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20차 촛불집회에 나온 ‘혼자 온 사람들'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각자 가져온 깃발을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오용섭씨 제공
혼밥과 혼술이 흔한 시대, 이들도 혼자 밥 먹고, 혼자 놀고, 혼자 텔레비전을 봤었다. 지난해 11월12일 ‘혼자 온 사람들’ 깃발 아래 처음으로 서로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무려 300여명이 모였다. 지난 11일 스무번째 촛불집회까지 서울 광화문 광장 한구석엔 ‘혼자 온 사람들’ 깃발이 한주도 빠지지 않고 펄럭였다. ‘혼자’들은 이제 하루 카카오톡 900개를 주고받는다.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다큐멘터리도 함께 만든다. ‘대장’ 이예슬씨, 취업준비생 안주현씨, 웹툰작가 지망생 오용섭씨, 대학생 김요한씨는 “이상한 연대감”이라고 표현했다.
경기도 평택시에 사는 이예슬(27)씨는 지난해 11월4일 촛불집회에 같이 갈 친구를 구하지 못했다. ‘욱’하는 마음에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는 사람들과 깃발 밑에 있는데 나는 어디에 있어야 할지 참 뻘쭘하셨죠? 우리 같이 ‘혼자 온 사람들’ 깃발에 모여 뻘쭘함을 없애 보아요!’ “12일 집회 직전까지도 ‘정말 혼자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저 같은 사람들이 참 많더라고요.” 청계광장에 나와 뻘쭘하게 혼자 앉아 있다 돌아가곤 했던 대학생 김요한(26)씨도 이때 깃발을 찾아왔다. 김씨는 ‘기수’가 됐다.
취업준비생 안주현(26)씨는 지난해 12월10일 촛불집회를 앞두고 “유쾌하게 대통령의 윤리를 꼬집으려는 마음”으로 ‘한국주사맞기캠페인운동본부’라는 깃발을 만들었다. 전북 전주에서 서울까지 홀로 깃발을 쥐고 올라왔다. 도착지는 당연히 ‘혼자 온 사람들’ 깃발이었다.
‘혼자 온 사람들’은 제각각인 혼자들을 끌어안은 안식처였다. 안씨 외에도 많은 ‘혼자’들이 자신만의 깃발을 들고 찾아왔다. 민주노총을 패러디한 ‘민주묘총’, ‘전교조’ 깃발을 참조한 ‘전고조’(전국고양이노조), 텔레비전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착안한 ‘무한상사 노동조합’ 등 다양했다.
촛불이 매주 이어지며 뒤풀이가 열렸고, 메신저에 단체방이 생겼다. 10대부터 40대까지 오로지 ‘혼자’라는 이유로 모인 생면부지 사람들이 ‘아재개그’와 ‘드립’(농담)과 ‘정치 얘기’를 하루 수백개씩 주고받기 시작했다. 묘한 연대감이 감돌았다. 김요한씨는 “서로 같은 것을 걱정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했다. 그러면서도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단체들과는 다르게 각자 다른 생각들을 인정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분위기였다. 주변 사람들과도 선뜻 하지 못했던 정치·사회에 대한 내 생각을 자유롭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라서 자꾸 이 사람들과 같이 촛불을 들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정동진으로 불쑥 ‘번개여행’을 다녀왔고, 만우절(4월1일)엔 엠티를 간다. ‘혼자’ 중 한명인 웹툰작가 지망생 오용섭(34)씨 등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모아 ‘혼자들의 촛불’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만들 생각이다. 오씨는 “관심 가져봐야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혼자인 우리들이 모여서 세상을 바꾼 경험을 처음 했다. 사람들과 함께 또 어떤 방법으로 세상을 바꿀지 고민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혼자인 듯 혼자이지 않은 혼자들. 각자의 생각을 인정하는 이들의 느슨한 연대야말로, ‘다양성’을 품는 광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 촛불은 오는 25일, 다음달 15일 두번 열리고 일단 막을 내린다. 페이지 개설자라는 이유로 ‘대장’이 된 이예슬씨는 “뭔가를 의도하거나 기획하기보다 그때그때 누군가가 ‘뭔가를 해보고 싶다’고 제안하면 서로 도우며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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