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벗은 남수단 어린이들에게 ‘물고기 잡는 그물’ 선물
'남수단에 마을학교 100개 짓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잇는 살레시오회 원선오 신부
▲ 남수단에서 마을학교 100개 짓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원선오 신부는
은퇴 시점을 ‘죽는 순간’으로 잡는 영원한 선교사다.
▲ 원선오 신부(맨 왼쪽)와 관계자들이 학교 건설 현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원선오 신부가 세운 마을학교에서 공부하는 남수단 어린이들. 사진제공=살레시오회 원선오 신부.
신자라면 한 번은 꼭 접했을 이름이다. 귀에 익숙한 가톨릭성가 ‘주여 영광과 찬미를’ (417번) ‘천 년도 당신 눈에는’ (423번) ‘주님의 집에 가자 할 때’ (426번)
‘우리와 함께 주여’ (504번) 등 10여 곡의 작곡자다. 당연히 한국인 음악가인 줄 알았다. 지금도 그렇게 알고 있는 신자가 많을 것이다. 그런데 아니다.
이탈리아 출신 살레시오회 사제다. 본래 이름은 빈첸시오 도나티. 1928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87세다.
1962년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돼 살레시오회가 운영하는 광주 살레시오고등학교 성무감(교목)으로 20여 년 사목한 그는 더 가난한 이들을 찾아 1981년 아프리카로
훌쩍 떠났다. 천부적이라고 할 만큼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살려 지은 성가들을 한국교회를 위한 선물로 남긴 채….
아프리카 수단 엘로베이드에서 다르푸르 난민촌 아이들을 위한 돈보스코 기술학교를 운영하면서 ‘남수단에 마을학교 100개 짓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원 신부를
9월 25일 서울 신길동 살레시오회 한국관구에서 만났다. 100개 짓기 프로젝트를 알리고, 도움을 준 은인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는 것이 이번 방한의 목적.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된 탓에 우리 말이 다소 서툴러 서정관 수사가 많이 통역해줬다. 현지에서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는 공 고미노 수사가 합석했다.
“지금까지 마을학교 33개를 지었고, 현재 18개가 완공 단계입니다. 조만간 100개를 다 지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신자들의 지원이 건축비의 80%를 차지할 만큼
절대적입니다. 고마울 따름입니다.”
학교라고 해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큰 건물이 아니다. 가로 10m, 세로 7m 크기의 교실 네 칸 반짜리 블록 건물 하나다.
건축비는 학교 1개당 70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 원까지 든다. 생각보다 비싼 것 같다. 공 수사는 “모든 건축 기자재를 수입해야 하고 건축 기술자 또한 외부에서
데려와야 하는 상황이어서 한국에서 짓는 것보다 2∼3배 더 큰 비용이 든다”고 설명했다. 학교를 짓는 것은 현지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낳기도 한다. 원 신부가 학교 짓기에 매달리는 것은 거대한 대륙 아프리카가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농업과 함께 교육이라는 판단에서다.
농업이 당장 먹고 살기 필요한 것이라면, 교육은 장기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거의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원 신부는 “최근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한국이나 중국, 인도 등을 보면 그 밑바탕에는 교육이 있다”면서 배움의 기회나 농사지을 땅을 갖지 못하는 아프리카
주민들의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아프리카가 먼 과거에는 노예로 착취당했다면 지금은 경제적으로 착취당하고 있습니다. 선진국은 비싸게 파는 제품의 재료를
아프리카에서 헐값에 사 갑니다. 농사지을 땅도 선진국에 넘어가고, 정작 아프리카 주민은 일꾼으로 전락했습니다.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습니다.”
아프리카 주민들의 처지를 설명하는 원 신부의 눈과 목소리에는 안타까움과 함께 애틋한 사랑이 진하게 묻어났다.
원 신부가 성무감으로 재직했던 살레시오고등학교 졸업생들은 그를 살아 있는 성자로 기억한다.
당시 원 신부는 아침 미사가 끝나기가 무섭게 학교 정문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등교하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넸다.
학기 초 학생 사진과 대조해가면서 부지런히 이름을 외운 덕분이다. 신부가 정문에서 자신의 이름을 일일이 기억하고 불러주는데 감격하지 않을 학생이 있을까.
또 아이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생기발랄한 성가를 작곡하고, 작곡한 노래를 직접 아코디언으로 연주하면서 가르쳐주는 원 신부에게 감명받지 않은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도둑이 들어도 가져갈 만한 물건 하나 없이 청빈했고, 가난해서 점심을 거르는 학생을 몰래 데려다가 밥을 먹인 이도 원 신부다.
원 신부는 한국에서 닦은 기반을 바탕으로 노후를 여유 있게 보낼 수 있음에도 홀연 아프리카로 떠났다. 한국은 살 만해졌고, 비참한 아프리카 사람들이 자꾸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한국을 생각하면 함께했던 학생들이 떠오릅니다. 그러면서 더 생각나는 것은 바로 불쌍한 아프리카 아이들입니다. 그 아이들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고민한 끝에
시작한 것이 학교 100개 짓기였습니다” 원 신부는 “가족 중에 누가 아프면 나머지 가족은 아픈 그 한 명을 돌보는 데 정성을 다하는 것처럼, 인류라는 대가족은 아픈
가족인 아프리카를 돕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면서 헐벗은 아프리카를 돕는 것은 다른 대륙에 사는 모든 이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원 신부의 꿈은 학교 100개 짓기가 마무리되는 대로 농업학교를 짓는 것이다. 남수단의 한 주교에게서 농업학교를 지을 땅을 기증받기로 이야기가 끝난 상태다.
현재 브라질의 한 회사와 농업학교 운영에 관해 논의 중이다. 100만 달러(10억 원)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 신부는 “앞으로는 그 돈을 마련하는 것이 일”
이라고 말했다.
원 신부는 은퇴할 나이가 한참 지났다. 건강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두 팔을 들어 힘을 주면서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웃었다. 건강하다는 뜻일 게다.
내친김에 은퇴는 언제 할 거냐고 묻자 “죽는 순간”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느님과 꿈이 있기에 건강하게 오래 살고 있단다. 인터뷰를 마치고 떠나는 기자에게
“아프리카 주민들을 위해 기도 많이 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천상 선교사다. 원 신부는 11월 3일 수단으로 돌아간다.
후원계좌 : 국민은행 090-01-0323-513(예금주 : 살레시오회)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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