 그는 논란을 몰고 다니는 튀는 판사였습니다. 지난해 이웃집 차량을 훼손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그는 판사를 사임하고 반년간 집에서 머물며 세상과 단절했습니다. 최근 법무법인 사무실 한가운데 놓인 작은 책상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법률 치료자라는 새로운 꿈 앞에 선 그는 한결 편안해 보였습니다.
그를 소개하는 수식어는 주로 ‘튀는 판사’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소재가 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 복직 소송 항소심 주심을 맡은 이정렬 전 판사는 재판 합의 내용을 공개해 2012년 정직 6개월 처분을 받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패러디물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려 ‘물의를 빚었다’(보수 언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렇다). 판사를 그만둔 그가 변호사 등록 신청을 했지만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4월 거부했다. 그는 지난달 최초의 판사 출신 사무장으로 법무법인 동안에 취직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구로동 법무법인 동안에서 이정렬 사무장을 만났다. 변호사들처럼 개인 공간이 아닌 사무실 한가운데 놓인 작은 책상이 그의 자리다.
-오늘은 튀는 판사 이정렬 말고 그냥 이정렬을 만나러 왔다. 언제부터 출근했나?
“보름 됐나? 이 동네 얘기로 ‘개업빨’이라고 하던데 많이 찾아주시긴 한다. 출근하면 다섯, 여섯분 정도 상담한다. 일주일에 두번 사무실에 출근하는데 상담하러 오시는 분들이 ‘사무장 됐다는 기사 봤다’고 하시더라. 좋게 포장하면 ‘쟤라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겠느냐’ 하는 마음으로 방문하시는데 그걸 뒤집으면 사건이 악화된 상태에서 오시는 분들이 많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안타깝다.”
1시간 넘게 상담하며 사건의 맨살을 보다
-소송 당사자가 최종적으로 접하는 법조인인 판사에서 가장 첫 단계인 사무장으로 자리를 옮기니 차이가 어떤가?
“아직은 적응이 덜 됐다. 법률적인 해법이 있겠다, 아니면 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오시는 분들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자기 이야기를 다 하신다. 판사로 있을 땐 사건의 맨살을 볼 수 없었는데 지금은 1시간 넘게 상담하면서 ‘스토리가 이렇게 됐구나’ 알게 되니까 마음은 편하다. 이분들로부터 사실상 보수를 받는다면 받는 거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이니까 다 들어야 한다. 건방지게 이야기하면 상담치료사 이런 마인드를 가져야 되는 것 같다. 어렵다. 표정에선 ‘공감한다’ 맞장구를 쳐도 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데 수임이 없으니까 마음이 슬슬 그렇긴 하다. 상담자와 수익 창출 사이에서, 딜레마다.”
-진짜 사무장 맞는데?(웃음) 사실상 말이 사무장이지 변호사 노릇 하지 않겠느냐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법무, 세무, 노무, 회계 사무소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지난 4월 노동조합을 결성했는데 오늘 노조원 신청을 했다. 뿌듯하더라. 어린애 같은 소리지만 내가 노조원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다른 (사법시험) 동기들 만날 때 ‘너, 노동조합 해봤냐?’ 할 수 있게 된 게 좋다.”
이정렬 사무장과 기자는 ‘백수 판사’와 ‘백수 기자’로 2년 전 처음 만났다. 이 사무장은 2012년 2월 정직 처분을 받았고 같은 시기에 나는 다른 신문사 노조원으로 파업을 벌였다. 언론사 5곳이 파업을 하던 2012년 봄, 파업 정당성도 알리고 노조비도 마련할 겸 서울시청 광장에서 중고 물건을 팔았는데 그는 기자에게서 귀걸이 두세개를 사 갔다. 그가 정직 처분을 받고 처음 외출다운 외출을 한 곳도 전 직장 노조가 주최한 파업 콘서트였다.
-2년 전보다 표정이 환해 보이신다. 법원이라는 곳이 대화로, 정치로 해결되지 않은 대한민국 갈등의 집합소 아닌가. 법원을 벗어나서 그런가?
“세상에 어떤 사람이라도 완전히 올곧게, 직선으로만 살 순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 사건이 모인 데가 법원인데 모든 판결이 ‘10 대 0’으로 결론 날 수가 없지. 사건을 보면 ‘51 대 49’도 있을 수 있는데 법원은 결국 승소냐 패소냐, 10 대 0으로 판결을 내야 한다. 그 스트레스가 사실 엄청났다.”
-법무법인 동안에서 이정렬 사무장 영입하며 낸 보도자료를 보니 칭찬이 엄청나던데?
“쑥스러워 죽겠다. 되게 민망하네. 그런데 사실관계에서 틀린 것은 없다.(웃음)”
-변호사 등록이 됐다면 ‘사무장 영입’ 보도자료를 내진 않았을 거다. 대한변협의 변호사 등록 거부 과정은 어땠나?
“법무부에 이의신청서를 낼 예정이다. 대한변협이 법률적으로는 변호사 등록 권한을 갖고 있고, 그에 앞서 서울지방변호사회(서울변회)가 등록 서류를 받는다. 서울변회에 징계, 형사 처분과 관련해 자료를 냈는데 추가로 소명하라기에 업무와 관련 없는 형사 처분과 질병에 관해서는 부당하다고 생각해 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변회에서 변호사 등록 및 입회를 거부한다고 3월에 보도자료를 냈다. 대한변협이 4월16일에 심사를 한대서 갔는데 심사위원이 가방을 열고 봉투를 꺼내 테이프를 뜯더라. 내 자료를 안 봤구나 싶었다. 심사위원 가운데 한분이 나에 관한 자료를 못 본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요지를 설명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재판부 합의 과정 누설로) 징계 처분을 받긴 했지만 사리사욕 때문이 아니었고, 진실을 밝혀야 법원이 필요 이상의 욕을 먹지 않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드렸다.”
서울변회는 지난 3월6일 보도자료를 냈다. “이정렬 신청인이 공직자로 재직하던 중 법원조직법을 위반하여 징계를 받은 사실 및 차량 손괴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 그리고 심사위원회의 추가 소명 요청을 거부한 사실에 비추어 신청인이 변호사법 제8조 제1항 제4호의 ‘공무원 재직 중의 직무에 관한 위법행위로 인하여 형사소추 또는 징계처분을 받거나 퇴직한 자로서 변호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현저히 부적당하다고 인정되는 자에 해당된다’고 판단하였다.”
‘가카새끼 짬뽕’ 패러디물 올리고 재판부 합의 내용 공개로 정직
이웃집 차량 훼손 혐의로 벌금
대한변협 변호사 등록 거부되자
사무장으로 취직해 법률상담 중
‘튀는 판사’ 17년 생활 정리
법조계를 떠날까 고민하다
영화 <변호인> 보고 마음 바꿔
친근하고 공정한 서비스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꾼다 ‘심야식당’처럼 힐링 되는 법률상담 꿈꿔 그가 이웃집 차량을 훼손한 혐의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은 형사 처분은 직무와 관련이 없었지만 변호사 등록 거부의 사유가 됐다. 이정렬 전 판사는 지난해 6월24일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했다. 며칠 뒤 층간소음 문제로 이웃집 차량을 훼손했다는 보도가 나왔다(해당 사건에 대해 ‘비보도’를 전제로 그가 이야기한 내용은 싣지 않는다). 법원을 떠난 지 6개월간 병원 대여섯곳을 제외하고는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았다. -지난해 6월 법원을 나오고 어떻게 지냈나? “12월까지 애들 밥해 주고 살림했다. 딸이 지금 중학교 3학년인데 그 아이 인생에서 절반을 떨어져 살았더라. 살림에 필요한 것은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신문, 방송은 접하지 않고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보기만 했다. 여기저기서 만나자고 하는데 싫었다. 내가 좋은 상태가 아니니까 만나면 ‘너 힘들지, 힘내라’ 이런 이야기 할 텐데 그렇게 위로받고 싶진 않았다.” -집에서, 자기만의 동굴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가 있을 것 같다. “<시사인> 주진우 기자 팬카페 회원들이 <변호인> 개봉일에 다 함께 영화 본다고 하더라. 나도 보고 싶어서 함께 봤다. 사표 쓰고 법률적 일을 계속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했는데 그 영화 보고 나니 안 할 때 안 하더라도 (변호사) 등록이나 해놓자, 생각이 들었다. 사직하고 처음 가진 생각에 비춰보면 여기까지 온 것도 신기하다.” -법원 그만두고 심리상담을 받지 않았나? “심리상담 하시는 분이 그러더라.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는데 아이러니하게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못 느낀다고. 완벽을 지향한다는 말도 들었다. 틀리지 않은 말 같다.” -지난해 6월 사직하고 찾아간 곳이 봉하마을이다. 지난 6월에는 음식으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에 관해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과 <심야식당>이 인간 이정렬에겐 일종의 힐링인가? “틀리지 않은 말 같다. ‘사람 사는 세상’ 그 말씀이 좋더라. 드라마 <심야식당>을 보면, 주인공에게 흉터도 있고 외견상으로는 좀 그런데 손님들이 그에게 마음을 터놓지 않나. 주인공이 그만큼 마음을 열어두었기 때문일 거다. 내 직업도 사람 만나는 일이고 사람의 행위로 발생한 일을 처리하는 직업이지 않냐. ‘저 사건을 수임함으로 수익을 안겨줄 사람이야’ 그렇게만 생각하면 법률적 아픔, 상처 이런 건 달랠 수 없을 것 같다. 그 드라마 보면서 식당 하면 어떨까도 했는데 요리를 못해서 안 되겠더라.” 그는 지난달 9일 페이스북에 “심야식당의 마스터.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언제든 찾아가도 되는 사람. 힘들고 외롭고 아플 때 언제든 찾아가도 되는 사람. 메뉴에 없는 음식이라도 원하면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 요즘 한창 빠진 드라마 <심야식당>”이라고 썼다. 지난해 그에게 위로를 준 노래 가운데 하나는 그룹 들국화의 ‘걱정말아요 그대’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후회 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들국화의 노래 가사다. 17년 판사 생활을 접을 때 내가 조금 덜 튀었더라면 어땠을까 후회는 없었나? “그런 거 없다. 사실 변호사 등록할 때 심사위원이 묻더라. 변호사도 직무상 비밀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유야 어떻든 재판부 합의 과정을 공개해 비밀을 누설했으니 변호사가 되어도 또 그러지 않겠느냐고.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그땐 사심이 없었고, 사익보다 공익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또 그러겠다고. 그냥 그게 나다.” -‘튀는 판사’로 사는 건 어떤가. 한국 사회에서 ‘튄다’는 말은 능력은 없는데 입만 살아 있다거나 ‘치기 어리다’ 그런 뜻으로도 해석될 때가 많다. 판사로서 성실성과 능력이 폄하되는 걸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동부지법에서 근무할 땐 집에 가지도 않고 인근 찜질방에서 먹고 자며 일하지 않았나? “애들한테 고기 사줄 때 부담이 없어” “(보수 언론이나 정권은) 그런 이미지가 필요했겠지. 그때 그런 거 신경 안 썼다. 자기 일만 잘하면 되지. 진실은 그게 아닌데, 뭘. 맘대로 떠들어라, 이렇게. 정치적인 감도 없었다. 권위적이고 잘난 척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으로 좋게 받아들였다. 동부지법에 있을 땐 집이 목동에 있어서 잠잘 시간이 부족했다. 왕복 출퇴근에 4시간이 걸리고 지하철 막차 놓치고 할증까지 붙어 택시비만 삼만몇천원이 나왔으니까. 강변역 근처 싸고 좋은 찜질방이 많아서 거기서 잘 때가 꽤 됐다. 당시 식사도 불규칙했고 건강이 안 좋아지긴 했다.” -‘가카새끼 짬뽕’ 이런 패러디물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올리는 행동을 되짚어보자. 조금 더 신중했다면 어땠을까. 역사에서 개혁을 이뤄내는 사람들은 결국 ‘살아남는 인물’ 아닐까. 법률을 만드는 과정은 정치적 행위지만 만들어진 법률을 집행하는 과정은 정치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게 당신의 생각이다. 법이 공정해지는 사법 개혁을 꿈꿨던 거 아닌가? “주류로 살아남아서 개혁하는 거… 말꼬리 잡는 것 같아서 그렇긴 한데 주류인데 뭐하러 개혁하나. 사실 ‘가카새끼 짬뽕’도 내가 만든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만든 걸 트위터, 페이스북에 올린 거다. 원작자보다 내가 더 유명하다. 패러디물이 돌아다니는 거 자체가 민심 아닌가. 사람들이 분노하는데 정권은 4대강이니 국격이니 엄한 소리 하고 민심에 신경을 안 쓴다. 민심이 이렇다는 걸 봤으면 했다. 당시 페이스북 친구가 200명도 안 됐다. 진짜 친구나 동창들로 사적 공간이었다. 내가 민심에 머릿수 하나 보태자는 차원이었지, 내가 말하면 반향이 클 거라고 생각도 안 했다.” -23살에 사법시험 합격하고 판사 생활 17년, 엘리트 코스만 밟아왔는데 사무장으로 취직할 때 주위 반응은 어땠나? “글쎄, 주위 반응을 안 물어봐서. (변호사 등록이 안 될 것으로) 약간 예상을 했는데 막상 안 되니까 주위에서 열 받아 하더라. 결과 나기 전에 예상하고 ‘법무법인 사무장은 심사 안 받는다. 사무장 하면 된다’고 농담 비슷하게 말했다. 막상 법무법인에서 진지하게 사무장 할 생각 있느냐고 했을 때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나는 고맙게 제안을 받았다.” -독립된 공간도 아닌 사무실 중간 자리에 다른 직원들과 앉아 있어 놀라긴 했다. “원칙을 지켜야지.” -사법고시 후배인 변호사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나. 사무장이 사건 정리해서 보고하면 반응은 어떤가? “연배는 (법무법인) 대표님이 위고, 시험으로 치면 후배들이다. 수임이 안 되어서 보고한 게 하나도 없다. 실적이 없으니 참….” -법원을 나와 인생 2막이 시작됐다. 앞으로 꿈이 뭔가? “거창한, 그런 거는 생각이 없다. ‘고맙다’는 말 듣는 거? 상담할 때 실제 도움을 드리지 않았는데도, 소송을 안 하시는 게 좋겠다고 말했는데도 돌아가실 때 고맙다고 하시면 그게 참 마음에 남는다. 꿈과는 상관없는 얘기인데, 퇴직하고 좋은 게 애들한테 고기 사줄 때 부담이 없다. 고깃집 가면 애들이 귀신같이 비싼 부위 먹으려 하고 더 먹겠다고 하면 속으로 부담스러웠는데 지금은 퇴직금 있으니까 ‘1인분 추가’라고 해도 부담이 없다. 그냥 그런 거?” -치료자 중에 제일 좋은 치료자는 ‘상처받은 치료자’라고 하더라. 받고 회복한 상처만큼 좋은 법률 상담자가 되지 않을까? “좋은 말인 것 같다. 나도 그런 말, 배워야겠다.(웃음)” 마흔다섯, 이정렬은 지금 또다른 길 위에 서 있다. 그가 걸어온 길이 처음부터 끝까지 곧았다고 할 수 없을지라도, 그에게 돌을 던지랴. 우린 늘 실수를 반복하고 비틀거리고 또 새로운 시작을 한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