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출발했던 싱어송라이터
지난 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공연할 때 레너드 코언의 모습. AP 연합뉴스
코언의 아들인 아담은 10일 “아버지가 로스엔젤레스 집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고 <에이피> (AP) 통신은 전했다. 중저음의 음색과 문학적인 가사로 ‘음유 시인’으로 불린 코언은 음악가이기 이전에 시인이었다. 코언은 “시만 써서는 생활이 안되기 때문에 음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1934년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코언은 맥길대학 재학 시절인 1956년 <신화와 비교해보자>((Let Us Compare Mythologies)라는 시집을 펴낼 만큼 문학적 재능이 있었다. 1960년대 문인과 예술가들이 많이 오는 곳으로 유명한 그리스 이드라섬에 머물며 시집을 펴냈으며, 제임스 조이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잇는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은 <아름다운 패자들>(Beautiful Losers)를 1966년 펴냈다.
코언은 10대 시절 컨트리 뮤직 밴드에서 활동할만큼 음악적 재능도 있었으나 가수 활동은 33살이던 데뷔 앨범 ‘레너드 코언의 노래들’(Songs of Leonard Cohen)을 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밥 딜런, 존 바에즈. 조니 미첼 같은 가수들과 같은 무대에 섰는데, 코언은 “나는 나보다 최소한 10살은 어린 사람들과 무대에 섰다”고 말할만큼 동료들보다는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사랑과 종교, 우울, 자살, 정치 같은 주제로 2000곡이 넘는 노래의 가사를 썼으며 섬세한 가사 때문에 노벨문학상 수상자 후보로 오랫동안 거론됐다. 2000년대 중반 캐나다에서는 코언에게 노벨문학상을 받게 하자는 캠페인도 있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은 올해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코언의 노래들이 “깊고 신뢰감이 있고 다면적”이라며 “놀랍게도 멜로디가 풍부하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레너드(의 노래)에 대해 이야기할 때 멜로디를 빼놓고 이야기하는데, 내가 보기에 레너드 노래는 가사뿐만 아니라 멜로디에 엄청난 천재성이 있다”고 말했다. 코언은 한국에서도 ‘할레루야‘(Hallelujah), ‘버드 온 더 와이어’(Bird on The Wire), ‘수잔’(Suzanne) 같은 노래로도 유명하다.
불교에도 심취한 코언은 자신을 유대인이자 불자라고 말해왔다. 코언은 ‘비관주의자아니냐?’ 질문에 “나는 비관주의자는 아니다. 비관주의자는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인데 나는 피부속까지 비에 젖은 사람이다”고 말했다. 코언은 자식은 있었으나 결혼은 하지 않았다.
코언은 그리스 이드라섬에서 만난 여자친구 노르웨이 출신 마리안느 일렌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은 올해 7월 일렌에게 편지를 썼다. “마리안는. 우리가 나이가 들고 육신이 서로 떨어질 시기가 왔어. 내가 곧 당신을 따라갈 거라고 생각해”라고 썼다. 편지를 쓴 며칠 뒤 마리안느는 숨을 거뒀고, 이번엔 코언이 그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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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769952.html?_fr=mt3#csidxd961ba86dd49e6895932772a4c232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