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잔꽃송이

기대되는 할망밴드~ / 박어진님

나나수키 2018. 4. 13. 22:02

[삶의 창] 오, 마이 우쿨렐레!/박어진

등록 :2010-11-19 20:14

 

박어진 서울셀렉션 기획실장
박어진 서울셀렉션 기획실장
‘그분’이 오셨다. 거금 41만8000원을 들여 우쿨렐레를 단번에 질러버렸으니 말이다. 만 55년 된 생일을 자축하는, ‘해피 버스데이 투 미’ 이벤트라는 명분이 그럴싸하다. 하와이 출신의 우쿨렐레는 기타보다 작아 들고 다니기에 부담이 없다. 벼룩이 튀듯 가볍고 경쾌한 음색은 정말이지 긍정적이다. 무엇보다 클래식 악기의 엄숙함이 없어 듣는 이도 긴장할 필요가 없다. 평생 악기 하나 익히지 못한 게 아쉬웠던 차, 마지막 기회라는 비장감으로 당장 교습에 돌입했다. 매주 화요일 저녁 한 시간씩 참여연대에서 열 명이 함께하는 단체 레슨, 나는 단연 최연로 학생이다.

우쿨렐레 조율법부터 부위별 명칭 외우기, 왼손, 오른 손가락 놓는 위치, 거기다 타브 악보 읽는 법까지, 머리에 쥐가 난다. 오른 손등의 잔뼈들이 긴장을 했는지 뻐근하고 안 쓰던 왼쪽 어깨 근육도 동원되는 바람에 견갑골까지 쑤셔댄다. 왕초보답게 손가락에 계속 헛심을 주는지라 수업중 지적을 받기 일쑤. 레슨 동료들 중에는 연말 송년회 때 멋진 연주를 하고 싶어 함께 등록한 20대 직장여성 3인조가 가장 열심이다. 중학생 딸이 가진 우쿨렐레를 살짝 들고 나온 40대 직장인 아빠도 있다.

일단 자주 쓰는 코드 14개를 익히는 게 급선무. 급기야 지하철에 앉아서 왼손에 핸드폰을 쥐고 G7 코드와 F4 코드를 짚어가며 연습하기에 이르렀다. 길을 걸을 때 나도 모르게 오른손을 휘두르며 다운스트로크와 업스트로크를 연습하다 오가는 이들로부터 수상한 눈총을 받기도 한두 번이 아니다. 가을 내내 읽은 책이라곤 우쿨렐레 교본 한 권뿐이니 더 무슨 말을 하리.

그런데 이 모든 게 이렇게나 재밌을 줄이야. 그야말로 만학의 즐거움이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을 배우는 이가 까막눈 세계를 벗어나 문자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처럼, 악보도 못 읽는 내게 우쿨렐레를 통해 한 세계가 열린 것이니 말이다. 듣는 것으로만 알던 음악을 감히 생산해 내다니, 짜릿하다. 물론 그다지 민첩하지 못한 손가락이 미끄러지듯 D7에서 G코드로 이동하려면 골백번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좋아서 실실 웃음이 나온다. 주변의 반응 또한 긍정적이다. 우쿨렐레를 질끈 둘러메고 출근하는 노모를 바라보며 웃음을 참던 딸과 아들은 이미 지지 성명을 발표했고, 남편도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댕댕댕댕 연습 소음에도 짜증내지 않고 마냥 착한 얼굴들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 우쿨렐레를 연습하는 시간은 온전히 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시간이다. 나와 우쿨렐레가 있을 뿐, 문득 세상 모든 일과 사람들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집중하기 참 애매한 나이에 이런 횡재가! 치매 예방에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하루라도 우쿨렐레를 손에 잡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을 지경.

4주에 걸친 4시간 레슨으로 교습은 끝난다. 이제 독학할 채비를 갖췄다는 뜻이다. 실제론 칼립소 리듬을 간신히 익힌지라 ‘꼬부랑 할머니’를 더듬더듬 칠 수 있는 정도. 최소 1년은 우쿨렐레와 함께 정진해보려 한다. 그때쯤엔 악기와 나, 그 분리를 넘어 한몸이 되는 경지가 열리려나. 동호회에 가입해서 기량을 연마할 계획이다.

내 장래 희망은 앞으로 살게 될 작은 골짜기 마을 공동체에 친구들을 모아 동네 할망 밴드를 조직하는 것이다. 편성은 해금, 오카리나, 하모니카, 기타, 아코디언에 우쿨렐레까지 제각각 취향대로. 거기다 보컬과 댄서도 있어야겠지. 우리의 무대는 가을바람 부는 황금들판, 막걸리가 있는 새참 풍경 속 논둑과 밭둑일 수도 있다. 땀 흘려 일하는 농부들과 봄꽃들에게, 여름 구름, 익어가는 벼들에게 우리는 연주할 것이다. 늦가을 밤엔 귀뚜라미 오케스트라와 협연도 불사할 예정. 마을 행사가 있다면 뒤풀이 전문 밴드로 뜰 수도 있다.

이렇게나 야무진 계획 덕분일까? 우쿨렐레와 함께 가는 올겨울이 더욱 명랑해지고 있다.


박어진 서울셀렉션 기획실장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449702.html#csidx30343fe7cd34505bab2257ee4087a1e