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인터뷰

쇠와 살 / 이재승 교수

나나수키 2014. 5. 12. 12:02

 

등록 : 2014.05.11 19:54 수정 : 2014.05.11 21:36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만난 이재승 교수. 그는 최근 ‘형이상학적 죄’와 정치적 책임을 다룬 논문을 잇따라 발표했다. 그건 “살아남은 자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국가폭력 연구 이재승 교수 인터뷰

세월호가 기울어진 직후부터였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국가’를 호출하고, 응답을 요청했지만 기대는 어이없이 무너졌다. 죄책감과 원망이 뒤엉킨 가운데 ‘국가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토머스 홉스의 국가 사상 핵심은 ‘프로테고, 에르고 오블리고’(protego, ergo obligo), ‘내가 너를 보호해주기 때문에 나는 너에게 명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국가가 국민을 보호해주고, 복종을 요구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조건마저 깨졌다. 우리가 알고 있던 ‘국가’는 바닥을 드러냈다.”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재승 교수는 최근 국가 폭력과 보통 사람들의 정치적 책임에 대한 글을 잇따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계간지 <사회와 역사>(한국사회사학회) 봄호에는 ‘국가범죄와 야스퍼스의 책임론’이란 논문을 실었고, 지난 10일 제주 벤처마루에서 연 ‘문학까페 유랑극장’에서는 ‘형이상학적 죄로서 무병(巫病)과 지속가능한 화해’라는 주제의 강연을 했다. 법철학으로 문학작품에 접근한 보기 드문 시도였다.

그는 소설가 현기영의 <목마른 신들>과 관련해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 이야기를 들려줬다. 4·3사건이 일단락된 뒤 6·25 때 또다시 인민군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예비검속’에 따라 집단학살이 벌어졌다. 당국의 시신 접근 불허방침 때문에 6년 뒤에야 132구의 시신을 수습했지만 신원 확인이 불가능했다. 유족들은 “남의 시신을 조립하다시피” 집단 봉분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이 교수는 “정치적 반대자를 간첩이나 빨갱이로 몰아 처벌할 수 있는 법제가 있는 한 만행은 반복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켜주지 못하는 국가에 복종 못해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각성을 모아
죄책감을 정치적 에너지로 바꿔야

“시신 수습을 못하게 한 것은 주검조차 죽이는 행위다. 그런 일을 가능하게 했던 법과 제도, 의식과 관행이 권력기구 속에 본질적으로 살아 있다. 우리는 국가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상태에 있지 않다. 시민들의 깨어 있는 정신과 투쟁을 통해서만 만행을 근절할 수 있다.”

이번 제주 강연 원고 첫머리에 이 교수는 세월호 이야기를 썼다. 젊은 시절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많이 울었다는 한 어머니가 이번 사고로 아이를 잃고 “10년마다 사고가 나는 나라에서 제도를 바꾸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아서 제가 똑같은 일을 겪었다”고 한 것을 뼈아프게 인용했다.

“우리는 노무현 정권이 추진한 신자유주의의 물결을 돌려놓지 못했고, 이명박 정권의 사대강 사업에서 신자유주의가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인지를 봤다. 그럼에도 이를 더 과격하게 밀고 나가는 권력을 채택했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구조의 정당화를 방기했다. 애도와 추모에 그쳐서는 안 된다. 카를 야스퍼스는 ‘모든 사람은 자신이 정치적으로 지배받는 방식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는 참사 앞에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통찰한 야스퍼스가 ‘내면의 각성’만을 강조해 한계가 있다고 본다. 형이상학적 죄는 내면세계에서 윤리화되거나 촛불을 들고 마는 게 아니라 ‘정치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로 만들지 않으면 깨달음은 잊혀진다”며 그는 “죄책감을 훨씬 정치적이고 적극적인 에너지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삶의 구조를 붕괴시키는 ‘재야만화’ 과정으로서 신자유주의가 모든 정치·사회·문화적 영역을 지배한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것을 ‘자기 책임’으로 명명한다. 사회 정의에 대한 이야기가 삭제되는 것이다. 보수파들은 그렇게 자기 책임을 미뤄왔다. 하지만 아이리스 영은 어떤 것도 개인의 책임이나 운명이 아니며, 집단적 결정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봤다. 그것이 ‘정치적 책임론’의 핵심이다.”

세월호 사고 관련해서도 그는 일부 법 개정과 처벌에 그쳐선 안 된다고 본다. ‘높은 사람’의 비위를 맞추고, 여론을 방어하고, 시민을 감시하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처럼 불합리한 명령을 받고도 직무에 충실했다고 말하는 공직자들의 관료화된 권위주의적 양심에는 더 이상 기댈 수 없다는 얘기다. 대신 그는 “매순간 인간적인 ‘선’을 질문하는 ‘인간주의적인 양심’(에리히 프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적 책임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 정치적 주체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는 (전문가나 관료보다) 보통 사람들의 집단적 평가가 오히려 훨씬 종합적이고 정확하다고 본다. 지방자치단체부터 헌법, 배심원 제도까지 고민해가며 시민들이 좀더 많은 결정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참여와 운동을 통해 정치구조를 바꿀 수 있는 ‘법’을 쟁취해야 한다. 입법운동? 아니, 권력운동이다. 문화적·정치적 혁명이 필요하다. 제도권에 편중된 권력을 사람들이 되찾아오는 과정이다.”

이 교수는 2007년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활동을 했다. 2010년 724쪽에 이르는 <국가범죄>(앨피)로 임종국 학술상을 받았지만 10년 이상 국가폭력 연구를 해오면서 우울감도 겪었다. 주변에선 ‘트라우마 전이현상’이라 진단했다. 이 때문에 의도적으로 낙관적인 법철학자 로베르토 웅거의 책 <주체의 각성-사회개혁의 철학적 문법>(2012)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는 요즘 야스퍼스의 <죄의 문제>를 한글로 옮긴다. 이 작업이 끝나면 앞으론 사회민주주의 연구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한다.

“인간이 쇠를 잡으면 기계의 부품이 되고, 관료제의 부속품이 된다(현기영 <쇠와 살>). 조작간첩사건 피해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국가배상을 하면서도 유우성씨 사건에서 보듯 권력기관들은 조작된 증거를 제출했다. 차가운 쇠와 따뜻한 살은 영원한 모순을 겪으며 갈등상태에 있다. 우리 모두는 일상 속에 매순간 결단해야 한다. 쇠의 편을 들 것인가, 살의 편을 들 것인가?” 이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