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를 함께 본 뉴욕 남자와 부탄 개

한겨레 | 입력 2016.01.21. 14:36 | 수정 2016.01.21. 16:36

[한겨레][매거진 esc] 김소민의 부탄살이

이 팀푸 개는 곧 뉴욕 개가 될 팔자다. 족보 그런 거 없다. 빳빳한 털은 윤기가 없다. 지푸라기 색깔에 검댕처럼 검정 털이 섞였다. 살집이 있었다면 한국에선 잡아먹혔을 관상이다. 말랐고 엉덩이 바로 위에 쇠사슬로 꽉 묶었다 푼 것 같은 상처가 있다. 그 상처 자국엔 털도 자라지 않는다. 두살인데 눈은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처럼 짠할 때가 있다. 다시 말해 팀푸에 사는 5000여마리 길거리 개들과 다를 게 하나 없다. 그런데 니컬러스 대니얼(30)에게 이 개는 ‘레이디’다.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부탄에 1년 살다 오는 2월 뉴욕으로 돌아가는 그는 이 마른 대걸레 같은 개를 데려간다.

왼쪽부터 레이디, 니컬러스 대니얼. 사진 김소민 제공
왼쪽부터 레이디, 니컬러스 대니얼. 사진 김소민 제공

사람 여행보다 더 복잡하다. 서류가 한 뭉치다. “이건 예방접종기록, 이건 나와 레이디 사진이 붙어 있는 말하자면 개 여권. 레이디를 잃어버릴 경우를 대비해서 목 안쪽에 칩을 집어넣었어. 스캔하면 정보가 뜨지. 이건 비행기 화물칸에서 레이디가 잠잘 상자. 벌써 여기서 자는 연습을 시키고 있지. 그래도 걱정이 돼. 15시간 날아가야 하는데 무서워할까봐.” 어찌 됐건 레이디를 떼놓고 갈 수는 없었다. 그건 다리 한짝만 팀푸에 떼두고 갈 수 없는 것처럼 자명했다. 레이디는 니컬러스가 안 보이면 앓는 소리를 낸다.

넉달 전께 니컬러스가 사는 연립 마당에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허리를 낚아채는 덫에 걸렸다 도망친 탓에 엉덩이 위쪽이 완전히 쪼그라들었고 가죽이 찢어져 피가 새나왔다. 개는 사람이 근처만 가도 그르렁거렸다. 먹을 것만 줬다. 사흘째 되니 니컬러스가 만져도 가만히 있었다. 병원에 데려갔다. “그때까지는 그냥 ‘개’라고 불렀어. 알고 보니 암컷이더라. 그래서 ‘레이디 개’가 된 거야. 잘 어울리지.” 퇴원한 ‘레이디’는 니컬러스만 쫓아다녔다. “어느날 집에 돌아왔는데 레이디가 날 보고 마당 저 끝에서부터 달려오는 거야. 그런데 그 얼굴이 진짜 행복해 보이는 거야.” 그때부터 레이디는 니컬러스의 개가 됐고, 니컬러스는 레이디의 인간이 됐다.

아침이면 걸어서 한시간 정도 걸리는 기도탑 초르텐까지 산책 간다. 니컬러스가 앞서기도 하고 레이디가 끌고 가기도 한다. 양지바른 곳을 발견하면 개는 배를 깔고 두 발을 앞으로 뻗어 턱을 얹고 존다. 그 옆에 니컬러스가 앉아 둘이 햇볕을 쬔다. 매일 쏴대는 햇살이지만 매일 똑같은 그 햇살은 아니다. 그 시간들이 쌓여 둘은 서로에게 대체불가능한 존재가 됐다. “레이디가 얼마나 의리 있는지 몰라. 그런데 독립적이기도 하다니까. 내가 하는 말을 잘 따르는데, 단 자기가 따르고 싶을 때만 그래. 왜 레이디가 특별하냐 묻는데 사실 나도 몰라. 운명이야.”

신호등도 없는 팀푸가 고향인 레이디는 뉴욕에서 행복할까? 니컬러스는 일부러 사람 많은 데로 데려간다. 목줄을 달고 다니는 법도 배웠고, ‘앉아’라는 말도 알아듣는다. “레이디가 좋아하는 것들, 길거리 개 시절 습관이 남아 쓰레기 뒤지기를 즐겨. 그리고 비둘기 쫓는 걸 아주 좋아해. 다행이야. 뉴욕에는 비둘기 많거든. 우리 집 옆에 개 공원도 있어. 잘 적응할 거야.”

레이디가 이번에 고향을 떠나면 아마 다시는 못 돌아올 거다. 그래서 둘이 구석구석 다닌다. “부탄 개 중에 레이디만큼 부탄을 많이 본 개도 없을걸. 여기서 13시간 걸리는 몽가르에도 데려갔지. 또 해발 4000m 호수에도 올라갔어. 얼마나 산을 잘 타는지 몰라.” 그 스태미나 넘친다는 개는 인터뷰 내내 배를 깔고 누웠는데 눈을 감은 건지 뜬 건지 모르겠다.

부탄에 온 첫날, 니컬러스는 오후 4시 반이면 문을 닫는 국제공항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5년 동안 앨버트 메이절스 감독과 뉴욕에서 다큐멘터리 작업을 했던 니컬러스는 ‘국경 없는 필름메이커’란 단체의 자원봉사자로 부탄 청소년들한테 영상제작법을 가르치러 왔다. 가방 안에 아이들이 쓸 장비가 잔뜩 들어 있어 세관을 마지막으로 통과했다. 그가 나가고 공항 불이 꺼졌다.

복장 터져 짐 싸고 싶은 적도 많았단다. “사람들 정말 친절하지. 인정해. 그런데 같이 일하면 환장할 때가 있어. 관공서나 어디나 일 보려면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해야 돼. 10시 전엔 사람이 없고, 점심 먹고 나면 사람들이 사라지잖아. 부탄에서 중요한 건 가족, 종교지. 푸자(굿) 하자고 하면 제시간에 오지만 일로 만나자면 세월아 네월아.”

그래도 그때, 레이디와 함께 해발 4000m에서 히말라야 설산을 봤을 때 “짐 안 싸길 잘했다” 생각했단다. “<내셔널 지오그래픽>경험이었어.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나오는 그림을 나는 피부로 봤단 말이지.”

레이디랑 둘이 사진 찍자고 했더니 니컬러스가 손에 물을 축여 애 씻기듯 레이디 얼굴을 닦았다. 미국에 돌아가면 같이 여행할 생각이다. “부탄에서 1년 보냈다고 삶에 대한 태도가 바뀌진 않았지. 인생은 항상 모험 같은 거라 생각했으니까. 다만 레이디가 나를 발견해줬어. 같이 해변에 갈 거야.” 가장 바쁜 도시에서 태어난 인간과 가장 느린 도시에서 태어난 개가 무슨 인연으로 엮였는지 누가 알까만은 돼지털 개 레이디와 보통의 인간 니컬러스는 히말라야를 봤고 태평양을 함께 볼 거다.

김소민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