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잔꽃송이

아주 작고 따스한 안부 하나...

나나수키 2016. 4. 7. 19:07

시인의 밥상에도 이탈리아의 물결이

등록 :2016-02-24 18:59수정 :2016-02-25 10:33



조갯살과 채소를 다진 뒤 볶아 만든 유곽. 거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조갯살과 채소를 다진 뒤 볶아 만든 유곽. 거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매거진 esc] 공지영의 시인의 밥상
⑩ 지리산 버들치 시인 박남준이 만든 유곽
어느 날 시인이 호기롭게 소리쳤다.

“내가 유곽을 해줄게…. 물론 이성복의 그 ‘정든 유곽’(시인 이성복의 <정든 유곽에서>를 일컬음)은 아니야.”

시인은 싱긋 웃었다. 아직도 노총각이라서 그럴까, (자신은 가끔 총각을 넘어 독거노인이라고 한탄하지만) 버들치 시인은 가끔 우리 사이에서 하나도 외설스럽지 않은 말을 뱉어내고 우리의 눈치를 살피며 살살 웃었다. 자기가 이렇게 ‘센’ 농담을 뱉었으니 “너희들 깜짝 놀랐지?” 뭐 이런 표정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 ‘엷은 농도’에 어이가 없어서 잠시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으면, 그게 자기가 깜짝 놀랄 농담을 했다는 건 줄 알고 의기양양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도 있다.

“곶감 말리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만져줘야 해…. 알았지, 만져서 늘 모양을 만들어줘야 하는 거지. 몰랑몰랑한 걸 가지고 말이야. 그런데 이 곶감은 만져주면 만질수록 더 힘이 빠져요. 크크…, 하이고 배야.”

시인은 이런 말을 뱉어놓고 혼자 고개를 뒤로 젖히고 막 웃어댔다. 그리고 당연히 모두가 웃을 줄 알고 고개를 들어 정신을 차리고 나면 우리들의 멀뚱한 얼굴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는 상황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다시 한번 설명을 해주면 이 세상에 안 웃을 사람이라고는 없다는 생각을 하는 듯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가 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심지어 그 웃음 때문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며 말했다.

“웃기지 않니? 만지면 만질수록 힘이 빠지고 시들어요. 우하하하.”

상황이 이쯤 되면 우리들 중의 착한 몇은 따라 웃어주었다. 오스카 와일드 식으로 이야기하면 언제나 착한 사람들이 있어서 재미없는 농담을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모양이다.

프라이팬에 다진 양파·당근 등 볶다
채소 숨 죽을 즈음 다진 조갯살 투척
볶은 걸 조개껍데기에 소복하게 얹고
일부엔 모차렐라 치즈까지 올려 찌면
담백하고 부드럽고 짭조름한 맛 일품

우리들은 아직도 봄이 코앞에서 아른거리는 거제도의 몽돌해변에서 만났다. 제이(J)의 초대였다. 제이는 대개 명절이 끼거나 시인들이 외로워할 만한 때에 시인과 최 도사를 초대했다. 맘 씀씀이가 참으로 고마운 친구였다. 그런 제이에게 시인은 오랜만에 해물요리를 접대하겠다고 말을 꺼낸 것이다. 검색해보니 정말 유곽이란 요리가 있었다. 대합조개나 개조개(대개는 그 가격 때문에 개조개 혹은 큰 조개를 쓴다)에 여러 가지 채소와 양념을 곁들여 찌는 요리였다. 그 이름이 유곽이라는 게 신기했다. 유곽의 양념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고추장으로 양념을 해서 넣는 것에서부터 된장 양념, 소금 양념 등등이 그것이다. 나도 애들이 어렸을 때 이런 요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요리에는 밀가루와 치즈 그리고 달걀이 들어갔었다.

시인은 먼저 큰 조개의 살을 발라 다지고 양파와 당근, 파란 고추(너무 맵지 않은 것으로 말이다)와 붉은 고추를 아주 잘게 다졌다. 슴슴한 맛을 좋아하는 버들치 시인은 간을 따로 하지 않았다. 조개가 머금고 있는 제 스스로의 짠맛만 더한 것이다. 먼저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양파, 당근, 풋고추 등을 볶다 채소들이 거의 숨이 죽을 때쯤에 역시 다져놓은 조갯살을 투척해서 살짝 볶는다.

“알겠지 꽁지야…. 잘 익는 것은 나중에, 잘 안 익는 것은 먼저….”

오랜만에 버들치 시인이 하는 요리를 보고 있다가 최 도사가 거들었다.

“그게 평등이지.”

나는 깜짝 놀라 최 도사를 보았다. 최 도사는 산중에서 컴퓨터 없이 살고 있었는데 지난 대선 때부터 “더러운 세상”을 개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컴퓨터 없는 그가 ‘잠잠산방’(최 도사의 집)에 가끔 놀러오던 예쁜 언니들의 권유로 누군가 건네준 스마트폰을 통해 팟캐스트들을 듣기 시작하면서였다. 나는 가끔 그의 발언 수위가 걱정이 돼서? 누가 뭐래서가 아니라 도 닦는 데 방해 될까 싶어서? 하여간 그의 말을 제지하곤 했었다. 그런 그가 요리를 보고 평등을!!

유곽 상차림을 준비하고 있는 박남준 시인. 거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유곽 상차림을 준비하고 있는 박남준 시인. 거제/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장자의 말씀에 따르면 정말 좋은 군주는 군주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하는 군주라고 했는데, 이 산골 잠잠산방에서 무위도식을 최고의 낙으로 삼는 교주 최 도사까지 가끔 “이 더러운 세상” 하는 걸 보면 많은 것이 확실히 제자리에 없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자 7개월이나(!) 먼저 태어난 형이기에 언제나 최 도사에게만은 군림하기를 즐기는 버들치 시인이 말했다.

“그래, 너 요새 뭘 좀 아는구나!”

그러자 더욱 의기양양해진 최 도사가 대꾸했다.

“남들은 내가 세상하고 아무 상관 없이 산다고 하지만 안 그래. 이 산중에 앉아 경기를 체감하는 건 내가 제일 빨라. 하다못해 주식이 오르고 경기가 좋으면 후배 놈들이 담배 보루나 사 가지고 오는데 경기가 나빠지고 흉흉해지면 나한테 와서 울기만 하거든. 그럼 내가 소주를 사 주지만 말이야.”

최 도사의 말을 들으니 그럴듯했다. 우리의 감탄사가 이어지자 최 도사가 더 나갔다.

“그래서 내가 늘 우리나라의 평화와 경제 성장을 기원하잖아.”

“야야…, 시끄럽고 이거나 얹어.”

시인은 최 도사의 말을 막으며 짠! 하고 새로운 재료를 하나 들어 보였다. 모차렐라 치즈였다. 바야흐로 시인의 밥상에도 새로운 이탈리아의 물결이 도래한 모양인데 시인의 말에 따르면 ‘젊은 친구들이 좋아해서’라는 거였다. 우리는 채소와 조갯살로 버무린 속을 소복하게 얹은 조개를 찜통에 가지런히 넣고 일부에는 모차렐라 치즈를 올렸다.

찜통의 김이 조개껍데기 위에 소복한 소들을 익힐 때까지 우리는 제이네 리조트 테라스에 나와 바다를 보았다. 언제나처럼 바다는 잔잔했다. 언제나처럼 바다는 푸른빛이었고 언제나처럼 바다에는 작은 일렁임이 파도로 드러나곤 했다. 바람은 찼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분명 이 순간 바람은 차고 뺨이 시릴지라도 봄이 오고 있다는 것을. 이 햇살의 빛이 노랑노랑해지는 것이 그 증거였다. 우리들은 무릎담요를 덮고 요리를 기다렸다. 드디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유곽을 예쁜 접시에 담아 버들치 시인이 나타났다.

소주를 머금기도 전에 나는 얼른 그 맛을 보았다. 담백하고 부드러우며 짭쪼름한 맛이 일품이었다. 모차렐라 치즈를 얹은 것은 젊은 친구들에게 양보하고 나는 밥도 안 먹고 유곽을 세 개나 먹었다.

그렇게 바다의 내음을 간직하고 돌아오니 집에 곶감 한 상자가 도착해 있었다. 최 도사 형이 보낸 것이었다. 가진 것 없는 형은 가끔 내게 이런 걸 보냈다. 한번은 송이버섯이 한 상자 왔기에 전화를 해서 대뜸 “벼룩의 간을 빼먹지 내가 이걸 어떻게 받아?” 하니까 최 도사 형이 천천히 말했다.

“나 벼룩 아니야…. 그리고 나 네가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어.”

그때 내 눈에 눈물이 와락 고였던 거 같다. 하나는 내가 나도 모르게 그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 때문이었고, 두번째는 그가 세간에 오르내리는 나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상처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난 괜찮아” 하고 말하자 그는 화를 버럭 내며 “널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런 글들 보면 안 괜찮아!” 했다. 그 기억이 떠올랐던 거다. 나는 곶감을 차마 다 입에 넣지는 못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고마워, 형. 잘 먹을게.”

그러자 최 도사가 메시지를 보냈다.

“아프지 마라.”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할까’ 하고 톨스토이는 썼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사랑이 필요할까. 아마도 아주 작은, 아주 작고 따스한 안부 하나…의 사랑이 필요한 건 아닐까.

공지영 소설가


'삶의잔꽃송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이비 러블리 스위밍~~  (0) 2016.04.13
충분하다,참으로 충분하다...  (0) 2016.04.07
봄날은간다  (0) 2016.04.07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0) 2015.11.07
죽을 권리  (0) 2015.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