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6.05 17:20 수정 : 2014.06.0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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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 고씨가 <한겨레>에 보내온 사진. 고승덕 후보에게 '물려받은 보조개'를 보여주기 위해 단체 사진 중 일부를 잘라냈다고 말했다. |
영상과 함께 ‘소설가와 거짓말쟁이는 한 끗 차이’ 글 써
“당분간 자장면과 한식을 못 먹을 것 같다는 생각에…”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조희연 후보 ‘당선 유력’ 뉴스가 뜰 무렵인 5일 0시, 고승덕 후보의 딸 캔디 고(27)씨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 후’라는 제목과 함께 올라온 글은 세 개의 번호가 매겨져 있다. 1번은 ‘Fiction writers are akin to professional liars. (소설가와 전문 거짓말쟁이는 한 끗 차이다.)’는 문장이었고, 2번은 고씨의 어머니이자 고 후보의 전 부인인 예술인 박유아씨가 2012년 서울에서 공연한 ‘르상티망-효’라는 제목의 행위예술 동영상(http://vimeo.com/51008475)이었다. 3번은 하트 표시였다.
<한겨레>는 고씨가 지난달 31일 파문을 일으킨 페이스북 편지를 공개한 직후인 1일 새벽 첫 단독 인터뷰 이후에도 계속 고씨와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고씨는 고 후보가 1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여러 가지 의혹을 제기한 뒤 이를 정면 반박하는 인터뷰를 <한겨레>와 한 뒤에는 “대응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추가 반박이나 해명 인터뷰를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씨는 계속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다. 이메일은 간략한 한 마디를 담은 것까지 모두 13번 보내왔다. 지방선거 당일인 4일 오후 3시께 보내온 이메일에는 “(언론이) 계속 같은 사진만 쓰면 지루하니 사진 한 장을 더 보내드린다”며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한겨레>에 보내왔다. 그러면서 “웃을 때는 고 후보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재미로 단체 사진에서 잘라낸 웃는 사진 보냅니다. 보조개를 한쪽만 물려받았죠”라고 썼다. 고씨에게 아버지 고 후보는 유전적 대물림이 생김새로 각인된 부정할 수 없는 존재 그 자체였다.
하지만 고씨가 5일 0시께 페이스북에 올린 ‘르상티망-효’ 행위예술 동영상에는 이 부정할 수 없는 존재와의 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고씨의 또 다른 의지가 담겨 있다. ‘르상티망’은 원한, 복수심 등을 의미하는 단어로, 철학자 니체에 의해 주인의 도덕을 행하는 강자에 대한 약자의 감정을 뜻하는 개념으로 사용됐다. 이를 ‘효’라는 동양적 개념과 병렬적으로 나열한 행위예술 동영상은 제목에서부터 고씨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한겨레>는 고씨가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뒤 세 가지 번호에 담은 고씨의 뜻을 해석하는 내용을 담은 이메일을 보냈다. 질문은 모두 4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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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디 고씨가 5일 자정께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그 후' |
1. ‘Fiction writers are akin to professional liars. (소설가와 전문 거짓말쟁이는 한 끗 차이다.)’라고 쓰셨다. 이 문장을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면, 고승덕 후보가 선거 막판에 했던 많은 이야기들과 “딸아 미안하다”고 말했던 연설 등이 모두 거짓에 기반해 있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될지요?
2. 2번에 올린 박유아씨 행위예술 영상의 제목은 ‘르상티망-효’입니다. 니체가 말한 ‘르상티망’ 개념과 동양의 ‘효’의 개념을 병렬한 이 제목이 달린 동영상을 올린 것은, ‘효’라는 개념의 허구적인 도덕성, 즉 ‘진정한 나 자신’이 아니라 외부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작동하는 ‘노예도덕적’ 주체를 만드는 ‘효’라는 도덕 구조를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도 될지요? 이 동영상의 의미는 가식적이고 형식적인 부녀 관계 구조를 유지해온 아버지에 대한 간접적 비판이라고 이해해도 될지요?
3. (동영상을 올린 것에) 캔디 고님의 페이스북 편지에 대해 “패륜”이라고 지적했던 문용린 후보 쪽에 대한 비판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지요? 그것이 맞다면 고 후보가 주장한 ‘문용린 후보와의 담합설’에 대한 냉소적 반응이라고 이해해도 될지요?
4. 3번 하트 표시는 지금까지 페이스북 등을 통해 따뜻하게 격려를 보내준 사람들에 대한 것이라고 보면 될지요?
고씨는 이 질문에 대해 즉각 “부정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답해왔다. 이번 선거를 통해 “말했어야 할 것을 말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을 덜어버리게 된” 고씨가 이젠 생물학적 부녀 관계라는 ‘노예적 원한(르상티망)’을 깨고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한 것 아닐까.
문화비평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이에 대해 흥미로운 해석을 내어놨다. 이 교수는 “어머니 박유아씨의 퍼포먼스는 가족주의를 비판하고 있고, 캔디 고씨가 이 동영상을 페이스북에 게재한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한 지점이 있다”며 “고승덕 후보의 주장을 모두 수용하더라도 박씨가 미국에서 자녀를 키우려고 했던 이유가 드러나는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정치적 욕망이 강한 고 후보는 박유아씨의 아버지인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후광을 계속 활용하려고 했을 것인 반면 박씨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후광에서 탈출하려고 했을 것”이라며 “박씨에게 가족주의와 고 후보의 욕망 두 가지 모두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은 미국행이었을 것이고, 딸 캔디 씨는 그런 엄마의 선택을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박씨의 선택은 한국 사회에서 어떤 보편성을 가진 문제”라며 “기러기 아빠를 비롯한 한국 사회의 숱한 중간계급이 자식을 외국에 보내려는 이유에는 이기적인 욕망도 있겠지만, 구조의 변화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측면도 있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고씨는 이어 “저는 영상으로 답을 했다. 그리고 저는 당분간 자장면과 한식을 못 먹을 것 같다는 생각에 더 먹으러 가고 싶다”라고 쓰기도 했다. 당분간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할 것 같다는 얘기를 에둘러 말한 것이다.
고씨는 5일 오후 3시께 마지막으로 <한겨레>에 보내온 이메일에서 ‘캔디’라는 자신의 영어 이름의 유래를 설명하기도 했다. ‘어머니(박유아씨)가 어릴 적에 이것을 보고 제 이름을 지었다’며 함께 보내온 인터넷 주소는 만화 ‘캔디 캔디(한국 상영 제목 ’들장미소녀 캔디‘)’의 위키피디아 주소(http://ko.m.wikipedia.org/wiki/캔디_캔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