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 김남희 “제 결핍을 사랑해요”
『길 위에서 읽는 시』
여행지에서 시는 더욱 예민하게 다가온다
미처 몰랐던, 그러나 역시 똑같이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른 세계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책을 읽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상식을 흔들고, 믿음을 깨어놓고, 규범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들. 그래서 저는 질문이 많은 여행일수록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하죠.
- 글 | 신연선
- 사진 | 신화섭(AM12 Studio)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은, 정거장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닮은 모습으로 길 위에서 만난다. 잠시 스치기도, 깊이 인연을 맺기도 하는 나와 닮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 이들은 여행에서 길을 찾고, 여행에서 답을 구하고, 여행으로 삶을 꾸린다. 여행가 김남희도 그 중 한 사람. 오래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방을 뺀 돈으로 여행을 떠나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덧 십 년이 넘었다. 고단했지만,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아직 가야 할 곳이 많이 남았다.
『외로움이
외로움에게』,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공저), 『라틴아메리카 춤추듯
걷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등으로 다른 세계와 다른 삶을 이야기해 온 김남희는 새로 나온 책
『길 위에서 읽는
시』에서 혼자가 되는 삶을 말한다. 여행 가방을 꾸릴 때 그는 언제나 시집을 챙긴다. 혼자 떠나므로, 함께 있어도 늘 혼자인
존재이므로 시와 함께 했다. 오롯이 혼자가 되는 특별한 시간에 시를 꺼내 읽었다. 어떤 곳은 시를 불러왔고, 시가 그를 어떤 곳으로 이끌기도
했다. 그러므로 『길 위에서 읽는
시』는 시가 만들어낸 여행 혹은
여행이 만들어낸 시 그 자체였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시인의 시에서 위안을 많이 얻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가 읽은 허수경 시인의 「청년과 함께 이 저녁」이나 김선우 시인의 「이런 이유」, 김소연
시인의 「눈물이라는 뼈」 등은 특히 다른 울림을 준다. 가수 이소라의 노래 <바람이 분다>와 비올레타 파라의 노래 <삶에
감사합니다(Gracias A la Vida)>를 읽어낸 부분도 소중하다. 시와 노래에 위로 받은 작가는 이제 독자를 위로하고 싶다. “길고
긴, 춥고 쓸쓸한 겨울밤에 이 책을 머리맡에 놓아두고 한 편 씩” 읽어주기를, 김남희 작가의 전언이다.
여행 안에 여백이 생길 때
이별, 죽음, 외로움 등 무척이나
솔직하고 고백적인 글이에요. 내밀한 글을 쓰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어렵게 쓴 글도, 편안하게 쓴 글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워낙 제 이야기 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에요.(웃음) 계속 제 이야기를 해온 사람이고요. 저로서는 특별한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읽으시는 분들이 조금 어둡게 느끼실 수도 있을까요? 어떠셨어요?
여러 장면에 삶의 서글픔이 생생하게 담긴 글이라서요.
전반적으로 쓸쓸한 정서가
많죠. 발랄하게 썼어야 했는데 말이에요.(웃음)
쓰던 시절에 갖고 있던 감각이 많이 반영이 되었을까요?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이 글을 쓰던 시절은 많이 외롭고 힘들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그걸 숨기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것 같아요. 잡지에 삼 년 정도
연재했던 글인데요. 거의 새로 쓴 글도 많아요. 집중적으로 쓴 건 올 초에서 여름까지였어요. 마침 연애에 실패를 한 시기라서 아무래도 그 무렵의
정서가 많이 들어가 있지 않나 싶어요.
굉장히 솔직한 이야기예요.
하지 말 걸
그랬나요?(웃음)
독자는 책을 통해 작가와 함께 시를 읽는 셈이에요. 시의 어떤 면이 여행과 작가 자신을 만나 이렇게 글이 되어 나오는 걸까요?
여행을 다닐 때마다 늘
책을 가지고 다니고 그 안에 항상 한두 권의 시집이 포함되죠. 소설이나 산문집보다는 시가 호흡이 짧아서 여행 안에 여백이 생길 때 꺼내어 읽기
굉장히 편해요. 주로 혼자 머무르는 여행을 하다 보니 여행지에서 혼자 있는 시간에 읽기 편했던 것 같아요. 여행지에서 읽어서 더 와 닿는 시들이
많았어요. 낯선 나라에, 낯선 언어를 쓰는 환경에 혼자 있는 상황이 주는 정서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꺼내어 읽는 시는 일상에서 읽는
시보다 오히려 더 예민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마치 찾아간 것처럼 시와 여행의 한 장면이 딱 맞아 떨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시가 주는 느낌이 더욱 증폭되는 것 같았어요.
시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 정말 다행이에요. 사실 부담스러웠거든요. 다른 책들은 온전히 제 이야기만 하면 됐는데 이 책은 시에 관한 이야기이고, 현재 생존해 있는 시인의 시도 많아서요. 감히 시를 가져와 글을 쓴다는 게 그 시인들에게 누가 되는 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는데요. 책이란 한 번 만들어지고 나면 그 다음은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는 것 같아요. 제가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시라 할지라도 독자 분이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걸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낼 거라고 믿어요. 때문에 부족한 점은 뛰어난 독자 분들이 알아서 채워주시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고요. 어떤 상황에는 정말 마침 그 지역에 그 시가 있었을 때도 있었지만 어떤 상황에 가져오지 않은 어떤 시가 떠오르는 순간도 많았죠.
기억 속에 있던 시가 여행지에서 찾아오는 경험이 자주 있었던가요?
시집을 늘 갖고 다니기는
하지만 특히 소설 때문에 여행을 가게 된 곳들이 많았거든요. 시가 특별히 떠오르는 나라도 물론 있죠. 칠레는 파블로 네루다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고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명한 카페에 가면 그곳의 대표적인 시인 두상이 있다든가 하는 식으로 시인과 소설가들의 흔적으로 가득한 공간들이
많잖아요. 그런 장소에 있으면 예전에 읽었던 시와 소설이 떠올랐어요. 안도현의 「바닷가 우체국」은 원래 유명한 시이지만 갈라파고스의 무인
우체국을 봤을 때, 쿠바의 우체국 건너편 방을 얻고 머물렀을 때는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주어진 거죠.
흔한 경우는 아니고, 오히려 좀 특별한 순간들이네요.
네, 특별하게 찾아와요.
늘 찾아오는 경험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지만 어떤 장소가 어떤 특정한 시를 불러일으키는 경험은 분명 찾아오고 그것은 아주 감사하고 멋진
경험이죠.
뒤에 다른 세계가 있을 수 있다
한 대목에서 자신을 지칭해 ‘늘
의심하고 회의하는 쪽’이라고 했어요. 그런 틈에서 시와 여행을 답처럼 찾은 건가요? 시와 여행이 회의하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어떤 확신을 가지고
하나의 세계에 확 뛰어들지 못했어요. 늘 그랬어요. 한창 뜨거운 20대, 모두가 앞을 보고 달려가던 시절에도 저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고요. 같이
있었다가 어느 날 사라진 친구를 생각하고, 이렇게 달려 나간 후에는 뭐가 남는 걸까 생각하고, 지금 우리 모습이 올바른 걸까 의심하고, 그랬죠.
항상 회의주의자의 면모가 있었어요. 이 길이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용기 있게 박차고 나오지는 못하면서 20대를
보냈는데요. 그렇지만 그 과정은 끊임없이 저에게 맞는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죠. 그게 여행과 이어진 거예요. 이곳에서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깥으로 나가보고 싶었고, 나가 있을 때 행복했고, 틀린 삶이 아닌 다른 삶을 보고 싶었고요. 그런 의심하고 회의하는 마음 때문에 여행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여행 역시 끊임없이 회의하는 과정이겠죠.
좋은 여행가란 어떤 것을
판단하고, 단정 짓고, 규정하기보다 의심하고, 질문하는 시선을 가진 쪽이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쉽게 단정 짓지 않으려고 했던 것, 쉽게 답을
찾지 않으려던 특성들이 제 여행에 도움이 되지 못할 때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훨씬 도움이 된 면이 많지 않았나 싶어요.
답은 없을 수도, 아주 많을 수도 있어요. 어떤 답만이 답이라고 어떻게 확실할 수가 있을까 싶을 때가 많아요.
우리가 객관적 진실이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 객관적 진실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일 수 있어요. 어떤 것이든 바라보는 사람의 주관적인 시선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거죠. 하나의
사건, 하나의 세계가 수만 가지의 해석을 낳는 거잖아요. 이왕이면 하나의 답만 찾는 사람이기보다 모두가 답이라고 믿는 것 뒤에 다른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찾는 사람이고 싶었어요.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살다 가지 않을까 싶어요. 생각해보면 그래서 삶에서 갖지 못한 것들이
많은 것 같기도 해요. 대신 제 나름의 삶의 방식을 찾아왔죠. 끊임없이 그런 과정이었어요.
모든 삶이 결핍을 내포한 삶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 결핍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우리의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내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지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핍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태도의 문제 같아요. 아무리 세속적으로 성공하고, 부를 가진 사람일지라도 결핍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인간인 이상 정말 그래요. 결국 그 결핍을 에너지 삼아 다른 삶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저 또한 결핍이 있었기 때문에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제 결핍을 사랑해요.
삶에 감사합니다(Gracias A la Vida)
특별한 장면이 하나 있어요.
어머니의 시를 실은 부분인데요. 무심코 읽다가 깜짝 놀랐어요. 어머니께서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싫어하시던데요.(웃음)
왜 부끄러운 얘기를 하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엄마의 삶은 전혀 부끄러운 삶이 아니고 오히려 자랑스러운 삶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시 자체도 당신
입장에서는 마음에 안 드는 시라고 하셨어요. 다른 더 좋은 시가 있는데 왜 이 시를 넣었느냐고 하셨죠. 시집을 세 권이나 내신
무명시인이시거든요.
그런가 하면 노래도 두 곡 수록이 되었거든요. 이질적이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해요.
노래를 꼭 넣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는데요. 어떤 시기에 제 여행에서 굉장한 의미를 가진 노래들이 있었어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도 두 달 정도를 그
노래만 들었던 때가 있었죠. 비올레타 파라의 <삶에 감사합니다(Gracias A la Vida)>도 지치고 무릎이 꺾일 때마다
생각나는 노래예요. 저는 메르세데스 소사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듣는 걸 더 좋아하는데요. 그 목소리로 그 노래를 듣고만 있어도 위안이 되는 면이
있거든요. 두 노래 모두 가사를 찬찬히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냥 시가 되는 노래예요. 때문에 함께 싣게 됐어요.
노래가 곧 시죠.
<삶에
감사합니다(Gracias A la Vida)>는 남미 여행에서도 정말 많이 들었는데요. 지난가을 산티아고 북쪽 길을 다시 걸으러 갔을 때
이 노래에 관한 추억이 또 생겼어요. 한 숙소에 갔는데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숙소였어요. 수녀님들이 매일 저녁 순례자들과 모여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있는 거예요. 노래집도 나눠주고요. 거기에 그 노래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날 그 노래를 안 부르더라고요. 제가 신청을 했죠. 그래서
수녀님들이 기타를 치며 그 노래를 불러주셨어요. 그 순간의 감동, 잊을 수 없어요.
여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네요.
이번 산티아고 여행에서
그런 기적 같은 순간이 또 있었어요. 어떤 순례자 숙소에서 독일인 친구를 만났어요. 그 숙소에는 순례자들이 두고 간 책들이 있었거든요. 하이네의
시집도 있었죠. 책을 뒤적이다 그 친구와 책과 좋아하는 작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마침 그때 곁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스페인어로
떠들더라고요. 제가 “저런 낯선 나라의 언어를 듣는 것만으로 좋아”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그럼 독일어로 시를 읽어줄게”라고 하는 거죠.
하이네의 시 몇 편을 독일어로 읽어주었어요. 정말 아름다웠어요.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정말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헤어졌죠. 산티아고를 걷고
나서 런던에 있을 때였는데 메일이 왔어요. 그 친구가 좋아하는 시를 녹음해서 음성 파일을 보내온 거예요. 제목을 독일어로 써서 보냈기에 괴테의
시라는 것만 알고 파일을 듣는데요. 들으면서 ‘이건 「마왕」이야’ 생각했어요. 다 듣고 찾아보니 역시 「마왕」이더라고요. 그 친구가 두 번이나
제게 준 기적 같은 아름다운 선물이었죠.
여행지에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건 역시 여행자의 몫이 클 거예요. 조장(鳥葬, 죽은 사람을 새가 파먹게 하는 장례 문화) 장면은 특히 오래 남았어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그 장면을 인상적으로 읽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흔히 풍장(風葬), 조장(鳥葬)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야만적인 풍습이라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여행이 아름다운 건 우리가 몰랐던 세계의 다른 얼굴, 다른 진실을 드러내주는 거죠. 알고 있던 좁은 세계에서 통용되던 상식과 믿음,
진리라는 건 좁은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될 수가 있어요. 다른 세계에는 다른 상식과 규범이 통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행이
알려주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여행과 책이 닮아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미처 몰랐던, 그러나 역시 똑같이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른 세계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책을 읽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상식을 흔들고, 믿음을 깨어놓고, 규범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들. 그래서 저는 질문이 많은 여행일수록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하죠.
성질 급한 몇 놈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다가앉기도 했지만 함부로 시신으로 달려들지는 않았다. 망자에게 예를 갖추듯 차분하고 의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부서진 뼈들을 모아놓고 돔덴이 독수리들을 불렀다. 모여든 독수리들이 살을 파먹고 나면 다시 그 뼈를 거두어 공이에 넣고 잘게 부순 후 보릿가루 참파를 섞었다. 한 구의 육신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데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뼛가루조차 남기지 않고 한 몸이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도 울음이나 곡소리는 없었다. 가족들은 평온한 표정으로 앉아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아이들조차도.(72-73쪽)
그렇다면 글을 쓰는 행위는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일차적으로는 자기
위안이에요. 저를 위로하는 거죠. 쓴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행위인 동시에 객관적일 수 있잖아요. 내게 일어난 일을 그 시점으로부터 떨어져서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되는 거고요. 그때의 아픔과 상처, 기쁨과 눈물, 웃음 등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죠. 때문에 당연히 치유가 될
수밖에 없어요. 명상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죠. 특히 저 같은 사람은 제 경험만 쓸 수 있기 때문에 저를 위한 위안이 가장 큰 것 같아요. 한
가지를 더 꼽는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혹은 아픈 순간을 다른 사람에게도 이야기해주고 싶다는 마음일 거예요. 내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전혀 모르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이 주는 두 번째 치유의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누구에게도 가닿을 수 있는 보편 정서를
가진 이야기였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의 기쁨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의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한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요. 자신을 깊이 탐구하는 일은 타인을 이해하는 일과 맞닿아 있어요.
우리 사회가 불행한
이유 중 하나는 남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는 사회라는 거예요. 남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건 그만큼 자기 삶을 성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면에서 우리는 아주 불행한 사람들이죠. 안타까워요. 정말 자기에게 집중하고, 자신에 대해 만족하고, 자신과의 관계를 잘
풀어나가는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도 잘 풀 수밖에 없잖아요. 함부로 타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미성숙한 사회란 생각도
많이 하죠.
다른 삶을 생각할 수 없어
여행한 지 십 년이 넘었는데요.
길 위에서의 삶, 돌아보니 어떤가요?
고단해라.(웃음) 모든
삶에는 양면이 있는 거잖아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결핍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환상을 갖고 보시는 것 같아요.
이번에 산티아고를 걸으면서도 제일 싫었던 게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볼 때였어요. 제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모두가 꿈의
직업이라느니 부럽다느니 하는 말을 하거든요. 이 삶의 안 좋은 점도 다른 삶의 부러운 점도 얼마든지 이야기가 가능해요. 그런데 환상을 갖고 많이
보시는 것 같아요. 일부러 고단하고 힘들고 외롭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가 태어나서 내린 결정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죠. 다리에 힘이 남아 있는 한, 돈이 있는 한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여행을 하고 싶고, 여행자로 살다 세상을 떠나고 싶은 바람이
있고요. 지금으로서는 다른 삶을 생각할 수가 없어요.
책에도 어느 지역의 소녀는 작가를, 작가는 그 소녀들을 서로 부러워하는 장면이 나오죠.
인간은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는 존재예요. 중요한 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가지고 있는 것을 충만하게 쓰는 거라고 생각해요. 여행으로 계속 배워온
것도 제가 가지지 못한 것을 욕망하는 것보다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들에 더 만족하며 살아가는 법이고요.
낯선 이들과의 모임을 가끔 한다고 하셨어요. 어쩌면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행을 하면서 특히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나라일수록 이방인인 저를 겁 없이 집 안으로 끌어들여
밥을 나눠주고, 가진 것을 선물로 내어놓는 식의 환대를 보여주는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외로움이
외로움에게』라는 책에서 쓴 이야기인데요. 파리에서 여행 전문 서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어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집에 초대를 하더라고요. 가겠다고는 했는데 약간 불안한 마음은 있었죠. 갔더니 저뿐 아니라 그 친구가 일하면서 알게 된 여행자들을
초대한 거예요. 북유럽에서 온 친구, 세계 일주를 곧 떠날 커플, 저, 이렇게 다양하게 모여서 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일본 음식을 먹고, 한국
음악을 듣고, 했죠.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순간으로 남았어요.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은, 정거장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죠.
그러다보니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이런 마법 같은 순간들을 일상의 공간에서는 누릴 수 없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 방법의 하나로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밥을 먹을 수도 있고, 책을 읽을 수도, 좋아하는 시를 읊을 수도 있는 거죠. 그러다가 ‘책 읽는 밤’, ‘밥 먹는 밤’, ‘시와 산책이
있는 오후’ 이런 것들을 꾸렸던 것 같아요.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내킬 때 어쩌다 한 번 씩 하고 있어요.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지나는 중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가 있을까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시인의 시에서 위안을 많이 얻었어요. 책에 소개한 김선우 시인, 김소연 시인, 허수경 시인의 시를 통해 굉장히 위안을 얻고요. 지금도 여행을
떠날 때 이분들의 시집 한 권은 꼭 넣어가고 있는데요. 그 세 분의 시집을 추천하고 싶어요.
그런 조건을 스스로 생각해서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겠네요. 가령 동시대의 동년배 시인의 시를 읽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네, 남자분이라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남자 시인은 어떻게 세상을 보는가 그런 걸 볼 수 있겠죠.
다음 여행 계획은 어떤 건가요?
내년 봄에 그리스의
섬에서 두 달을 보낼 거예요. 이후 산티아고를 다시 가서 걷지 못한 구간을 마저 걷고 알베르게(Albergue, 순례자 전용숙소)에서 자원
봉사도 좀 하고 싶고요.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길고 긴, 춥고 쓸쓸한
겨울밤에 이 책을 머리맡에 놓아두고 한 편 씩 읽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짧은 몇 십 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한 편의 글을 잠들기 전 잠시
읽어주신다면 좋겠네요. 스물여덟 편이니까 약 한 달 동안 이 책을 천천히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한 자리에서 다 읽어주시는 분도 물론
감사하고요.(웃음)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자 사람의 기쁨과 외로움을 같이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주신다면 더 좋을 수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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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읽는 시김남희 저 | 문학동네
세계 구석구석을 걸으며 길 위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에 대해 전했던 여행가 김남희가 이번에는 길 위에서 읽은, 자신의 마음을 뒤흔든 스물여덟 편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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