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잔꽃송이

진짜 삶

나나수키 2014. 12. 19. 12:45

작아도 진짜인 일 / 등록 : 2014.12.18 20:52 / 편집자가 고른 스테디셀러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더숲 펴냄(2014)

 

커피 마니아 사이에서 소문난 원두가게를 소개받았다. 신촌의 작은 가게. 콕 집어 위치까지 안내받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가게였다.

그곳에는 두개의 출입구가 붙어 있었다. 커피 원두가게와 사진 갤러리였는데 각각 5평도 채 안 돼 보였다. 주인은 일본에서 사진 공부를 한 사진가.

자신의 사진을 몇점 전시한 갤러리, 온갖 원산지의 커피 원두가 놓여 있는 공간은 경제활동 공간이었고 이층은 살림집이었다.

가만있자, 이 집의 구조와 생활 방식은 올해 읽은 가장 강렬한 책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연상시켰다.

일본 오카야마현의 오지 마을 가쓰야마에서 ‘다루마리’ 빵집을 운영하는 와타나베 이타루의 책은 쉽사리 읽혔으나 오래 잊히지 않았다.

가격 경쟁으로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완전히 벗어나 직접 배양한 천연균으로만 발효된 빵을 만들고, 정당하게 제값 받으며

이윤 남기지 않고도 충분히 즐겁게 사는 시골 빵집 주인 이야기. 곧 가볼 예정이었는데 아뿔싸, 이번달부터 쉬고 있다고 한다.

빵집 주인이 어떻게 자본주의 틈바구니에서 자신만의 출구를 찾았는지 직접 보고, 매일 온 마음 다해 만드는 빵을 먹어보리라 다짐하고 있었는데 한발 늦었다.

 

신촌의 커피 원두가게 주인과 나눈 짧은 대화 속에서도 예술과 생계 활동의 소박하고도 묵직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미술 전시장이나 커피 체인점의 시스템이 아닌 거의 원시적인 형태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생산 활동의 결과가 어떠한지 커피 마니아 사이에서는 이미 알려져 있었다.

그가 볶은 커피 원두 맛은 훌륭했다. 그렇다. 시스템을 극복하는 방식은 상품 본래의 가치를 드높이는 것뿐이었다. 생산자와 판매자가 얼굴을 맞댄 관계,

수요 공급의 원리나 가격 경쟁의 의미를 넘어선 경제활동은 ‘다루마리’ 빵집이든 신촌 커피 원두 가게든 상품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음식은 생명력과 떼어놓을 수 없다. 이윤 추구를 위해 혀를 속이는 첨가물을 다량 사용하고 저가 노동력으로 빨리 만들어내고 박리다매 헐값으로 파는 일은

자연의 섭리, 생명력을 약화시키는 일이었다.

 

와타나베가 경제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자본주의 시스템을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농과대학교를 졸업하고 농산물유통회사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 여러 일을 겪으면서

<자본론>의 마르크스가 적시한 노동 교환가치, 계급의 문제, 순환하지 않는 돈의 문제를 깊이 천착해 어렵게 내린 선택이었다.

우리 모두 시골빵집 와타나베처럼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와타나베처럼 사는 사람이 많아지면 현재 극점에 이른 자본주의의 속물성, 탐욕성에 대한 성찰은 깊어진다.

와타나베 이웃과 이웃, 사회 구성원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썩는다’ ‘부패한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다. 따라서 ‘부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연의 섭리에 반한 현상이다. 그런데도 절대 부패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늘어나는 것이

돈이다. 돈의 그같은 부자연스러움이 ‘작아도 진짜인 것’으로부터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왜 이 책이 일본과 한국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을까.

우리가 원하는 인간적인 삶, 우리가 원하는 진짜 돈벌이를 와타나베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와타나베의 탁월한 글쓰기로 미루어 보건대 두번째 책도 나올 수 있겠다.

그렇다고 빵집보다 책으로 돈을 벌지 말기를. 왜냐하면 그가 진짜 빵집 주인으로 남기를 간절히 바라기에.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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