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연기를 안 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구고신에 빠져 있다는 배우 안내상씨가 국회의사당 앞 잔디밭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 ‘송곳’의 배우 안내상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하는 구고신 역
배우 안내상은 어떤 생각으로 연기하나
비정규직 노동자와 연대하는 구고신 역
배우 안내상은 어떤 생각으로 연기하나
동명의 웹툰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 <송곳>에서 노동상담센터 소장 ‘구고신’ 역으로 열연 중인 배우 안내상씨를 만났다. 극중에서 구고신은 인간으로 대접받기 위한 노동자들의 싸움에 늘 함께 서 있는 헌걸찬 노무사로 나온다. 그런 구고신을 연기하는 안씨의 이력도 남다르다. 그는 학생운동의 복판에서 1980년대를 보냈다. 1988년 2월에는 광주 미문화원에 사제폭탄을 설치한 혐의로 구속 수감돼 8개월 동안 복역을 하기도 했다. 출소 후에는 1년여 동안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자신의 운동은 실패했다면서 그저 연기를 할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에게 구고신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도 사실이다. 안씨를 만난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는 잔뜩 찌푸렸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노동개혁’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가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란 이름으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 체제를 연장하고 비정규직을 더 늘리려고 한다”고 비판한다. 정부의 ‘노동개악’ 정책에 대해 현실의 구고신은 어떤 일갈을 할까?
“나는 졌지만 구고신은 승리했다”
▶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송곳>을 아시나요?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의 싸움을 다룬 이 드라마는 최규석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입니다. 무노조 경영이 원칙인 삼성과 무관하지 않은 ‘종편’이 만든 드라마가 불편하다고요? 그 불편함을 잠시 접어둔다면 그동안 세상에 없는 것처럼 보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드라마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사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다른 이력으로 남다른 드라마에 출연중인 배우 안내상씨를 만나 <송곳>과 ‘송곳 같은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 사내가 있다.
만성 신부전증 때문에 매일 신장투석을 하고 고문 후유증으로 악몽을 꾸면서도 ‘시시한 약자들’ 곁을 떠나지 못해 하루하루 고된 싸움을 이어가는 남자. 웹툰 <송곳>의 부진노동상담센터 소장 구고신은 “제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기어이 한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다.
여기 또 한 사내가 있다.
죽음마저도 각오한 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이제는 내로라하는 유명인이 되었지만 시대의 복판에서 가장 뜨거웠던 30년 전의 자신을 아직 그리워하는 남자. 드라마 <송곳>에서 구고신 역할로 출연중인 배우 안내상(51)씨는 “한번은 다 바치고 나서 다시 겨울나무로 서 있는 벗들”이다.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배우 안내상은 학생운동의 가운데서 1980년대를 보냈다. 연세대 신학과 4학년이었던 1988년 2월에는 광주 미문화원에 사제폭탄을 설치한 혐의로 구속 수감돼 8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다. 마치 구고신의 대학시절이 이렇지 않았을까? 출소 뒤에는 1년여 동안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본인은 부인했지만 결과적으로 ‘송곳 같은 삶’을 살았던 안씨가 구고신 역을 맡은 것이 어색하지 않은 까닭이다.
웹툰과는 또 다른 매력
지난달 24일 첫 방송을 시작한 제이티비시(JTBC) 드라마 <송곳>은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다룬다. ‘푸르미마트’ 야채청과 파트 매니저인 이수인(지현우)은 어느 날 부장 정민철(김희원)로부터 판매직 전원을 해고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불의와 부조리에 끝내 침묵하지 못하는 성정의 소유자인 이수인은 “그건 불법입니다. 저는 못하겠습니다”라며 지시를 거부한다. 그러나 자신과 함께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믿었던 다른 동료들은 결국 회사의 지시대로 판매직 직원들에 대한 해고에 나선다. 회사에 대응하기 위해 푸르미 노동조합에 가입해 본격적인 싸움에 나선 수인에게 점장 갸스통(다니엘)은 야채청과 판매직 직원이 보는 앞에서 “당신들의 과장 이수인 때문에 여러분은 내 밑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것”이라고 선전포고한다. 매사에 원리원칙을 앞세운 까칠한 성격에다 점장의 공개적인 비토 발언까지 더해져 마트 내 ‘왕따’가 된 수인은 우연히 발견한 명함을 보고 ‘부진노동상담센터’ 소장인 구고신을 찾아간다. 이수인으로부터 노조 결성에 대한 도움을 요청받은 구 소장은 “정의감만 갖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건 당신의 싸움이 아니다”라며 그를 차갑게 돌려보낸다. 그러나 “당신도 자신의 싸움이 아니지 않으냐”는 이수인의 외침에 구고신은 결국 이들의 싸움에 함께하게 된다.
2003년 경기 부천 ‘까르푸’ 신중동점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웹툰 <송곳>이 고스란히 드라마로 부활했다. 현재 12부작 가운데 6부까지 방영된 드라마는 빠른 전개 속에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거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내밀한 심리 묘사와 세상을 꿰뚫는 직관, 촌철살인의 대사가 압권인 원작의 감동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다. 노동계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은 “딸과 같이 봤는데 드라마의 만듦새나 내용 모두 만족스럽다. 비정규직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으로서 뭉클한 대목이 많다”고 했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센터의 상근자들이 구고신이 노동자들에게 노동법을 강의하는 장면은 나중에 교육용으로 써도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 했다.
이러한 호응과는 달리 에스엔에스(SNS)에선 제이티비시 <송곳>에 대한 보이콧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소설 <소수의견>의 저자 손아람 작가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이티비시의 드라마 <송곳>에 대한 보이콧을 생각하면서”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제이티비시 <송곳>이 신인 작곡가들의 저작권을 존중하지 않고 이들을 착취하고 있는 배경음악 라이브러리 업체 로이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맺고 있다”며 이를 문제 삼기도 했다. 이승한 티브이칼럼니스트는 “노조가 뭐 하는 곳인지 모르고 왜곡된 모습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은 현실에서 송곳은 노조에 대한 편견을 깨주는 드라마”라면서도 “이 드라마를 만드는 스태프들이 제값을 받지 못하고 일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모양새가 좋지는 않다”고 했다.
본격적인 노조활동을 시작한 푸르미마트 노동자들과 수인은 끝내 승리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결국 이 싸움의 복판에서 이수인을 ‘지도’하고 있는 구고신에게 향할 수밖에 없다. 까칠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본인의 연기 스타일을 구고신 캐릭터에 잘 녹여내 웹툰과는 또 다른 매력을 살려낸 안내상을 만난 이유다.
실제 안씨는 <송곳>과 동시간대에 방영중인 주말드라마 <내 딸, 금사월>(MBC)에 동시 출연하느라 “서로의 프로그램에 민폐를 끼치고 있다”면서도 “이제 연기 인생을 끝내도 상관없다”고 할 정도로 <송곳>에 푹 빠져 있었다. 29일로 예정된 12부작 <송곳>의 종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우울한 기분이 든다”는 그는 지난 10일, <한겨레>와 만나 마치 구고신이 화면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입성과 말투로 <송곳>과 연기 인생,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해 질 무렵 서울 여의도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마포의 냉면집으로 자리를 옮겨 3시간이 넘도록 이어졌다.
까르푸 실화 바탕한 웹툰 ‘송곳’
싱크로율 100%로 살아난 드라마서
주연 구고신역 맡은 안내상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이수인을
향한 그의 대사들은 압권이다 “구고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작가나 실제 모델 만나볼까 했다
그게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될까?
결국 모두 안 만나기로 했다
구고신에 빠져든 마음 놓치기 싫어” 나의 과거 출입금지! -예전에 웹툰으로도 봤는데 화면 앵글이나 구도까지 싱크로율이 원작과 거의 흡사하더라. “대사도 거의 똑같다. 8회까지는 원작이랑 다른 게 거의 없다. 극중 역할인 문소진(김가은) 부분이랑 마트 아줌마들 이야기가 첨가된 정도다. 연출자인 김석윤 감독이 원작을 충실히 살리고 싶어했다.” -드라마 찍기 전에 최규석 작가의 원작을 봤나? “드라마 찍기 전에 김 감독님이 ‘한번 읽어봐라’ 그래서 봤다. 난 이런 내용인지 몰랐다. ‘송곳’ 그러길래 뭐지? 원래 웹툰을 드라마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했다. 판타지가 많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놓고 이러니까. 근데 웹툰을 봤는데 ‘이거 뭐야, 그래서 어떡하자는 거야?’ 눈이 휘둥그레졌어. 이런 만화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웹툰에 푹 빠져들었다. 경이로운 웹툰이었다. 상당히 놀랐다. 이 작가가 누구지? 작가에 대해 너무 궁금하더라고. 이 정도 경지에 오르려면 보통의 경지가 아니란 생각도 들고. ‘이런 웹툰을 몰랐다니’ 아, 정말 반성 많이 했다.” -캐릭터 분석을 위해 작가나 구고신의 실제 인물로 거론되는 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등을 사전에 접촉했나? “구고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작가나 실제 모델을 접촉해보고 싶기도 했다. 만나볼까? 그게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될까? 고민을 많이 했어. 난 이 웹툰 <송곳>을 읽고 구고신에게 빠져 있는데 혹여 ‘실제 인물을 만나서 비슷한 느낌을 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것이 생겨버리는 거다. 구고신에게 빠져든 내 마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고민 끝에 다 안 만났다. 원작과 감독만 믿고 가자, 그렇게 생각했다.” -구고신 역할로 처음부터 제안받았나? “그렇다. 제이티비시에서 2013년에 <시트콩 로얄빌라>를 함께한 김 감독이 구고신을 제안했다. 난 처음에는 비중있는 역할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읽어보니 주인공인 거야. 너무 부담스러우면서도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 부담과 함께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처음엔 의심했어. 이런 내용으로 드라마가 가능한가? 당시에는 확정된 거 아니었으니까. 나중에 감독이 찍기로 했다고 해서 그제야 안도했다.” -노동을 소재로 한 드라마로서는 처음인데. “어디까지 세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어디까지 표현을 해야 되지? 강한 메시지도 많고 센 장면도 많아서 세게 치고 흥분해서 연기하면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자 싸우자!’ 이렇게 되면 안 될 거 같았다. 그래서 대사는 그대로 가더라도 연기는 유하게 바꿨다. 친근하고 편안하고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그 정도 선에서 연기했다. 선동자의 느낌을 주지 않으려 했다. 근데 배우 입장에서 그게 좋아. 막 소리 지르고 카리스마 있게 쫙 가면 앵글도 잘 잡히고 뭔가 그림이 탁 나오지만 그건 아닌 거 같았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사람으로서 만감이 교차할 거 같다. 예전 생각도 나고. “‘옛날 생각 많이 나겠다’는 그런 소리 많이 듣는데 전혀 안 난다.(웃음) 물론 나긴 나지만 할 때마다 죄스럽다. ‘아 이거였는데, 그때 내가 진짜 철이 없었구나. 난 그때 왜 그렇게 싸웠지?’ 그래서 사실은 숨기고 싶었다. 내가 ‘과거에 학생운동을 해서 이런 거를 한다’ 이런 식으로 드러내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다. 현장에서 할 말이야 많지. 누가 ‘노동가요 아는 거 있냐?’고 물으면 아는 거야 많은데 입도 벙긋 안 한다. 나의 과거가 여기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엄연히 다른 거다. 내가 경험했던 거랑 구고신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 나와 구고신을 연장선상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이 작품에 대한 죄다 죄. 그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난 완전히 실패했던 거고. 구고신은 열심히 이 시대를 승리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성공하는 삶이다. 내 이력과 결합되면 이해가 되겠다? 오우, 천만의 말씀이다. 물론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구고신, 우리 시대의 이상형 그는 자신의 이력과 드라마 <송곳>의 출연을 별개의 일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그가 <송곳>을 통해 지난 시절을 아프게 되돌아봤기 때문이었다. 그는 <송곳>을 보면서 예전 자신이 너무 철이 없었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고 했다. 대학 졸업 뒤 노조를 조직하기 위해 공장에 위장취업을 했지만 노동자에 대한 이해보다 술과 여자만 밝히는 그들의 한심한 모습을 보고 절망한 것이나, 농사에 대한 자신도 없이 농민운동에 뛰어든 일 등이 아프게 다가왔다고 했다. “변소를 치우려면 자신의 손에 똥을 묻혀야 한다”는 구고신의 말이 자신에게 되돌아오고 노동자들과 하나가 되려 하기보다 고고한 싸움만 하려고 한 극중 이수인의 모습이 자신과 겹쳐진다고도 했다. -왜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그들이 되어보진 않고서 섞이지도 않으면서 당위성만 얘기하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하고 현장에 들어갔던 거야. 어쩌면 그렇게 낭만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는지. 그네(노동자)들은 그네들대로 다른 식으로 푸는 모습이었던 거지.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네들이 후진 게 아니라 그네들은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 못 견디는 그 무엇이 있었던 거야. 그게 그 사람들의 낙이었고 즐거움이었던 거야.” -본인의 말처럼 이력을 떠나서라도 구고신이라는 인물은 안내상이 아니면 안 됐을 캐릭터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유머러스하고 까칠하면서도 인간적인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소화한 거 같다. “그러면 더할 나위 없겠다.(웃음) 사실 이 부분은 김 감독의 연출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첫 회에서 중국집 배달원의 체불 임금을 받으러 중국집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었다. 난 ‘여기 일하는 사람이 몇 명?’이라는 명령조로 대사를 쳤다. 그러니까 김 감독이 와서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들어와서 그렇게 까칠하게 몇 명이냐고 물으면 누가 대답을 해줄까’라고 하더라. 노동자들 대상으로 강의하는 장면에서도 ‘우린 인간 아니오. 인간이면 이렇게 할 수 없소. 당신들은 인간이 아니오’라고 흥분해서 대사를 하니까 ‘노조 처음 해서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한테 막 선동을 해버리면 사기’라며 조곤조곤 설명하는 톤으로 가자고 하더라. 순간 ‘아, 이렇게 가려고 하는구나’ 하고 감을 잡았다. 그때 김 감독에게 신뢰가 확 생겨버렸다. <송곳>에서 제일 좋은 것 가운데 하나는 김석윤 감독을 만난 거다.” -<송곳>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완전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거다. 세트 분량 다 찍고 야외촬영 몇 번 남았는데 그래서 우울한 기분이 든다.(웃음) <송곳>은 상당히 퀄리티 있게 그 시대를 반성해가면서 지금의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문제제기를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작품을 하는 것이 상당히 보람찰 거다. 결론적으로 잘 살자는 얘기다. 사람 곁에 있어주자는 얘기고.” -구고신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떤 캐릭터인가? “솔직히 말하면 구고신은 이상형인 거 같아. 우리 시대를 산 사람들의 이상형. 다 갖고 있는 거야. 너무 힘든 시절을 살고 있고 아픈 경험을 했고 수많은 좌절을 이미 겪었는데도 포기를 하지 않잖아.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대부분 포기를 하는데 그 길을 꾸준히 인간성을 유지하면서 간다는 게 쉽지는 않으니까.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으면서 길 가다 쓰러져 잠든 노숙자를 일으켜 세우면서까지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구고신은 어찌 보면 꿈같은 사람이야. 어찌 보면 비현실적인 존재지. 그런 사람이 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고 죄스럽기까지 한.” 살벌했지만 가장 행복했던 80년대 -어찌 보면 구고신은 ‘민중이 변혁의 원동력’이라고 하는 이른바 ‘민중 메시아주의’로부터 벗어난 인물처럼 보인다.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것’이라고 말하는 구고신은 민중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버리지 못하는 기존의 운동권 캐릭터와 다른 것 같다. “그네들(운동권)이 민중을 낭만적으로 바라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독재정권의 폭압 속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당위성이 너무 강한 나머지 그걸 지탱시키는 내적인 힘은 달렸던 것 같다. 그게 없으니까 뜨겁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가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구고신은 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찌 보면 깨달은 사람 같다. 노동조합의 문제, 비정규직의 문제 이런 거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는 거지 이 사람은. 선각자의 느낌이 든다. 달라이 라마가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 결국 구고신이라는 인물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고 무엇을 해야 되는지 말해주고 있는 거 같다. 내가 지금 어디에 발 딛고 있는지 가르쳐주는 인물이다.” -<송곳>은 노동을 소재로 한 전무후무한 드라마로 기록될 것 같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 드라마가 무노조 경영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삼성과 무관하지 않은 제이티비시에서 방영된다는 사실에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난 이런 선택을 한 제이티비시에 대해서 정말 박수쳐주고 싶다.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예를 들면 종편에 한겨레가 들어왔다면 할 수 있는 작업을 제이티비시가 하는 거잖아. 그래서 감사하다. 사람들이 권리를 침해받는 현실에 대해서 방송이 좀 이바지해줘야 한다고 본다. 노조에는 무시무시한 세력이 있는 거 같고 노조 만들면 큰일이나 나는 거라고 생각을 하잖아. 이런 상황에서 자기가 처한 현실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 정도는 해볼 수 있는 계기를 <송곳>이 제공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송곳>에는 ‘뭉쳐서 싸웠는데 너무 힘들다. 심지어 안 하니만 못하다’ 이런 얘기까지 나온다. 다 보여준다. 그래서 아마 제이티비시에서 허락한 게 아닌가 싶다.(웃음) 아무튼 한국 드라마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느낌도 들고 그 가운데 내가 있다는 게 고마운 일이다.”
-애초에 학생운동에 빠져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중학교 때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닌 탓으로 장로교신학대에 1983년에 입학했다. 장신대에 다닐 때 연세대 신학과에 다니던 한 선배를 알게 됐다. 그 형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형이 건네준 책을 읽으면서 한국 교회사나 교리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 결국 그 인간을 쫓아 이듬해 연세대 신학과에 다시 들어갔는데 그 형이 우리문화연구회라는 서클에 들어가라고 하더라. 거기 가면서부터 학생운동에 빠져들었다. 남들하고 똑같이 매일 데모하고 세미나 하고 살았지.”
-88년 광주 미문화원에 사제폭탄을 설치했다가 검거돼 8개월 동안 복역하다 나왔다. 당시 사건에 대해서 말해달라. 비장하게 신변 정리까지 다 했다던데.
“내가 원래 뭔가에 잘 빠지는 편이야. 어릴 적엔 신앙에 미쳤고, 나중에는 마르크시즘에 미쳤고. 학생운동을 하는데 이건 그냥 해선 안 될 거 같은 거야. 죽어야 되지. 그래서 실제로 많이 죽었잖아. 분신도 하고. 그런 걸 보면서 이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 결사대를 조직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어. ‘우리 죽을 수도 있다. 최소 무기징역이다. 그래도 가자.’ 지금 생각하면 살벌하지.(웃음) 아무튼 힘 있게 얘기했는데 운동 지도부들이라 결의할 줄 알았는데 대부분 안 하는 거야. 그러다가 몇 명을 모은 거야. 동의한 사람들이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났어. 결국은 다 실패했지만 ‘당신이 산다면 내가 죽겠소’라는 이 사람들의 마음을 한번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해. 그 사람의 사상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에 어떤 것이 들어 있는가를.”
-이 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미국 방문을 할 수 없다고 들었다.
“그럴 거 같긴 한데 실제로 그런지는 모른다.(웃음) 미국에 가볼 기회가 있었는데 스케줄 때문에 취소됐다. 별로 가보고 싶지 않아서 실제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쉽지 않을 듯.(웃음)”
-엔엘(NL·민족해방 계열) 쪽 정파였던 거 같다.
“그렇다. 근데 그게 그때 당시에 어떤 선택의 문제가 아니고 어떤 선배 밑에 가면 어떤 정파고 어떤 선배 밑이면 어떤 정파로 결정되는 구조였다. 4학년 때 한 친구를 만났는데 대화가 안 되는 거다. 그 친구가 ‘너 왜 거기 가 있냐?’ 그러면서 이상한 눈빛으로 보더라. 그런 눈빛은 처음 봤다. 서로 대판 논쟁을 벌이고 그 이후로 안 보는 사이가 됐는데 그때부터가 이미 마지막을 걷고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내가 뭐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
-엄혹한 현실이 동지 아니면 적으로 간주하는 강퍅함을 낳은 거 같다.
“그래도 내 인생을 통틀어서 돌이켜보면 가장 행복했고 다시 돌아가라고 한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다른 시절로 가고 싶지 않다. 나 혼자 잘 살자고 그러는 게 아니라 그게 대중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엄청난 희생이 따르는데도 불구하고 감수할 용기가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네들이 같이 모인 그 자리는 너무 뜨거웠어. 그 뜨거운 열정 순수함이 있던 그 시절을 난 절대로 잊지 못하고 그거에 대해서 욕을 하면 동의할 수 없어. 그 시절을 욕하는 게 아니라 그 와중에 뭔가 제대로 된 길을 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그 시절만큼은 지금도 돌아가라면 뛰어가고 싶어. 스무살과 스물다섯살 사이의 인생은 더 살고 싶지가 않았어. 너무 충만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날마다 설레었고 날마다 행복했어.”
“옛날 생각 많이 나냐고? 전혀!
나긴 나지만 할 때마다 죄스럽다
아 그때 내가 진짜 철없었구나
난 완전히 실패했던 삶인 거고
구고신은 승리하며 사는 거다” “신앙에, 마르크시즘에 미치고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학생운동
전국 다니며 결사대 조직해
광주 미문화원에 사제폭탄 설치
지금도 미국은 안 가고 싶어”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
‘송곳’이다, 하하하
대사·내용 너무 훌륭하지 않나
어떻게 살지 생각하게 했다
내 많은 것들이 바뀔 거다” 시시한 약자 위한 시시한 강자와의 싸움
방송에서 스스럼없이 자신은 혁명가를 꿈꾼 공산주의자였다고 밝히기도 한 그였지만 요즘은 세상에 대한 관심을 접고 자신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1990년 극단 ‘한양레퍼토리’를 무작정 찾아가면서부터 배우의 길로 들어선다. <라이어>, <한여름밤의 꿈>, <지하철1호선> 등의 연극에 출연하면서 이름을 알린 안내상은 봉준호 감독의 단편영화 <백색인>(1994)을 시작으로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1997),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2002),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2003) 등에서 인상적인 조연 연기를 잇따라 선보였다. 2007년에는 에스비에스 드라마 <조강지처클럽>을 통해 대중적인 배우로 거듭나면서 이후 숱한 드라마의 러브콜을 받게 된다.
-충만함을 준 운동과 결별하고 연극을 하게 된 이유는?
“운동을 떠난 이후에 사람들에게 연락을 못했어. 배신했다고 듣고 싶지 않아서, 그만뒀다고 할 자신이 없어서. 아는 사람들이라곤 다 옛날에 같이 운동했던 사람들인데 하나도 연락을 못하겠는 거야. 술 한잔을 같이 할 수도 없고 그 누구도 만날 수가 없었던 거야. 순결했던 내가 그 세계를 버렸다고 배신했다고 생각하니까 아무도 못 만나겠더라고. 혼자가 돼버린 거야. 그네들을 만나면 너 요새 뭐 하냐고 하면 할 말이 없잖아. 3년은 방황하고 별짓 다 했어. 그 절망은 상상을 초월해. 그런데 어느 날은 살고 싶더라고. 아 이거 아니잖아. 웃고 싶다. 내가 뭘 잘못했어. 그러고서는 도망치듯 시작한 게 연기였지.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준 건데. 연기도 어찌 보면 과거에 대한 향수인지도 몰라. 과거에 너무 혼자 오랫동안 고통스러웠거든, 3년 동안. 연극은 떼로 해야 되잖아. 같이 뭔가 뚝딱뚝딱하는 거니까. 그래서 들어가니까 재밌더라고. 예전 운동만큼은 아니지만. 연습하는 게 너무 좋고 워크숍 하는 게 너무 좋아. 우리끼리 맞춰보고 무대도 꾸며보고 하는 게 너무 좋아. 막상 극이 올라가면 재미없고, 그땐 평가받아야 하니까.(웃음) 지금도 그래서 함께하는 걸 좋아해. 가령 <송곳>이라는 한 작품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달려가는 이런 모습이 너무 보기에 좋은 거야. 그런 상황에서 누군가 막 딴짓을 하면 화가 나. 대본도 안 보고 딴짓하면.(웃음)”
-수많은 작품 활동 가운데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한원수’ 역할로 국민 밉상으로 등극하면서 개인적으로는 빚을 갚게 해준 <조강지처클럽>인가?
“(단호하게) <송곳>이다. 하하하. 난 이걸로 끝내도 상관없다. 그만큼 여한이 없다. <송곳>이면 된다. 이런 작품은 더 이상 못 만날 거라고 본다. 어떤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아예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이거 하려고 연기했구나’ 그런 생각마저 든다. 이 작품만큼 날 휘어잡을 작품이 있을까. 난 지금 이 속에 살고 있지 다른 건 신경도 안 쓰고 있다.”
-<송곳>의 뭐가 그리 좋은가?
“구고신의 대사나 내용 모두 너무 훌륭하다. 구고신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강의를 한다. 노조 10년 하다 사장 되면 노조 깰 생각밖에 안 하는 게 사람이라고 말한다. 노동자들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한다고 비난하자 구고신이 말한다. ‘당신들은 안 그럴 거 같아? 서는 데가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라고 말한다. 캬~ 멋있잖아. 또 이수인이 여자친구가 있는데 여자들이 나온 술집에서 접대를 같이 받은 황주임도 문제라는 식으로 말을 하니까 구고신이 말한다. ‘당신과 같이 양심적이고 깨끗한 사람만 보호받아야 되는 거냐? 우린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거다’라고 말한다. 이런 배역을 어디서 만날 수 있겠느냔 말이다. 날 한번 땅 하고 친 작품인데 아직도 머리가 멍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만든 작품이다. <송곳>을 통해서 난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뀔 거 같다. 사람이 어떤 때 ‘요걸 끝으로 멋지게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 않나. 송곳이면 된다. 근데 벌어놓은 게 그렇게 많지가 않아서. 하하하. 하여튼 마음은 그렇다. 이게 끝이다. 더 이상 나한테 이런 작품 안 온다. 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를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줬다. 어떻게 이런 역할을 만날 수가 있겠어. ‘다음에 어떤 역할 해보고 싶으세요?’ ‘구고신. 이미 했습니다. 더 이상 하고 싶은 역할이 없습니다’가 내 답이다.”
-다른 배우들 연기를 보고 소름이 끼쳤다거나 그런 적이 없나?
“아직 없다. 좀 소름이 끼쳤으면 좋겠어. 누구도 아예 틀 자체를 깨서 연기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도 소망하는 건데 완전히 깨져버린 상태에서 경험하지 못한 연기를 해줬으면 좋겠어. 원래 좋아하는 감독이나 배우 그런 게 없다. 드라마도 잘 안 본다. 유일하게 보는 드라마가 <송곳>이다.(웃음) 이러면 <내 딸, 금사월>이 서운하겠다. 왔다 갔다 하면서 본방사수한다.(웃음)”
‘유나의 거리’와 ‘짧은 다리의 역습’
-소매치기와 결혼까지 한 전직 경찰 출신 노래방 봉사장 역할로 나온 제이티비시의 <유나의 거리>(2014)도 인상적이었다. 대부분 찌질하고 밉지만 악랄하고 사악하지 못한 인물들이다. 이런 캐릭터에게 매력을 느끼나?
“<유나의 거리>도 참 좋은 작품이었다. 제이티비시와 연관이 되면 난 왜 이렇게 좋은 작품만 했는지 몰라.(웃음) 난 모든 캐릭터들을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했다. <조강지처클럽> 때 3~4회 나갔는데 어떤 국장님이 지나가면서 ‘세상에 없는 연기를 하고 그래. 그런 거 하는 거 아냐. 그러지 마’라며 묘한 뉘앙스로 충고하는 거야. 그래서 의기소침해 있는데 문영남 작가님이 ‘하던 대로 하라’고 힘을 실어줬어. 그 말만 믿고 갔는데 결국은 맞아떨어진 거지. 어딜 가나 그렇게 믿음의 구석들이 있어. <유나의 거리>에서 봉반장이 왜 찌질하지? 사연이 있잖아. 잘살아 보려고 하는데 안 되고 그러다가 노래방도 하고 보도방에서 여자도 불러서 장사도 하고 그런 인간들 주위에 있잖아. 그중에 한 명 내 안에 꽂아서 집어넣고 연기를 하면 되는 거니까 재밌었어. 특히 <유나의 거리> 같은 좋은 작품들을 할 때면 너무 신이 나. 촬영이 끝나도 집에 가기 싫어서 서성대. 난 계속 있고 싶은데 매니저들 때문에 집에 가는 거예요. 그 현장을 떠나고 싶지 않아. 아무 짓도 안 해도 그냥 행복한 거야. 그 현장이 너무 좋아서.”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에서도 코미디 연기를 했고 지난해 출연한 영화 <창수>에서는 악한 연기를 선보였다. 정극과 희극 중 무슨 연기가 더 편한가?
“김병욱 감독의 <짧은 다리의 역습>은 개인적으로 참 좋았던 작품이다. 오늘 좋은 작품만 얘기하네. 사실 시트콤 자체가 너무 재밌었다. 원래부터 하고 싶었는데 김 감독의 연락을 받고 얼마나 신이 나던지. 결과적으로 하이킥 하면서 사람들이 내 이름을 다 알게 됐거든. 난 뭔 복이 이리 많은지 몰라. 영화 쪽에서는 장선우·이창동·강우석·이준익 감독도 만났고. 방송에서도 김병욱 감독처럼 좋은 감독들 많이 만난 걸 보면.(웃음)”
극중에서 구고신을 연기했지만 그는 이수인에게서 젊은 날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했다. 구고신이 이수인에게 던진 대사들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경험을 그는 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실패했다고 단정하면서 본인의 이력과 <송곳>의 출연을 별개라고 말하는 것이 겸양의 표현만이 아닌 이유다. 그러나 원작에서 구고신이 이수인을 가리켜 젊은 날의 자신을 보는 것과 같다고 한 것처럼 구고신과 이수인, 그리고 젊은 날의 안내상 모두 미친듯이 굴러가는 세상의 ‘걸림돌’과 같은 이들이었다는 점에서 그의 <송곳> 출연을 필연으로 보는 시선이 딱히 틀렸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그는 <송곳>이 마지막 작품이 돼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 더 많은 ‘송곳’이 필요하다. 두꺼운 벽을 뚫고 나오는 또 다른 ‘송곳’의 날카로움 속에 그가 줄곧 함께했으면 싶다.
글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그래픽 송권재 기자 cafe@hani.
그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다가도 중간중간에 유머를 잃지 않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3시간 동안 이어진 인터뷰 내내 그는 띠동갑은 되는 기자에게 자신을 저라고 낮추며 예의를 갖추기도 했지만, 80년대 자신의 투쟁과 이상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선 단호하고 또렷한 결기가 느껴졌다. 지난 10일 저녁 서울 마포의 한 냉면집에서 배우 안내상씨가 드라마 <송곳>에 대해 이야기하며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송곳> 주인공 구고신의 말
싱크로율 100%로 살아난 드라마서
주연 구고신역 맡은 안내상
불의에 침묵하지 않는 이수인을
향한 그의 대사들은 압권이다 “구고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작가나 실제 모델 만나볼까 했다
그게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될까?
결국 모두 안 만나기로 했다
구고신에 빠져든 마음 놓치기 싫어” 나의 과거 출입금지! -예전에 웹툰으로도 봤는데 화면 앵글이나 구도까지 싱크로율이 원작과 거의 흡사하더라. “대사도 거의 똑같다. 8회까지는 원작이랑 다른 게 거의 없다. 극중 역할인 문소진(김가은) 부분이랑 마트 아줌마들 이야기가 첨가된 정도다. 연출자인 김석윤 감독이 원작을 충실히 살리고 싶어했다.” -드라마 찍기 전에 최규석 작가의 원작을 봤나? “드라마 찍기 전에 김 감독님이 ‘한번 읽어봐라’ 그래서 봤다. 난 이런 내용인지 몰랐다. ‘송곳’ 그러길래 뭐지? 원래 웹툰을 드라마 하는 거 별로 안 좋아했다. 판타지가 많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놓고 이러니까. 근데 웹툰을 봤는데 ‘이거 뭐야, 그래서 어떡하자는 거야?’ 눈이 휘둥그레졌어. 이런 만화가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웹툰에 푹 빠져들었다. 경이로운 웹툰이었다. 상당히 놀랐다. 이 작가가 누구지? 작가에 대해 너무 궁금하더라고. 이 정도 경지에 오르려면 보통의 경지가 아니란 생각도 들고. ‘이런 웹툰을 몰랐다니’ 아, 정말 반성 많이 했다.” -캐릭터 분석을 위해 작가나 구고신의 실제 인물로 거론되는 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등을 사전에 접촉했나? “구고신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작가나 실제 모델을 접촉해보고 싶기도 했다. 만나볼까? 그게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될까? 고민을 많이 했어. 난 이 웹툰 <송곳>을 읽고 구고신에게 빠져 있는데 혹여 ‘실제 인물을 만나서 비슷한 느낌을 받지 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것이 생겨버리는 거다. 구고신에게 빠져든 내 마음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고민 끝에 다 안 만났다. 원작과 감독만 믿고 가자, 그렇게 생각했다.” -구고신 역할로 처음부터 제안받았나? “그렇다. 제이티비시에서 2013년에 <시트콩 로얄빌라>를 함께한 김 감독이 구고신을 제안했다. 난 처음에는 비중있는 역할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읽어보니 주인공인 거야. 너무 부담스러우면서도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 부담과 함께 이건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 처음엔 의심했어. 이런 내용으로 드라마가 가능한가? 당시에는 확정된 거 아니었으니까. 나중에 감독이 찍기로 했다고 해서 그제야 안도했다.” -노동을 소재로 한 드라마로서는 처음인데. “어디까지 세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어디까지 표현을 해야 되지? 강한 메시지도 많고 센 장면도 많아서 세게 치고 흥분해서 연기하면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가자 싸우자!’ 이렇게 되면 안 될 거 같았다. 그래서 대사는 그대로 가더라도 연기는 유하게 바꿨다. 친근하고 편안하고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그 정도 선에서 연기했다. 선동자의 느낌을 주지 않으려 했다. 근데 배우 입장에서 그게 좋아. 막 소리 지르고 카리스마 있게 쫙 가면 앵글도 잘 잡히고 뭔가 그림이 탁 나오지만 그건 아닌 거 같았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사람으로서 만감이 교차할 거 같다. 예전 생각도 나고. “‘옛날 생각 많이 나겠다’는 그런 소리 많이 듣는데 전혀 안 난다.(웃음) 물론 나긴 나지만 할 때마다 죄스럽다. ‘아 이거였는데, 그때 내가 진짜 철이 없었구나. 난 그때 왜 그렇게 싸웠지?’ 그래서 사실은 숨기고 싶었다. 내가 ‘과거에 학생운동을 해서 이런 거를 한다’ 이런 식으로 드러내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한 이유다. 현장에서 할 말이야 많지. 누가 ‘노동가요 아는 거 있냐?’고 물으면 아는 거야 많은데 입도 벙긋 안 한다. 나의 과거가 여기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엄연히 다른 거다. 내가 경험했던 거랑 구고신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 나와 구고신을 연장선상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이 작품에 대한 죄다 죄. 그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난 완전히 실패했던 거고. 구고신은 열심히 이 시대를 승리하면서 살아가는 거다. 성공하는 삶이다. 내 이력과 결합되면 이해가 되겠다? 오우, 천만의 말씀이다. 물론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구고신, 우리 시대의 이상형 그는 자신의 이력과 드라마 <송곳>의 출연을 별개의 일이라고 했다. 그 이유는 그가 <송곳>을 통해 지난 시절을 아프게 되돌아봤기 때문이었다. 그는 <송곳>을 보면서 예전 자신이 너무 철이 없었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고 했다. 대학 졸업 뒤 노조를 조직하기 위해 공장에 위장취업을 했지만 노동자에 대한 이해보다 술과 여자만 밝히는 그들의 한심한 모습을 보고 절망한 것이나, 농사에 대한 자신도 없이 농민운동에 뛰어든 일 등이 아프게 다가왔다고 했다. “변소를 치우려면 자신의 손에 똥을 묻혀야 한다”는 구고신의 말이 자신에게 되돌아오고 노동자들과 하나가 되려 하기보다 고고한 싸움만 하려고 한 극중 이수인의 모습이 자신과 겹쳐진다고도 했다. -왜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그들이 되어보진 않고서 섞이지도 않으면서 당위성만 얘기하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설정을 하고 현장에 들어갔던 거야. 어쩌면 그렇게 낭만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는지. 그네(노동자)들은 그네들대로 다른 식으로 푸는 모습이었던 거지.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네들이 후진 게 아니라 그네들은 그런 삶을 살지 않으면 못 견디는 그 무엇이 있었던 거야. 그게 그 사람들의 낙이었고 즐거움이었던 거야.” -본인의 말처럼 이력을 떠나서라도 구고신이라는 인물은 안내상이 아니면 안 됐을 캐릭터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유머러스하고 까칠하면서도 인간적인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소화한 거 같다. “그러면 더할 나위 없겠다.(웃음) 사실 이 부분은 김 감독의 연출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첫 회에서 중국집 배달원의 체불 임금을 받으러 중국집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었다. 난 ‘여기 일하는 사람이 몇 명?’이라는 명령조로 대사를 쳤다. 그러니까 김 감독이 와서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들어와서 그렇게 까칠하게 몇 명이냐고 물으면 누가 대답을 해줄까’라고 하더라. 노동자들 대상으로 강의하는 장면에서도 ‘우린 인간 아니오. 인간이면 이렇게 할 수 없소. 당신들은 인간이 아니오’라고 흥분해서 대사를 하니까 ‘노조 처음 해서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한테 막 선동을 해버리면 사기’라며 조곤조곤 설명하는 톤으로 가자고 하더라. 순간 ‘아, 이렇게 가려고 하는구나’ 하고 감을 잡았다. 그때 김 감독에게 신뢰가 확 생겨버렸다. <송곳>에서 제일 좋은 것 가운데 하나는 김석윤 감독을 만난 거다.” -<송곳>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완전 기억에 남는 작품이 될 거다. 세트 분량 다 찍고 야외촬영 몇 번 남았는데 그래서 우울한 기분이 든다.(웃음) <송곳>은 상당히 퀄리티 있게 그 시대를 반성해가면서 지금의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문제제기를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작품을 하는 것이 상당히 보람찰 거다. 결론적으로 잘 살자는 얘기다. 사람 곁에 있어주자는 얘기고.” -구고신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떤 캐릭터인가? “솔직히 말하면 구고신은 이상형인 거 같아. 우리 시대를 산 사람들의 이상형. 다 갖고 있는 거야. 너무 힘든 시절을 살고 있고 아픈 경험을 했고 수많은 좌절을 이미 겪었는데도 포기를 하지 않잖아.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대부분 포기를 하는데 그 길을 꾸준히 인간성을 유지하면서 간다는 게 쉽지는 않으니까. 인간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으면서 길 가다 쓰러져 잠든 노숙자를 일으켜 세우면서까지 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구고신은 어찌 보면 꿈같은 사람이야. 어찌 보면 비현실적인 존재지. 그런 사람이 돼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고 죄스럽기까지 한.” 살벌했지만 가장 행복했던 80년대 -어찌 보면 구고신은 ‘민중이 변혁의 원동력’이라고 하는 이른바 ‘민중 메시아주의’로부터 벗어난 인물처럼 보인다.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것’이라고 말하는 구고신은 민중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버리지 못하는 기존의 운동권 캐릭터와 다른 것 같다. “그네들(운동권)이 민중을 낭만적으로 바라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독재정권의 폭압 속에서 신음하는 민중들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당위성이 너무 강한 나머지 그걸 지탱시키는 내적인 힘은 달렸던 것 같다. 그게 없으니까 뜨겁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냄비가 된 게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구고신은 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찌 보면 깨달은 사람 같다. 노동조합의 문제, 비정규직의 문제 이런 거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는 거지 이 사람은. 선각자의 느낌이 든다. 달라이 라마가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 결국 구고신이라는 인물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되고 무엇을 해야 되는지 말해주고 있는 거 같다. 내가 지금 어디에 발 딛고 있는지 가르쳐주는 인물이다.” -<송곳>은 노동을 소재로 한 전무후무한 드라마로 기록될 것 같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 드라마가 무노조 경영을 원칙으로 삼고 있는 삼성과 무관하지 않은 제이티비시에서 방영된다는 사실에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난 이런 선택을 한 제이티비시에 대해서 정말 박수쳐주고 싶다.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가. 예를 들면 종편에 한겨레가 들어왔다면 할 수 있는 작업을 제이티비시가 하는 거잖아. 그래서 감사하다. 사람들이 권리를 침해받는 현실에 대해서 방송이 좀 이바지해줘야 한다고 본다. 노조에는 무시무시한 세력이 있는 거 같고 노조 만들면 큰일이나 나는 거라고 생각을 하잖아. 이런 상황에서 자기가 처한 현실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 정도는 해볼 수 있는 계기를 <송곳>이 제공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송곳>에는 ‘뭉쳐서 싸웠는데 너무 힘들다. 심지어 안 하니만 못하다’ 이런 얘기까지 나온다. 다 보여준다. 그래서 아마 제이티비시에서 허락한 게 아닌가 싶다.(웃음) 아무튼 한국 드라마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느낌도 들고 그 가운데 내가 있다는 게 고마운 일이다.”
연세대 신학과 동기였던 배우 우현씨와 함께 찍은 사진. 1991년께 함께 간 여행에서. 안내상 제공
연세대 신학과 동기였던 배우 우현씨와 함께 찍은 사진. 우현씨의 졸업식(1999년)에서. 안내상 제공
나긴 나지만 할 때마다 죄스럽다
아 그때 내가 진짜 철없었구나
난 완전히 실패했던 삶인 거고
구고신은 승리하며 사는 거다” “신앙에, 마르크시즘에 미치고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학생운동
전국 다니며 결사대 조직해
광주 미문화원에 사제폭탄 설치
지금도 미국은 안 가고 싶어”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
‘송곳’이다, 하하하
대사·내용 너무 훌륭하지 않나
어떻게 살지 생각하게 했다
내 많은 것들이 바뀔 거다” 시시한 약자 위한 시시한 강자와의 싸움
배우 안내상 삶
지난 10일 국회에서 만난 안내상씨는 “예전 같이 운동하다 국회의원이 된 이들로부터 의원회관에 놀러 오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직접 온 건 처음”이라고 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