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인터뷰

유쾌한 스님,아잔 브람~

나나수키 2016. 3. 16. 17:24

유쾌하고 현실적인 명상스승 아잔 브람

                



“9년간 한번도 화내지 않는 스승의 법력에 반했죠”

영국 출신 세계적 ‘명상 스승’ 아잔 브람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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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부부가 대판 싸우고 있다. 밖에서 들리는 ‘꽥꽥’ 소리를 두고 아내는 닭이라 하고 남편은 오리라고 우기는 것이다. 아내가 끝내 울음을 터트린다. 남편은 분명히 오리라고 생각하지만 우는 아내를 보고 속삭인다. ‘여보, 미안해, 내가 틀렸어. 저건 닭의 울음소리야.’ 남편이 비겁한 걸까? 남편은 순간 깨달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닭이냐 오리냐가 아니라 부부간의 화합이고 이해라는 사실을. 아무리 내가 옳아도 아내를 울려서 좋을 것 하나 없는 세상이다. 상식은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 유전자 변이를 일으키면 닭도 꽥꽥 울 수 있는 세상이 됐다.”


스님의 행복론은 무겁지 않다. 지극히 현실적이다. 경쾌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술술 풀어낸다. 세계적인 명상 스승으로 꼽히는 아잔 브람(65·사진) 스님이 한국에 왔다. 4~7일 대전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 컴퓨터 총회’(WCC)에서 기조강연을 했다. 컴퓨터 전문가들이 명상가를 초청한 것이다. 그는 구글과 페이스북의 단골 강사이기도 하다. 그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로 내년 2월25~28일로 연기된 세계명상대전(조직위원장 각산 스님) 참가차 서울에 다시 올 예정이다.


케임브리지대서 이론물리학 전공
우연히 본 불교 서적 끌려 타이로
‘살아 있는 붓다’ 아잔 차 제자 입문

‘숲속 수행자’에서 30년 넘게 명상
‘행복해지는 법’ 인터넷 강의 명성
“욕망의 바람이 멈출 때 진실 보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이론물리학 전공자답게 그는 컴퓨터 전문가들에게 “개혁과 창조의 아이디어는 외부로부터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제 제자는 스승의 무릎 아래서 고개를 조아리는 것이 아니라 스승의 어깨 위에 서서 멀리 바라봐야 한다”고 충고했다.


하루 만인 5일 한국을 떠난 그는 출국 전 서울시내 롯데호텔에서 <한겨레>를 만나 출가 동기부터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남겼다. “첫째는 인간 본성이 무엇인지 깨닫고 싶었어요. 둘째는 불교 명상의 즐거움이 대학 시절 여자친구와 나눈 섹스의 쾌감보다 100배는 큰 황홀함이었어요. 그러니 어찌 출가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런던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17살 때 우연히 불교 서적을 읽은 그는 자신이 불교 신자라고 느꼈다. 10대에 아버지의 죽음을 겪었지만 마음의 동요 없이 아버지의 존재를 내려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학금까지 받고 첨단 물리학을 공부한 그는 문득 과학으로 사물과 인간, 세상과 삶의 이치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에 졸업 뒤 타이로 건너가서 수행승이 됐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기독교 집안에서 불교에 귀의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나요?” 그는 차분하게 답했다. “기본적으로 종교 선택의 자유를 인정하셨어요. 2차 세계대전 때 너무도 많은 이들이 주변에서 비참하게 죽는 것을 목격한 탓에 자비로운 기독교라는 믿음이 사라져 공공연히 무신론자가 됐다고 말씀하셨으니까요.”


그는 타이의 ‘살아있는 붓다’로 불리던 아잔 차(1919~92)가 이끄는 숲속 수행자의 사찰에 사흘만 있겠다고 갔다가 9년이나 함께 생활하며 그의 제자가 됐다. 뭐가 그를 아잔 차의 제자로 만들었을까?
“못 믿을지 모르겠지만 스승의 놀라운 법력에 반했어요. 다른 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타심통(他心通)이었어요. 몇차례나 스승의 능력을 시험해 보았는데 한번도 틀린 적이 없어요. 하지만 스승에게 가장 놀란 점은 9년 동안 한번도 화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겁니다.”


‘불순한’ 질문을 해봤다. “남들은 스님을 ‘깨달은 이’라고 합니다. 깨달음의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붓다는 ‘누구든지 깨달았다고 스스로 말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본인이 깨달았다고 여기는 순간부터 이기심이 발동하고, 남들로부터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어해요. 지금 가장 큰 즐거움은 ‘평화로운 마음’입니다.”


그는 30년 넘게 숲속 수행승으로 살며 명상을 통해 행복해지는 방법을 터득했다. 불교라는 동양 종교의 경건함을 유지하면서 서양인 특유의 유머러스한 언변으로 동서양을 거쳐 가장 존경받는 승려가 됐다. 인터넷으로 퍼지는 그의 법문 동영상은 수백만명이 접속해 듣는다. 특히 그가 서양인 불교 수도승을 위해 쓴 <승려의 길>은 불교 입문자의 정통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또 <성난 물소 놓아주기>, <술 취한 코끼리 길들이기> 같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명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사람의 마음은 산속의 호수와 같아요. 욕망의 바람이 일면 마음의 표면에 생각의 물결이 생겨요. 그런 생각들은 진실을 일그러뜨리고, 아름다움을 감춰 버립니다. 욕망의 바람이 멈출 때 우리의 마음은 완전히 고요한 상태가 됩니다. 그때에야 모든 진실과 아름다움을 정확하게 비출 수 있어요.”


최근 <시끄러운 원숭이 잠재우기>(각산 엮음)를 낸 그는 한국 독자에게 두 팔로 ‘사랑한다’는 포즈를 취했다. 유쾌한 스님이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