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를 비켜가지않는 붓다의 힐링법
지금 대한민국은 온통 힐링 바람이다. 서점의 가장 눈에 띄는 매대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역시 힐링을 주제로 한 책이다.
뿐만 아니라 온갖 법회와 강좌, 수련회도 힐링을 달아야 관심을 받는다. 얼마 전 한 때를 휩쓸었던 웰빙 바람을 이어 힐링은
이제 돈이 되는 마음산업의 영역까지 개척하고 있다. 이제 머지않아 불교 사찰의 전각에는 ‘힐링 붓다’가 모셔질지도 모르겠다.
약사여래불이 출현했듯이 말이다.
그럼 웰빙과 힐링의 출현 배경은 무엇인가? 그것은 살아가는 현실이 그리 행복하지 않다는 것, 끊임없이 아프고 힘들고 괴롭다는 것,
그래서 치유 받고 진짜 사는 것같이 살아보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 아니겠는가? 하긴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힐링과 웰빙을 희망하지 않은 때가 있었던가?
힐링과 웰빙의 염원에 부응한 것이 석가모니 붓다의 사성제의 교리가 아니겠는가?
사람들이 소리 지르고 있다. 입시에 시달리는 학생들, 입학과 동시에 4년 동안 취업준비생이 된 대학생, 취업과 연애와 출산을 포기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힘들다고 말한다. 고비용의 육아와 교육에 등이 휘는 중년, 은퇴와 고령의 세대도 힘들다고 외친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에서 속도와 성장과 배타와 경쟁으로
자신의 삶을 내몰아가다가, 신자유주의의 링 위에 갇히고 미아가 된 모든 세대가 ‘힘들다’고 울부짖고 있다.
그래서 힘들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 무엇을 찾는다. 어떤 말을 듣고 싶고 누군가의 손길과 눈길을 받고 싶어 한다. 쉬고 싶고 위로 받고 힘을 얻고자 한다.
그래서 산사를 찾고 멘토의 강의에 열광하고 수행프로그램에 참가한다.
힐링의 주요 처방으로 명상과 상담이 호응을 받고 있다. 이때 붓다와 불교의 교리, 수행법은 힐링을 위한 최적의 길이 된다.
왜냐하면 팔만대장경 전체가 바로 ‘고통의 치유학’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고 했던가? 병이 나면 정확한 진단과 그에 따른 처방이 필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붓다는 철저한 맞춤형 힐링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붓다는 개인적으로 허약하고 사회적으로 소외 받는 사람을 품어 주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셨다. 오늘날 많은 멘토들이 그러하듯이 힘들고 아픈 소리에 정성껏
귀기울여주고 어깨를 토닥여 주셨다. 불가촉천민 중에서도 제일 낮은 취급을 받는 똥 치는 신분의 니디에게는 몸에 묻은 똥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마음의 탐욕이 더러운 것이라며 주눅 들지 말고 살아가도록 격려해주셨다. 풋티갓사팃사라는 이름의 제자는 젊고 싱싱하던 피부에 병이 들어 피고름이 흘러내리고
몸에는 악취가 났다. 그러자 대중의 관심과 손길이 멀어졌다. 붓다께서는 아무 말 없이 찾아오셔서 깨끗한 물로 그를 목욕시켜 주고 약도 발라주고 그가 입던 옷을
빨아 주셨다. 그리고 그에게 몸과 마음의 무상함을 일러 주고 집착과 불안을 해소할 수 있게 해주셨다.
또 눈이 멀어 바늘을 잡을 수 없는 아니룻다의 가사를 꿰매 주며 마음의 동반자가 되어 주셨다.
이렇게 따뜻하고 자상한 붓다는 동시에 엄정하고 준엄한 멘토의 모습으로 대중에게 다가온다.
물질과 자본에 중독되어 향락에 빠진 젊은이들에게는 직설의 멘토였다.
인도 바라나시 부호의 아들 야사는 먹고 마시고 춤추며 노는 쾌락에 빠진 젊은이였다. 그는 어느 날 술에 취해 널브러져 있는 아내와 미인과 친구들의 추한 몰골에
환멸을 느껴 괴로워한다. 붓다는 야사에게 인생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고 그가 새로운 길을 가게 한다. 또 바라나시 교외에서 쌍쌍파티 중에 귀금속을 훔쳐
달아난 여인을 찾는 젊은이들에게도 붓다는 준엄한 멘토로서 그들을 힐링한다.
“그대들이여, 달아난 여인을 찾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진실한 자신을 찾는 것이 중요한가?”라고.
또한 당대 최고의 부호이며 붓다의 든든한 후원자인 수닷타 장자의 며느리 옥야를 향한 붓다의 대중법문은 직설화법의 절정이다.
옥야는 왕족이며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 요즘 시대에 견주면 외모와 친정의 권세를 믿고 교만하고 불성실하였던 모양이다.
그런 옥야를 향해 붓다는 가감 없이 말한다. “외모와 화려한 옷과 장신구로 치장하여도 그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다. 마음과 행실이 정직해야 한다.
너는 성질이 사납고 시부모에게 공손하지 못하다. 내 너에게 참다운 아내의 도리를 말해 주리라” 그리고 붓다는 좋고 나쁜 일곱 종류의 아내를 말해준다.
지금으로 말하면 10대 대기업 총수의 며느리에게 날린 사자후가 아닌가? 붓다는 이렇게 사람의 생각과 행실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주는 힐링의 고수였다.
그리고 붓다는 비유와 직설로서 계급 차별에 고통 받는 사람들과 고통을 주는 사람들에게 직설하였다.
“상류계급도 살인과 도둑질을 하면 형벌을 받게 되오. 천한 행위를 하면 그는 천한 사람이 되고 고결한 행위를 하면 그는 고귀한 사람이 되오.
나는 출생을 묻지 않는다오. 다만 행위를 물을 뿐이오.” 이야말로 계급과 양성의 불평등으로 고통 받는 인류를 향한 개인과 사회를 아우르는 힐링이 아닌가?
*출처 : EBS '깨달음을 얻은 자, 붓다'
분쟁의 현장에서도 붓다는 사회적인 멘토였다. 가뭄이 들어 물싸움이 심해져 마침내는 폭력의 상황에 이른 현장에 가서 붓다는 물이 중요한 것인가
사람의 생명이 중요한가를 대중들에게 묻는다. 싸움은 모든 사람에게 공멸을 가져온다고 지적하였다.
자. 이제 인생의 멘토로서 붓다의 힐링을 한 번 분석하면서 이 시대 진정한 힐링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힐링이 무엇인가? 삶의 치유가 아닌가? 치유는 일시적인 응급처방이 아닌 회복과 건강이 목적이다. 아프고 힘들어 하는 소리를 들어주고, 괜찮다고 위로하고
손잡아 주고, 지금까지도 너는 충분히 잘했으니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 주는 것이 힐링이다. ‘나는 지금 위로가 필요해요’라는 사람에게는.
그러나 붓다의 사성제는 힐링에 대해 정직한 ‘진단’과 정확한 ‘처방’을 요구한다.
즉 정확하고 정밀하게 삶을 힘들고 괴롭게 하는 원인을 찾아내어 이를 해결하라고 한다. 괴롭고 즐거운 삶의 현실은 바로 행위와 그 결과이기 때문에.
상처는 일시적으로 은폐하거나 봉합하는 것으로는 치유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악화될 뿐이다.
붓다의 힐링은 적절한 비유와 자상한 설명을 곁들이지만 문제의 핵심을 찌르는 ‘직설’이었다. 외아들을 잃고 구원을 바라는 키사 코타미에게는
사람이 한 번도 죽지 않은 집에서 곡식을 얻어 오면 아들을 살려 주겠노라는 방편으로, 목숨은 무상하여 영원히 살 수 없다는 이치를 깨닫게 했다.
직설적 처방이다. 마을 사람에게 따돌림을 받아 괴로워하는 촌장에게는 그대가 포악하고 심술궂기 때문이라며 그런 행위를 그만 두라고 했다.
위에서 열거한 멘토 붓다의 화법을 보라. 정확하게 인생의 참된 의미와 목적을 말하고 그에 대한 원인을 소멸하라고 한다.
지혜와 자비는 바로 직설의 화법으로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원인은 대략 세 가지다. 그것은 무지와 게으름, 그리고 비겁이다. 또 사람을 힘들게 하는 사회구조가 있다.
그 사회는 속도와 성장을 목표로 개인을 도구화하고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국가권력과 기업과 학교 등이다.
지금 진정한 힐링을 위해서는 개인과 사회에 돌직구를 날리는 직설이 곧 유일한 처방이다.
어설픈 위로는 개인을 나약하게 만들고 탐욕과 독점을 교묘하게 감추고 있는 사회구조에 면죄부를 준다. 그러므로 아프다고, 괴롭다고 말하는 모든 사람들이여,
위로 받기 전에 냉엄하게 자가 진단하라. 내 삶은 방향을 제대로 잡았는가, 나는 지금 남의 삶을 눈치 보며 흉내 내고 있지는 않는가.
진정한 힐링은 나를 내 삶의 주체로 세우고 독창적으로 살아갈 때 가능하며, 이를 통해 자유와 행복은 성취되는 것이다.
생전에 스티브 잡스가 암 진단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직관이 내는 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진짜 하고 싶은 것을 이미 알고 있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 오신날!
당신은 자기존재를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엄으로 빛나게 하고 싶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누구에게 위로 받기보다 자신과 세상을 잘 분별하고, 단호하게 거부하고, 꿋꿋하게 저항하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만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