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윤 수의사 |
[토요판/생명] 박정윤의 P메디컬센터
다리가 부러진 지 한참 된 몰티즈를 데리고 낯선 손님이 들어왔다. 장애가 있는 그 남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아 보였다.그는 나에게 봉투를 대뜸 내밀며 이름이 ‘이쁜이’인 몰티즈를 수술시켜달라고 했다. 자신의 집세를 제외한 40만원 전부를 가져왔다고 했다.
자신이 키우던 아이가 입양 가서 다리를 다친 건데, 거기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지내는 걸 보고 데리고 왔단다.
기초생활수급자인 자신보다 좀더 나은 데로 가서 잘 지내리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미안해 다시 데려왔다고.
그리고 그는 이 돈으로나마 먼저 수술을 시켜줄 수 없냐고 하셨다. 나머지는 매달 나눠 주겠노라고. 그 돈을 차마 다 받을 수 없었다.
며칠 전 응급으로 내원한 고양이 ‘밍밍이’의 상태는 심각했다. 몇 달 전 같은 질병으로 입원치료를 받았지만 퇴원 뒤 지속적인 치료가 이뤄지지 않았다.
보호자는 남편이 병원비 많이 나온다고 입원을 반대한대서, 그땐 입원비를 깎아주고 치료를 받게 했다. 대신 퇴원하고도 꼭 지속적인 치료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다시 돌아온 밍밍이를 진찰했다. 요도가 막혀 소변을 못 본 지 꽤 오래됐는지, 생식기의 입구가 변성되어 아예 막혀버렸다.
혈액검사 결과 밍밍이는 급성신부전 상태로 나타났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겨우 카테터(삽입관)를 장착해서 소변을 보기 시작한 밍밍이를 가족들이 또 데려가겠다고 했다.
길고양이였던 밍밍이를 집에 들여 키우는 건데, 매번 이렇게 돈 들여 병치레를 하는 건 이젠 봐줄 수가 없다고 했다.
밍밍이 상태의 심각성을 설명하고 지금 카테터를 빼면 다시 요도가 막히고 소변을 못 보다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중 우리에게 던진 보호자의 한마디.
“죽어주면 고맙지요.” 그리고 그는 다른 집 고양이들은 밥만 줘도 잘 지내던데 자기 애만 이런 병에 걸렸다며 다음에 재발하면 안락사를 시킬 거라고 했다.
아픈 아이들의 치료비를 부담하는 보호자들의 마음은 분명 무겁다. 수의사의 딜레마이기도 한 병원비 문제는 보호자에게도 수의사에게도 늘 고민되는 부분이니까.
그래서 쉽게 받는 돈이 아님을 항상 생각하면서, 서로의 입장을 조금씩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다. 대부분 수의사들이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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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달궈진 트럭 짐칸에 개를 방치하는 건 학대일까, 아닐까.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동물 학대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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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밍밍이네를 보며 많은 고민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번처럼 입원을 공짜로 시키고 넘어가면 되나. 그럼 그다음에 재발하면?
처음에는 병원비 때문이라서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병원비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동물의 5대 자유’가 있다. 배고픔과 갈증으로부터의 자유,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고통·상처·질병으로부터의 자유,
공포와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 등이다.
밍밍이가 이상한 게 아니다. 모든 동물들은 아플 수 있다. 당신이 도와줬다고 해서 당신의 동물이 병에 걸리지 말아야 할 의무도, 능력도 없다.
밍밍이의 가족은 이해의 ‘마지노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동물보호단체와 상의했고, 가족들을 동물단체 간사와 만나게 해서 밍밍이를 포기하게 설득할 계획을 세웠다.
회복된 밍밍이를 퇴원시키며 가족들에게 다음날 아침에 검사를 무료로 해줄 테니 꼭 다시 데려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밍밍이네는 오지 않았다.
오늘도 전화를 다시 걸어본다. 당신들은 밍밍이 키울 자격 없습니다. 포기시킬 겁니다.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