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 “노점 단속 당하던 아빠…약자 멸시하면 화 솟구쳐” 등록 : 2014.12.22 20:11 수정 : 2014.12.23 10:24
‘쌍용차 해고 노동자 고공 농성’ 응원한 이효리 제주 인터뷰 (상) “좌효리? 다 같이 사회에 관심을 갖자고 말하면 좌인가요?”
‘청순 글래머’는 한국 남성이 욕망하는 전형적인 여성상이다. 몸은 빵빵하고 얼굴은 예쁘되 남성을 압도하지 못하는 수동성을 지닌 여성.
그런 한국 사회에서 ‘당당하다’는 평을 호평으로 듣는 여성은 흔치 않다. 가수 이효리는 그런 흔치 않은 여성 중 하나다.
이효리는 섹시함과 당당함을 공유한 스타임에도 팬층의 지지는 젠더를 막론한다. 정치적 발언을 서슴지 않는 여성 역시 한국 사회에서 환대받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회적 약자가 그렇듯, 여성 역시 권리를 요구하는 주체로 나서는 순간 배척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가수 이효리에게는 정치적 발언마저 트렌드로 만드는 힘이 있다. 채식을 하고 동물권을 외치는 이효리의 행동은 채식의 철학과 동물 보호의 정치 위에
세련된 스타일을 입힌다. 심지어 직접 기른 작물을 먹고사는 귀농의 삶 위에도 트렌드를 칠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해고 노동자 문제다.
이효리는 70m 굴뚝에서 고공농성 중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김정욱 사무국장과 이창근 정책기획실장을 응원하며 “해고자들이 복직하면 비키니 입고 춤이라도
추겠다”는 글을 18일 트위터에 남겼다. 노동 문제는 한국에서 정치적 갈등이 첨예한 최전선이다. 그는 여전히 당당함이나 세련됨으로 호평받을 수 있을까?
우선 이효리의 말을 들어봐야 했다. 1년쯤 전 제주도에 이주한 뒤로는 처음 하는 일간지 인터뷰다. 한달음에 달려가 지난 19일 제주시 장전리 하루하나 카페에서
만난 이효리는 그러나, 당당함보다는 자신의 선택이 미칠 파급을 걱정하는 얼굴로 “그 트위트를 쓴 뒤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고 털어놨다. 이야기가 길어졌다.
- 제주도 생활은 어떤가요?
= 너무 만족하고 있어요. 진짜 사람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이전에는 제가 직접 하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제가 다 하게 되죠.
빨래라든지 집안 청소, 개들 미용까지 제가 하고요. 먹는 것까지 제가 키워서 먹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저라는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이게 사람 사는 맛이 아닌가 싶어요.
- 하루 일상이 어떠세요?
= 일어나자마자 요가를 하고, 아침 겸 점심을 준비해서 신랑(가수 이상순)과 먹어요. 개들 산책을 한 시간 시키고 난 뒤 신랑은 음악 작업을 하고 저는 그림을
그린다든지 자유 시간을 가지죠. 저녁 해먹고, 영화 한 편 보고 자요. 그림은 원래 좀 좋아했는데 바쁠 때는 그릴 틈도 생각도 없었어요. 제주도 와서
여유가 생기니까 그리게 됐죠. 자수도 조금씩 하고요. 작물은 가지나 호박, 오이, 무, 배추같이 쉽게 먹을 수 있고 키우기 어렵지 않은 것들 위주로 재배해요.
식료품을 살 때는 마트보다 5일장으로 많이 이용하고요. 이런 일상이에요.
- 유기농 재배는 2~3배의 노력이 필요하다고들 해요.
= 저희는 대량으로 생산하거나 판매의 목적이 아니니까요. 좀 못 생기거나 작거나 그래도 상관이 없으니까, 그렇게 힘든 건 없었어요.
저희는 유기농이라고 해도 농사일이라기보다 방치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씨 뿌려놓고 아무것도 안 한다고 봐도 되죠.
- 그래도 자라나요?
= 되더라고요. (좌중 폭소) 저는 너무 신기했어요. 키우는 게 되게 힘들 것 같은데, 의외로 그냥 물 좀 주고 그러면 정말 오이가 나오는 거에요.
‘자연이 너무나 신기하다’ 생각했죠.
- 최근 인증받지 않고 유기농 콩을 판매한 일이 논란이었어요.
= 한 달에 한 번 이 카페에서 직거래 장터를 열어요. 반짝반짝 착한 가게라고. 저는 이제까지 안 입는 옷이나 그런 것들을 팔았는데, 저희가 재배한 콩이 저희가 다
먹기엔 너무 많아서 처음으로 주민들에게 판매를 한 거에요. 유기농으로 키운 게 맞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들 하니 ‘유기농’이라고 써도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
생각했는데 그걸 누가 보고 민원을 넣어서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분들이 조사를 나오신다고 하더라고요. 심장이 막 두근두근했어요. 저는 살면서 형사 소송에
휘말린다거나 그런 일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제 생각에는 제가 혐의를 다 시인했으니 한 번 조사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저희 밭에서 일했던 인부들도 조사하고
토양을 퍼가서 조사하시더라고요. 제 생각에는 연예인이다 보니 그분들도 되게 부담스러워하시는 것 같아요. 큰 처벌이 내려질 것 같지는 않은데, 이번 일로
아무래도 제가 살기가 빡빡해졌다고 해야 하나요. 자기 검열이 좀 심해지고, 조심스러워졌어요.
- 민원 넣은 분이 일베 회원이라는 보도가 있었죠?
= 네, 무슨 ‘좌효리 빠이빠이’라고 쓰셨던데요. 저는 궁금해요. 왜 나는 좌효리라고 불릴까. 자기 생각을 밝히면서 다 같이 사회에 관심을 갖자고 말하고 돈보다 생명이
먼저라고 말하면 좌인가? 그럼 나는 좌가 맞는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죠. 정치색을 드러내기 위해 이런 동물 보호를 하고 하는 게 아닌데, 그런 면이 좀…억울했어요.
가수 이효리씨가 19일 오후 제주 애월읍 장전리 하루하나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분위기를 바꿔서 어린 시절 얘기를 좀 해보죠.
= 서울 사당동에 이수시장이라고, 아빠가 시장 골목에서 이발소를 했어요. 4남매 여섯 식구가 방이 하나 딸린 이발소에서 일도 하고 생활도 했죠.
방이 2평도 안 됐어요. 살기가 매우 버거웠죠. 아빠는 틈틈이 시장에서 과일 좌판을 했어요. 노점 단속을 나와서 과일 좌판을 막 엎어버리고 하는 모습이
어린 시절의 강력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이발소 건물 주인이 나가라고 하면서 아빠가 새벽 5시에 인력사무소에 나가는 모습도 봤고요.
중·고교 때까지 줄곧 어렵게 생활했어요. 대학 1학년 때 갑자기 연예인이 되면서 돈을 많이 벌게 된 거죠.”
- 막내라서 부모님이나 언니, 오빠에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건 아닌가요?
= 부모님이 함께 일을 하시니까 대화를 한다거나 케어를 해주신다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어렸을 때는 큰언니가 봐줬고, 조금 크면서부터는 모든 걸 제 스스로
해결했죠. 유치원도 못 갔어요. 친구들이 모두 유치원 가면 저는 혼자 돌아다니며 놀았죠. 막내라서 부모님에게 찡찡대며 애교를 부린다거나 했던 경험이 없었어요.
저희 식구들은 그저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 그런 환경이 효리씨의 지금에 영향을 어느 정도 끼쳤나요?
= 저는 돈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분이나 멸시당해 힘들어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면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불끈불끈 솟구쳐 오르고 막, 그런 마음이 있죠.
동물 보호를 시작한 것도 그래서였던 것 같아요. 제일 약한 것이 동물이니까요.
- 그런 환경에서 연예인의 삶을 선택한 이유는요?
= 어렸을 때는 그냥 ‘아 나는 돈을 많이 벌어서 정말 무시당하지 않고 살아야지’라는 쪽으로 시선이 더 갔죠. 완전히 올인했죠, 10~15년.
그러면 부유하지 못해서 힘들었던 것들이 모두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계속 마음속에 공허함이 생기고, 그다지 행복한 것 같지도 않고,
계속 불안했죠. 어느 순간 ‘아, 이건 아니구나’ 싶었고, 그때부터 저만의 시각이 생기기 시작한 것 같아요.
- 어린 시절부터 “쟤 섹시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뭇 소년들의 성적 판타지 대상이었는데요.
= 저는 그런 시선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저를 뭔가 우러러보는 것 같고. 어디 가도 더 대접받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불편해졌어요. 광고 같은 것을 찍으면
광고주들이 “가슴을 더 모아라”와 같은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죠. 그런 요구를 받으면 너무 상품 취급을 받는 느낌이 들어서 되게 기분이 안 좋았어요.
27~8살 때쯤이었죠. 그런데 더 나중에는 어차피 돈을 주고 나를 팔면서 뭔가 일말의 자존심이라도 지키려고 하는 모습 자체가 좀 모순같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광고를 하지 말아야겠다 했어요.
- 어느 순간 매트릭스를 탈출한 거군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계 때문에 여전히 견딜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탈출보다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 네. 그런데 어차피 개선의 여지가 없는 거니까요. 우리는 돈을 받고 광고주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시스템이니까….
- 효리씨는 자신의 정치적 변화에 대해 솔직하게 드러내요.
= 저는 그런데 사실 진보가 뭐고 보수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다만 편하게 강자 편에 서기보다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할 말을 하고 사는 것이 진보라고 한다면
좀 어렸을 때부터 그런 성향이 있었어요.
- 트렌드를 세팅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 제가 정혜신 박사님께 심리 테스트를 받아본 적이 있는데, 5감이 특별히 뛰어나다고 해요. 촉이 남달라서 그냥 해도 그게 곧 유행이 되고 그런 게 있을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예전에는 그랬어요. 그런데 동물 보호 등과 관련한 발언을 할 때는 생각보다 따라와 주지 않더라고요. 전에는 제가 뭘 하면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그래서 ‘아 이제 내가 이런 걸 하면 사람들이 이걸 많이 해주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이쪽 분야는 반응이 적더라고요. 그래서 ‘좀 더 인기가 있을 때 더 일찍
시작할 걸’(좌중 폭소) 했죠. 예전에 좀 더 일찍 이런 걸 알았다면, 사람들이 더 나를 좋아할 때 그때 내가 시야가 넓었다면 좋았을 텐데 싶어요.
- 사람들이 여전히 가수 이효리나 방송인 이효리를 보고 싶어해요.
= 앨범 작업은 계속 하고 있어요. 곡도 쓰고 가사도 쓰고 그래요. 그런데 최근 종영된 ‘매직아이’를 오랜만에 하면서 예전에는 못 느꼈던 것을 많이 느꼈어요.
‘공중파 예능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없다. 시청률이나 광고가 따라붙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 내가 진짜 궁금한 이야기를 물어볼 수도 없고,
내가 진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그러면서 공중파 예능에 대한 회의가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 그럼 가수 생활은 공연 위주로?
= 그렇게 꼭 한정 짓고 싶진 않지만 이 상태로 생활하다 보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웃음) 뭐 아이돌 위주로 돌아가는 TV 가요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이젠 사실
그렇고요. 지난번 활동 때도 그런 곳에 나가는 게 불편했어요. ‘1번 눌러주세요’라며 투표해달라고 호소하고 이러는 게 사실 음악과는 아무 의미와 연관성이 없는데,
방송에서 하라고 하면 해야 하니까요. 왜 해야 하지? 이러면서도 말이죠. ‘아 이젠 이런 데 못 나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수 이효리씨가 19일 오후 제주 애월읍 장전리 하루하나 카페에서 남편 이상순씨와 함께 대화를 하고 있다.
테이블 아래 반려견 석삼이가 있다.
- 효리씨는 동세대 여성들에게 당당함, 솔직함, 가식 없음,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 등의 평가를 받아요.
= 솔직한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요. 삶의 모토 자체가 ‘솔직하자’에요. 그런데 ‘자신을 사랑할 줄 안다’거나 ‘당당하다’ 이런 면에서는 사실과 다른 면이 많아요.
저도 어렸을 때 부모님 사랑을 크게 받지 못하고 자랐고, 칭찬보다는 많이 혼나면서 자랐기 때문에 계속 그런 사랑에 대한 갈구가 있어요.
사실 연예인에겐 그런 게 큰 원동력이긴 하거든요. 계속 사랑받고 싶기 때문에 노력을 하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그런데 제가 얼마 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블로그를 하고 사회 활동을 하는 것도 ‘내가 이렇게 괜찮은 사람이야. 자연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야. 사람을 아끼는 사람이라고’라며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생각이죠. 유기농 콩 사건도 그렇고, 이런 복잡한 일들을 만드는 것이 사실은 그렇게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계속해서 이렇게 남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어요. 진짜 나를 사랑한다면 모든 것을 그냥 내려놓고 나만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죠.
그런데 아직까지 그렇게 모든 걸 내려놓지는 못하겠어요.
- 어린 시절의 그 기억들을 결핍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어렸을 때는 정말 돈이 너무 없었어요. 학교에서 체육복을 사오라든지 실로폰을 가져오라든지 하면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어 창피했던 기억?
그런 것이 굉장히 너무 큰 기억으로 남아 있고요. 부모님이 아무래도 힘드니까 자주 싸웠죠. 아버지가 얼마 전에 얘기하시더라고요. 이발사가 예전에는 좀 멸시받는
직업이었대요. 자기는 일보다 멸시받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해요. 그러면서 저는 엄마와 몇 달 동안 따로 나와 살기도 했죠.
그런 기억들이 아무래도 결핍 같은 것을 남기지 않았을까요.
제주 / 이재훈 기자 nang@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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