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씨의 소설 <외딴방>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18년. 열일곱의 나, 되뇌어본다. 18년. 내가 태어나기 일 년 전에 그는 벌써 대통령이었나 보다. 그래서일 것이다. 나는 아직도 대통령 하면 박정희 대통령의 얼굴이 떠오른다. 언제나 대통령은 그였으므로….”
첫인상은 강렬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남깁니다. 시간이 무척 더디 흐르던 어린 시절에 우리에게 다가온 ‘처음’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채 마음에 남습니다. 저에게 우유는, 둥근 병에 종이마개로 밀봉된 서울우유였고, 빵은 삼립 빵이었고, 치즈는 얇게 썬 노란색 체다 치즈였습니다. 치즈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걸 알게 된 지금도 치즈 하면 낱개로 비닐에 싸인 체다 치즈가 생각납니다. 사람마다 이런저런 ‘처음’이 마음속에 있습니다. 첫 집, 첫 골목, 첫 구멍가게, 첫 짝꿍, 첫 대통령, 그리고 첫 대한민국.
저의 첫 대한민국은 참 못난 것이었습니다. 광폭한 연산군과 요사스런 장녹수의 나라, 당파싸움에 날 새는 줄 모르다가 망해버린 나라, 미국이 아니었다면 진작 빨갱이가 집어삼켰을 나라, 축구로는 ‘버마’의 발끝도 못 따라가고, 야구로는 일본의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나라. 일본 같은 성실함도, 독일 같은 기술도, 팔아먹을 기름도, 나무도, 아무것도 없는 나라. 그 와중에 불법과 뇌물이 횡행하는 나라. 가난과 고통이 그저 마땅한, 그런 나라가 저의 첫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우리가 썩어서 망했고, 우리가 무능해서 분단됐고, 우리가 못나서 가난하다고, 그렇게 배우고 자랐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닮을 때는
행동뿐 아니라 마음도 닮습니다
공격자를 동일시하게 되면
내 마음속에도 나 자신에 대한
미움과 적개심이 생기게 됩니다
폭력과 자기비하는 불가분 관계
보수냐 진보냐에 아무 관계없는
기이한 우리 사회의 폭력불감증
우린 지금 사이코패스 정신으로
충만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자기비하를 세뇌한 촌극
그렇게 가르친 것은, 저에게도 첫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대통령과 유신 정권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정부가 국민들에게 자기비하적인 생각을 세뇌하는 이 웃지 못할 촌극의 목적은 물론 독재 정권의 유지였습니다. 우선 그들은, 전쟁의 공포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불과 20여년 전에 전쟁을 겪은 나라였으니, 효과 만점이었습니다. 긴장을 조성하기 위해 그들은 한편으로는 북한의 위협을 과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군사력 열세를 강조했습니다. 스스로를 지키지도 못하는 나라. 그런 나라의 국민에게 자존심이 허락될 리 없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조선이 당파싸움 때문에 망했다는 왜곡된 역사관을 주입했습니다. 여기에는 매스컴도 한몫했습니다. 궁중에서 표독스러운 여인들이 벌이는 간악한 암투와 당파싸움, 그에 놀아나는 어리석고 괴팍한 왕들의 이야기가 텔레비전 사극의 주요 소재였습니다. 국론이 분열되면 나라가 망한다는 생각을 국민에게 주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가뜩이나 힘도 없는 나라가 국론마저 분열되면 북한이 바로 쳐들어올 것이니 찍소리 말고 정권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 그들의 메시지였습니다.
식민지배와 전쟁의 외상을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기는커녕, 군사 정권은 그 외상을 덧나게 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그 결과 저의 첫 대한민국은 형편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수십년, 우리나라는 빠른 속도로 변화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삼성을 일본 회사로 알고 있었고 서울을 아는 사람도 드물었습니다. 북한과 대치하는 매우 위험한 나라 정도로 우리나라를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고유의 언어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습니다. 사정은 달라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 15위의 경제 규모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타임스스퀘어에는 우리 기업의 광고가 걸리고 한류가 아시아를 휩쓸고 디지털 강국의 명성도 얻었습니다. 한글이 프린트된 티셔츠가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최소한 겉으로는 예전에 우리가 부러워하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세월호의 침몰로 다시 한번 밑바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는 했지만, 우리 사회의 성숙도가 군사독재 시절과 비교할 수준은 아닌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나라가 달라진 만큼 우리의 자기 인식도 나아졌을까요? 객관적인 통계가 있는 것이 아니니 그렇다 아니다, 답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인터넷의 발달 덕분에 거르지 않고 표현되는 의견을 들을 수 있어서인지, 제가 체감하기로는 자기비하가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줄어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일까요?
우선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습니다.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의 어린 시절을 조사해보면, 맞고 자란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맞고 자란 아이가 나중에 폭력적인 어른이 된다는 의미인데, 어찌 보면 보고 배운 게 있으니 당연할 것도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유 없이 부당하게 폭력을 당해서 그것이 분하고 억울하면, 그런 식으로 폭력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상식에 맞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입니다. 맞고 자란 아이가 폭력 부모가 되고 시집살이를 모질게 한 며느리가 지독한 시어머니가 됩니다. 부당한 일의 억울함을 알면 권력을 가지는 위치가 되었을 때 남을 존중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당한 대로 해대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이런 현상을 정신분석에서는 ‘공격자와의 동일시’(Identification with Aggressor)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동일시라는 용어는 복잡한 개념인데, 여기서는 어떤 사람을 닮는 것, 혹은 어떤 사람과 비슷하게 되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공격자를 동일시한다는 것은, 나를 공격하는 사람을 닮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의 공격성을 이어받아서, 내 자신도 공격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폭력을 당한 사람이 폭력적이 되는 이유이고 폭력이 대물림되는 이유입니다.
그게 전부라면 공격자와의 동일시라는 개념은 별로 중요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냥, 본 대로 따라하는 것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의 설명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 개념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사람을 닮을 때, 행동만 닮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닮는다는 점입니다. 동일시는 마음에 대해서도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것이 행동에 대한 동일시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자기비하의 대물림을 아시나요
나를 공격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당연히 나에 대한 미움과 적개심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공격자를 동일시한다는 것은 내 마음속에도 나 자신에 대한 미움과 적개심이 생기게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되면 폭력을 당한 사람은 부정적인 자기상을 가지게 되고, 스스로를 비하하게 됩니다.
아동기에 학대를 당한다면, 아이는 자신이 나쁘기 때문에 또는 뭔가 잘못했기 때문에 부모가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판단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폭력(특히 성폭력)에 노출된 어른들에게서도 같은 현상이 관찰됩니다. 객관적으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음에도, 멀쩡한 판단력을 가진 어른들마저도 폭력을 당한 후에 부정적인 자기상을 가지게 됩니다. 잘못한 것이 없는 피해자가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 상식적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지만 동일시의 개념에 의해 이해가 됩니다.(이 현상은 학대 피해자들이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공격자와의 동일시가 폭력과 자기비하 둘 다를 유발한다는 것은 폭력이 대물림될 때 자기비하도 대물림된다는 의미입니다. 폭력의 피해자는 스스로를 비하합니다. 이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폭력을 가하면, 그 사람도 자신을 비하합니다. 이 과정이 세대 간에 일어나면 폭력과 자기비하가 대물림됩니다.
물리적인 폭력만 폭력이 아닙니다. 언어적, 정신적으로도 얼마든지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의 첫 대한민국은 국가가 국민에게 가한 정신적 폭력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네 부모는 형편없는 인간들이다”라는 말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어린아이가 “내 부모는 그럴지 몰라도 나는 훌륭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네가 태어난 나라는 형편없는 나라다”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듣고 자란 아이가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그들이 40, 50대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이 나라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물론 독재정권의 폭력은 정신적인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투옥되고 고문당하고, 살해되었습니다. 공포와 폭력은 독재 시절의 일상이었습니다. “느 아부지 모하시노?”라는 대사를 유행시킨 <친구>나 <말죽거리 잔혹사> 같은 영화들이 잘 그려냈듯이, 일제 강점기의 유산인 검은 교복을 입는 순간부터 이 사회의 아이들은 무자비한 폭력에 노출되었습니다. 선생이 학생을 때리고 학생이 학생을 때렸습니다. 그렇게 6년을 보내고 나면 아이들 자신이 폭력적이 됩니다. 싸움 한번 하지 않고 자랐을 것 같은 명문대의 모범생들까지 오리엔테이션 운운하며 후배들에게 폭력을 가했습니다.
이 폭력 문화의 정점에 군대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남자의 절대다수가 경험하는 군대, 그곳에서 새파란 젊은이들이 군복에 달린 작대기 숫자에 따라 폭력을 가하는 입장과 당하는 입장으로 극명하게 나뉘었습니다. 신체의 자유를 국가에 저당잡힌 채 젊은이들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고 부당한 폭력을 한동안 묵묵히 견뎌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상대에게 국가가 허락한 폭력을 마음껏 가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양쪽의 입장을 넘나드는 이 ‘롤 플레이’에서 이 젊은이들이 무엇을 배웠겠습니까? 남을 괴롭히는 즐거움 같은 것은 차라리 이차적인 문제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계급이 위면 그래도 된다는 생각, 힘만 있으면 얼마든지 내 목적을 위해 남을 ‘사용’해도 된다는 반사회적 발상을 몸에 익히는 것이었습니다.
참고, 참고, 참고, 참고, 참고, 참고…
군대 문화, 계급 문화, 폭력 문화는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했습니다. 부모의 매는 사랑의 매라서 참아야 하고, 선생의 매는 훈육의 매라서 참아야 하고, 직장에서의 언어폭력, 성희롱은 먹고살기가 원래 그렇게 힘든 것이니 참아야 한다고 우리는 배웠고, 견뎠고, 견디고 나서는 별생각 없이 아랫사람들을 그렇게 대했습니다. 그게 세상이라면서.
하지만 폭력을 당할 때도, 가할 때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 또한 늘 우리 마음속에 있었습니다. 무력하게 당할 때, 체득한 대로 폭력을 가할 때, 자괴감이 들지 않았을 리 없습니다. 폭력과 자기비하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40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달라졌습니까? 우리 사회가 폭력으로부터,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자기비하로부터 자유롭습니까? 저의 눈에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엄청나게 폭력적입니다. 쥐꼬리만한 것이라도 권력만 주어지면 남을 괴롭히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이 널렸고,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대상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들이 아버지이고, 직장 상사이고, 시어머니이고, 선생인 이 사회 안에서 우리의 인권이, 생명이 짓밟히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존감도 짓밟히고 있습니다.
정말 무서운 것은 폭력이 폭력인 줄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안전 불감증이라는 말이 유행이지만, 우리 사회는 안전에만 둔감한 것이 아닙니다. 폭력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기이하리만큼 관용적입니다. 군대 시절 이야기는 즐거운 무용담이고, 학교폭력도 다 그러면서 크는 거라고 치부합니다. 폭력의 체계에 순응하고, 폭력을 이용할 줄 알게 되는 것을 ‘철이 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폭력 불감증은 정치적인 성향과도 무관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보수든 진보든, 폭력에 관대한 것은 똑같습니다. 한마디로, 폭력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입니다.
힘이 있으면 남을 괴롭혀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일컫는 정신분석 용어가 있습니다. 다름 아닌… ‘사이코패스’(Psychopath)입니다. 살인을 해야 사이코패스가 아닙니다. 사람을 대상으로 이용하는 것이 사이코패스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지금, 사이코패스 정신으로 충만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